삼성은 과연 애플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애플과 삼성의 특허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비교적 명확한 문제다. 미국 법정에서 판결을 내려줄 것이고, 소송에서 이기는 사람이 승자고 지는 사람이 패자다. 하지만 대부분 ‘삼성이 애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렇게 작은 문제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회사 크기를 나타내는 시가총액이라면 어떨까? 이 부분에서 애플은 이미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회사가 되어버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지난 7월 순위를 매긴 자료에 따르면 애플의 시가총액은 5천4백14억 달러(약 6백25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삼성전자 역시 시가총액 2백 조원이 넘지만 애플에 비한다면 1/3에 불과하다. 한때 애플과 삼성의 시가총액이 엇비슷한 적도 있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시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7백59억 달러, 삼성은 약 5백13억 달러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2009년 아이폰 3GS 출시였다. 아이폰 3GS 발표 이후 애플 주가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삼성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삼성전자 주식이 미국에 상장되기 이전이므로 실질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럼 회사의 시장 지배력을 나타내주는 매출액이나 판매 대수, 영업이익을 비교하는 것은 어떨까? 판매 대수 측면에서 삼성은 애플보다 훨씬 앞선다. 2012년 2/4분기를 기준으로 할 경우 아이폰은 약 2천6백만 대, 삼성전자는 약 5천2백만 대를 팔았다. 두 배 수준이다. 매출액은 애플이 약 3백50억 달러(약 39조원)이고 삼성전자의 경우 정보기술&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약 24조원이다. 영업이익은 애플이 약 88억 달러(약 10조원)인 반면 삼성은 4조원 정도를 벌어들였다. 판매 대수는 훨씬 많지만 그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훨씬 적은 편이다. 대부분은 ‘삼성이 애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 것이다. ‘삼성이 애플보다 더 많은 휴대폰을 팔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그래서 더 부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삼성이 돈을 많이 벌건 말건, 애플이 아이폰을 더 팔건 말건, 우리랑 무슨 상관일까? 기업 세계는 스포츠가 아니다. 올림픽처럼 서로 겨뤄서 누가 더 실력이 좋은 지를 자랑하는 세계가 아니다. 기업은 국가 대표가 아니며, 어떤 기업이 더 많이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멋진 제품을 내놔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냐일 것이다. 따라서 ‘삼성이 애플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삼성이 과연 애플만큼 멋진 제품을 내놓아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꿔서 이해해야만 한다.
아이폰은 세상을 바꿨다
까놓고 말하자. 아이폰은 정말 모든 것을 바꿨다. 우선 휴대폰 시장을 재편했다. 2009년 한국에서 아이폰 출시 이전까지 스마트폰 가입자는 겨우 1%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11년에는 44%에 달했으며, 2013년까지 90% 이상이 스마트폰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시장도 다르지 않다. 작년 한 해 세계에 출시된 스마트폰 숫자는 약 4억7천2백만 대이며, 전체 휴대폰 판매의 약 31%를 차지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시장을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 아니다. 이동통신사가 중심에 놓여 있던 이동통신 시장을 재편해, 통신사-스마트폰 제조사-인터넷 서비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플랫폼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앱스토어를 만들어 소프트웨어를 마치 음원처럼 파는 새로운 방식을 개척해낸 것도 바로 애플과 아이폰이다. 한마디로, 애플과 아이폰은 시장을 재편하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폰은 애플도 바꿔놓았다. 애플은 원래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였다. 아이폰 역시 아이패드 형태의 새로운 컴퓨터를 고민하다 얻게 된 산물이다. 그런 애플이 지금은 스마트폰 회사로 변했다. 컴퓨터도 여전히 만들지만, 애플의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아이폰 판매에 의지한다. 아이폰은 삼성도 바꿔놓았다. 아이폰 출시 이전 세계 최대의 휴대폰 회사는 노키아였다.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2010년에 나온 IDC의 보고서에서도 2013년까지 노키아의 심비안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휴대폰 OS가 될 것이라 예측했을 정도다. 그런 노키아가 몰락했다. 또 하나의 휴대폰 강자 모토롤라도 몰락했다. 그리고 노키아의 뒤를 잇던 삼성이 구글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한 반애플 연합의 선봉으로 떠올랐다. 2011년 기준으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휴대폰을 판 회사는 노키아이지만,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판 업체는 삼성이다.
묘한 것은 애플과 삼성이 서로 닮은 기업이란 사실이다. 둘 다 핵심 부품부터 전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둘 다 강력한 리더가 있어서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다. 둘 다 글로벌한 생산 체계를 갖췄다(올해 초 삼성은 공장의 해외 재편을 끝냈다. 삼성 스마트폰의 상당수는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둘 다 트렌드를 공격적으로 이끌고 간다. 둘 다 프리미엄폰 전략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인식은 다르다. 애플 아이폰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대접받고, 삼성 스마트폰은 카피캣 정도로 인식한다. 이는 단순히 삼성 스마트폰이 OS를 구글 안드로이드에 의존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시장을 개척한 제품과 나중에 따라잡는 제품의 차이다.
어쩌면 삼성이 애플을 이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아이폰은 시장을 아예 바꿔놓았다. 반면 삼성은 휴대폰에서 사용한 전략 그대로, 조금 뒤처졌지만 더 뛰어난 하드웨어와 더 싼 가격의 제품을 통해 아이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삼성에서 만든 스마트폰 하드웨어 사양이 애플 아이폰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한다. 1년에 한 차례씩 신형 아이폰을 내놓는 애플의 전략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스마트폰 시장에선 신형 아이폰을 순식간에 구형 사양으로 만들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은 그만큼 빨리 높아졌다.
게다가 지금 애플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지난 2010년 아이패드 발표 이후 혁신적으로 느껴지는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모두 기존에 있던 제품들을 개량한 것들이다. 마치 한 번 히트친 게임의 속편을 계속 내놓는 게임 업체들처럼, 사람들 눈에 비친 애플은 점점 우려먹기를 하는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 역시 크다. 비록 잡스 사망 이후에도 애플의 기업 가치는 멈추지 않고 올라갔고, 팀 쿡이 잡스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그건 그저 뛰어오르는 애플 주가를 사랑하는 애널리스트들의 평가일 뿐.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내던 어떤 오라를 팀 쿡은 만들어내질 못했다. 현실왜곡장이 사라진 애플은 그저 잡스의 유훈 통치가 계속되는 대기업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구글과 손잡은 삼성이 발전하는 속도는 눈부시다. 삼성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트렌드를 매우 빠르게 변화시켰다. 비록 아직 소프트웨어는 부족하다고 하지만, S펜 등의 새로운 기술과 다양한 사양 등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삼성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끌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은 컴퓨터 시장과도, Mp3 플레이어 시장과도 다르다. 뜯어보면 속까지 아름다운 애플 제품보다는 보다 빠르게 새로운 사양을 채택한 신형 스마트폰이 사람들에게는 더 잘 먹힌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뒤처진데다 가격까지 비싼 폰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플이 지금처럼 스마트폰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고 예전 전략을 고수한다면, 아무리 충성 고객이 많다고 해도, 의외로 빨리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앞서 말한 노키아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삼성이 애플처럼 시장을 개척하는 스마트폰과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는 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는 있다.
어쩌면 반전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할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제품을 산다. 때문에 초기에는 하드웨어 사업이 주목받지만, 나중에 그 하드웨어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앱과 인터넷 서비스라고 볼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스마트폰 시장에선 안드로이드폰도 아이폰도, 자신만의 킬러 앱이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OS 편의성이 그마나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주요 서비스는 모바일 웹으로, 다중 플랫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앱으로 바뀌어버렸다. 2012년 상반기부터 이런 트렌드는 매우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플립보드, 인스타그램 등 기존 아이폰에서만 이용할 수 있던 인기 앱들이 대부분 안드로이드폰용으로도 출시되었다. 그렇다면 이 스마트폰 시대의 최종 승자는, 삼성이나 애플이 아니라 앱이나 서비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와 애플의 법정 공방이 판결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소송 때와 달리 삼성전자는 여유로워 보이고, 애플은 다급해 보인다. 갤럭시 s3를 필두로 한 안드로이드 사용자 수 역시 iOS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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