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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잔

늦은 밤 남자를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술집은 고급스러운 와인 바도, 화려한 레스토랑도 아니다. 맛은 물론 편안함과 분위기로 사로잡는, 남자들의 마지막 한 잔. 그 장소.

UpdatedOn June 01, 2012




술자리를 이어가다가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들르는 조그만 주점이 하나 있다. 상수동에서 당인리 발전소로 가는 길목을 걸어가면 오래된 여관 아래에 위치한 이 조그만 공간의 이름은 ‘스톡홀름’이다. 마호가니 목재의 사립문과 나무 덧창은 북유럽식 에나멜 유성 페인트인 벤자민 페인트칠로 마무리했는데 언뜻 보아도 주인장의 고집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멀리서 보면 두꺼운 보랏빛 초콜릿이 건물 벽 전체에 흘러내린 듯하다. 이 공간은 내 단골 카페 중 하나이다. 오래전부터 드나든 이리 카페라는 곳이 처음의 약속 장소라면 백 보도 안 되는 거리에 이발소와 여관을 지나 도달하게 되는 이 공간이 내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일단 작은 공간이지만 스파이나 혁명 전야의 레지스탕스들이 거리에 모여 있을 것 같은 살롱 분위기가 한몫한다. 무엇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한 주인장이 직접 사이펀으로 내려주는 뜨거운 커피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지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하우스 와인이, 꿀떡꿀떡 끼니로 적당한 코프(컵밥)가 중독적이다. 기분 좋은 날,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나는 여기서 달착지근한 이야기나 운수 좋은 날에 대한 엽편 같은 이야기들을 쏟곤 한다. 어느덧 나는 한 달에 한 번 이곳에서 여는 벼룩시장에 가끔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들을 내놓기도 하고, 노루처럼 펄떡펄떡 뛰어와서 물만 마시고 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여기서 루돌프처럼 코가 빨개지도록 마시고 위층의 오래된 낡은 여관으로 올라가서 창문으로 희끗한 눈이 오는 걸 바라보는 것도 가냘프고 아련할 것 같다. 시인 김경주


스톡홀름  + 위치 마포구 상수동 336-16 | 문의 02-3144-2221 |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10시 |메뉴 하우스 와인 6천원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 BAR 상수리

“홍대에서 ‘상수리’는 보기 드물게 어른임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혼자 언더록 한 잔을 마실 때, 나이를 먹는다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수동을 지날 때마다 의아하게 들여다보던 곳이 있다. 지하인데도 조그만 마당(비슷한 것)이 있고 나무로 만든 간판에는 멋스런 흘림체로 ‘상수리’라 적혀 있는데, 나뭇개비들에 둘러싸여 방치된 듯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어서다. 그곳이 김작가가 으레 마지막으로 향하는 바 상수리다. 홍대는 나이를 잊고 살기 쉬운 곳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한 자리에 어울려 놀기 일쑤다. 그런 홍대에서 ‘상수리’는 어린 시절 그가 나이 먹으면 꼭 가보고 싶었던 바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어둑한 실내에 놓인 테이블과 각양각색의 의자는 제멋대로인 듯 보이지만 구석구석 주인의 손이 가지 않은 데가 없다. 공간의 잦은 변형은 그만큼의 애정과 비례한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도 사장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자주 바뀐다. 끊임없이 손을 본다. 맥주도 있지만 김작가는 대부분 칵테일이나 보틀을 마신다. 혼자 어른스럽게 ‘제임슨 언더록’을 마시며 어른 기분에 젖는다. 손님과 주인의 구분 없이 원목 바에 둘러앉아 술잔을 나눈다. 아늑한 아지트 같은 이곳은 주말이면 작은 재즈 공연이나 숯불에 구운 ‘꼬치파티’를 열기도 한다. 아는 사람만 간다. 주인도 직원도 많은 사람을 바라지 않는다. 가게 어딘가 적혀 있듯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공간이 기꺼이 되어준다.

위치 상수역 4번 출구 | 문의 010­4380­1818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2시 | 메뉴 진토닉 7천원

 

셰프 레이먼 킴 | the 쭈꾸미

“생선구이집에서 소주로 시작해 주꾸미집에서 소주로 끝낸다. 주꾸미는 안 맵게, 볶음밥까지 시켜 먹고 노닥거리다 집에 오곤 한다.”


올리브 TV <샘과 레이먼의 쿠킹타임 듀엣>에서 셰프 레이먼 킴은 두툼한 손으로 섬세하게 야채를 만지고 달콤한 디저트를 만든다. 술 좋아하기로 소문난 그가 마지막으로 버릇처럼 들르는 곳은 가로수길의 매운 주꾸미집. 양식 전문 셰프라서가 아니라 그는 매운 것을 못 먹는다. 그런데도 항상 이곳으로 발길이 향하는 걸 보면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쭈삼겹을 시키면 냉동 삼겹살과 숨덩숨덩 썰린 양파가 날것 그대로 냄비에 담겨 불판 위에 올라간다. 직원이 쓱쓱 볶아주는 동안 곳곳에 숨어 있는 몇 마리 주꾸미가 빨간 양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새빨간 주꾸미볶음은 잠이 확 달아날 정도로 맵다. 레이먼 셰프가 말한 대로 삼겹살과 주꾸미를 한 번에 집어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넘기면 달콤한 양파가 뽀빠이 속 별사탕처럼 반갑다. 다 먹고 나서 비벼주는 볶음밥은 어디서나 하이라이트. 맛도 맛이지만 영업시간이 새벽 2시까지라 자리를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는 이유라 귀띔한다. 가게 한쪽 벽면에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의 사인이 죽 걸려 있다. 늦은 시간 찾아갔다 씨스타를 만나도 중독적인 매운맛에 엉덩이를 떼지 못할 거다.

위치 강남구 신사동 540-18 | 문의 02-541-4628  |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2시(격주 일요일 휴무) | 메뉴 쭈삼겹 1만1천원, 날치알볶음밥 3천원

 

사진작가 최용빈 | 하시

“집으로 가는 길, 이곳에서 나는 고소한 안주 냄새를 못 이기고 또 발걸음을 돌린다. 바싹하게 튀긴 크로켓을 안주 삼아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


주택가 골목의 사거리에 위치한 이자카야 ‘하시’는 밖에서도 가게 안이 들여다보인다. 주방도 오픈형이다. 여름이면 활짝 열린 문으로 고소한 튀김 냄새가 솔솔 흘러나온다. 바삭한 크로켓과 새우튀김이 유명한 이곳은 사진작가 최용빈이 귀가길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다. 하나만 먹고 들어가자 하고는 미닫이문을 연다. 네모난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서정적인 밤 풍경은 꼭 교토에 와 있는 것 같다. ‘젓가락’이란 뜻을 담고 있는 만큼 하시에는 메뉴가 많다. 그중에서도 최용빈의 추천 메뉴는 크로켓. 커다란 감자 크로켓은 물리지 않도록 샐러드와 함께 나온다. 샐러드 양이 좀 많다 싶었는데 위에 뿌린 참깨 드레싱이 별미라 자꾸 손이 간다. 따로 서빙된 먹음직스런 소스에 크로켓을 찍어 한 입 베어 문다. 거친 튀김옷 안 부드러운 속살 같은 감자가 입안에서 풀어진다. 바삭한 크로켓과 함께 최용빈이  마시는 술은 맥주. 하시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거품의 맥주가 일품이다. 한 잔이 금세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된다. 맥주와 이곳의 크로켓은 못 마시던 술도 술술 들어가는 환상의 조합이다.

위치 강남구 청담동 57 | 문의 02-516-2712 
영업시간 오후 5시 30분~새벽 4시(명절 휴무) | 메뉴 감자 크로켓 1만5천원

 

영화감독 장철수 | 더 된장남

“된장을 재료로 건강에 좋은 안주를 만드는 점이 특이하다. 된장이 속을 편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서인지 마지막 술자리로 이곳을 선택하게 된다.”


정면을 장식한 독특한 조명이 하우스 음악에 맞춰 시시각각 변한다. 인더스트리얼한 감성과  대조적으로 이곳의 주재료는 된장이다. 장철수 감독이 마지막 술자리로 ‘더 된장남’을 찾는 이유다. 후배 배우 소개로 알게 됐다는 ‘더 된장남’은 젊은 배우와 광고 디렉터 등 젊은 사람들이 만든 술집이어서 손님 가운데 유명인도 좀 있다. 얼마 전에는 배우 신하균을 만나기도. 보드카, 와인부터 사케까지 다양한 주류를 취급하지만 장 감독은 이곳에 오면 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옥수수죽 색깔이 나는 지평 막걸리는 배가 부른데도 술술 들어간다. 추천 안주는 부드럽고 쫄깃한 ‘미소크림해물과 조랭이떡’. 크림소스와 된장이라는 도전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맛이 좋다. 자꾸 손이 가는 게 중독적이다. 차돌박이가 듬뿍 들어 있는 차돌된장찌개도 인기 메뉴 중 하나. 커튼이 드리워진 단체석은 여럿이서 간단한 생일 파티를 즐기기에도 좋다.

위치 강남구 신사동 656-18 성진빌딩 B1 | 문의 02-545-9973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3시 | 메뉴 미소크림해물과 조랭이떡 2만3천원, 차돌된장찌개 1만7천원

 

사진작가 안성진 | 절벽

“마지막 코스는 집과 가까운 곳으로 가자. 소주 곁에 돼지구이 한 접시 두고 막차에 타자.”


샛노란 바탕에 빨간 궁서체로 다만 절벽이라 쓰여 있다. 허름한 문을 옆으로 밀고 지하로 내려가면 여기저기 흠이 파인 나무 테이블에 노란 조명이 딱 7080 포장마차다. 실내 포차 ‘절벽’은 사진작가 안성진의 막차. 집과 가까워서 들른다고 했지만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으면 누가 지나칠 수 있을까. 술이 꿀떡꿀떡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가 간판만큼이나 노골적이다. 절벽에서 술 먹기 이른 시간이란 없다. “이모 소주 한 병 가져갈게요.” 출장 다녀왔다는 단골은 오자마자 인사를 하더니 물 찾듯 술 한 병을 휙 꺼내간다. 낡은 테이블마다 한 상이 거하고 주문은 쉴 새 없다. 안성진이 소주와 함께 추천한 ‘돼지구이’는 후한 사장님의 인심만큼이나 두툼하다. 씹을수록 입안이 질척하다. 달디단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새빨간 골뱅이무침에 소면까지 넣어 비비면 세상이 달다. “인생아 멈춰라.” 언제 시작했는지, 누군가 발개진 얼굴로 몇 번씩 덧칠하며 써 내려갔을 낙서들이 벽면에 한가득이다. 주저앉기에도 계속 가기에도 마뜩찮은 인생이 여기서만큼은 멈췄으면 바라는 이가 이 한 사람뿐일까. 밤이 깊었다. 절벽 같은 사연들을 가득 품고 막차에 사람들이 자꾸 탄다.

위치 종로구 평창동 66-32 | 문의 02-379-8484 |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4시(휴무 셋째 주 일요일) | 메뉴 돼지구이 1만원

 

디제이 코난 | 화합

“주말에 밤새 음악을 틀고 한잔 하고 싶을 때 이태원 ‘화합’으로 간다. 늦게 가도 친구들이 북적해서 가족 같은 분위기다.”


이태원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화합’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소주 한잔 걸치기 좋은 퓨전 선술집이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알음알음 가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아지트가 됐다. 디제이 코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약속 없이 그곳을 찾아도 친한 이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직업 특성상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디제이에게 일이 끝나고도 편하게 갈 만한 곳이 있다는 것, 게다가 그곳이 친한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간이라면 단골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공간은 협소하지만 오픈 키친과 커다란 창 덕에 되려 시원한 느낌이다. 코난이 즐겨 마시는 술은 증류 소주 ‘화요’. 사케 모양을 하고서 소주 맛을 내는 ‘화요’는 도수가 소주와 비슷한데도 맛이 산뜻하고 뒤끝이 없어 애주가들에게 사랑받는 술이다. 코난은 화요 한 병에 소갈빗살 새송이구이를 안주 삼아 먹는다. 옹기종기 붙어 있는 테이블 사이로 등을 맞대고 한잔 하고 있자면 이름처럼 누구든 ‘화합’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위층은 클럽이다. 클럽에서 놀던 사람들이 대개 막차로 화합엘 온다. 다른 이자카야보다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치 용산구 이태원동 74-1번지 2층 | 문의 010-2787-1584  | 영업시간 평일 오후 8시~새벽 2시, 주말 오후 8시~새벽 4시 | 메뉴 소갈빗살 새송이구이 2만원, 화요 2만원

 

사진작가 홍장현 | 박고볼래

“스튜디오 바로 앞집이 이 집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나 역시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효리 단골집으로 유명해진 ‘박고볼래’는 사진작가 홍장현이 마지막으로 꼭 들르는 곳이다. 차를 스튜디오 앞에 두고 돌아올 때,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스튜디오를 나설 때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운 건 이효리 때문만은 아니다. 평범한 실내 포장마차 같은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음식에 있다. 홍장현이 소주 한잔에 즐겨 먹는다는 오징어물회 맛이 기가 막히다. 살얼음이 뜬 육수에 각종 신선한 채소와 인심 좋게 썰어 넣은 오징어회가 엄마 손맛 같은 양념과 만나 서울 시내 물회계의 새 지평을 연다. 투박한 세숫대야에 동해가 담겼다. 여기에 냉면 사리 하나 추가하면 한끼 식사로도 그만이다. 오죽하면 저녁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 메뉴 이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직원에게 “삼촌, ‘아무거나’ 주세요” 하면 해산물 모둠 스페셜을 내온다. 오징어물회로 짐작건대 이곳의 음식은 다 맛있을 거다. 사진작가 홍장현은 스튜디오와 가까워서 이곳에 자주 온다고 했지만 이런 맛이라면 멀리서도 기꺼이 달려오겠다.

위치 강남구 논현동 242-16 | 문의 02-512-7003
영업시간 오후 4시~새벽 5시 30분 | 메뉴 오징어물회 1만8천원

 

앤디앤뎁 김석원 실장 | 오가노 주방

“제철 재료를 사용해 음식이 자주 바뀐다. 그 모양새와 맛이 지겹지 않아 좋고, 맛있어서 좋다.”


‘오가노 주방’은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 실장이 막차로 들르는 곳이다. 맛있는 안주가 주종에 상관없이 어울려 어떤 술을 먹어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사케, 와인부터 바텐더 출신 직원들이 만들어주는 상큼한 칵테일까지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제철 음식으로 맛을 내는 안주에 술 한잔 기울이고 있으면 아는 얼굴들을 하나둘 만날 수 있다. 편한 분위기에 술맛은 더 오른다. 주로 마시는 술은 사케. 완도산 제철 전복을 일본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쪄내 싱싱한 무순을 올려 먹는 ‘전복초회’는 사케와도 화이트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낮에는 연예인 도시락을 싸던 것으로 유명한 셰프가 직접 만드는 유기농 한식 뷔페로 변하고 2층은 방으로 나뉘어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도 있는 등 깨끗하고 넓은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분위기 좋은 테라스는 여름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

위치 강남구 신사동 645-8 | 문의 02-514-0058
영업시간 점심 오전 10시 30분~오후 2시, 저녁 오후 6시~새벽 2시(일요일 저녁 휴무) | 메뉴 전복초회 2만1천원

 

밴드 스키조의 기타리스트 주성민 |송가네 감자탕

“로커들의 질척한 뒤풀이도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향하는 곳은 밤새 여는 해장국집이다. 나는 뼈다귀 해장국을 먹는 뱀파이어가 된다.”


연남동 ‘송가네 감자탕’은 원래 기사 식당이다. 24시간 열려 있어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마친 밴드들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 또한 여기다. 록 밴드 스키조의 기타리스트 주성민도 그렇다. 늦게까지 열려 있는 밥집이 드물어 이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공연 뒤풀이마저 끝나면 습관처럼 떠올리는 곳이 됐다. 여럿이 올 때는 생굴과 보쌈이 포함된 ‘한상차림’을 시키기도 하지만 뒤풀이가 끝나고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올 때는 해장국 하나를 주문한다. 큼직한 뼈다귀 몇 개에 깻잎과 들깨 가루 팍팍 뿌린 해장국이 눈앞에 있는데 소주가 빠질 수 없다. 한 잔 넘기면 긴장이 풀리면서 진짜 뒤풀이가 시작된다. 사실 기사 식당이니, 분위기도 맛도 서비스도 특별할 것 없다. 이곳을 자꾸 찾게 되는 건 그래서다. 공연이 끝난 로커들은 해장국을 앞에 두고 지난 공연의 실수를 얘기하고 동료들의 무대를 논하고 반성을 하고 꿈을 꾼다. 왁자지껄 떠들다 보면 더 늦게 공연이 끝난 후배들이 기타를 메고 어슬렁어슬렁 들어온다. 합석을 하며 해장국을 사주고 또 소주 한 병을 시킨다. 해가 높이 뜨면 슬금슬금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그래서 주성민은 가끔 스스로 뱀파이어라 부른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는 뱀파이어, 어울리는 건 왜일까.

위치 마포구 연남동 258-5 | 문의 02-3141-6557
영업시간 24시간 | 메뉴 해장국 6천원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 UNION

“시원한 옥상 테라스에서 밤늦도록 친구들과 술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는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이태원에서 보광동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좁은 길이 하나 뻗어 있다. 유명한 술집과 커피집이 몰려 있는 이태원 대로변을 훨씬 벗어난 조용한 주택가, 그 가운데 클럽 유니온이 있다. 유니온은 따듯한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브컬처를 소개하기 위해 생긴 공간이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이곳에 늦게까지 남아 좋은 음악을 듣고 친구들을 만난다. 생긴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엔 이미 발 빠른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음악을 듣고 예거 밤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주말에는 ‘디스코 유니온’ ‘블랙뮤직 올나잇’ 등 콘셉트에 맞게 디제이들이 음악을 튼다. 바에서 쏘는 예거 한 잔에 분위기가 한층 달궈질 무렵, 후끈한 열기를 뒤로하고 올라간 3층은 옥상 겸 테라스다. 옥상에도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로 술 한 잔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다가 춤을 추다가 옥상으로 올라가 술을 마시고 다시 내려와 춤추기를 반복한다. 평일에는 솔, 재즈, 보사노바 등 디제이인 사장이 직접 선곡한 음악을 들으며 즐길 수도 있다. 일요일 낮에는 단골들을 불러 ‘칠링 선데이’도 할 예정이다. 음악을 들으며 낮술을 즐기고 바비큐를 구워 먹고 저녁에는 영화를 상영하거나 플레이스테이션을 할 거란다. 매일매일 유니온 옥상 같은 나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위치 용산구 이태원동 74-1번지 3층 | 문의 010-2787-1584 영업시간 오후 8시~새벽 5시 | 메뉴 예거 밤 1만2천원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 | 곰돌이 쌀롱

“이 작은 술집은 하우스 와인부터 소주까지 다양한 주종을 망라한다.
부어 마시던 소주에 힘겨운 친구부터 와인으로 훈훈하게 입가심하며 마무리하고 싶은 친구까지, 모두를 만족시킨다.”


보통 밤 10시에서 11시에 시작한 술자리는 항상 ‘간단히 한잔만’이란 암묵적 동의로 2차나 3차까지 이어지게 마련이다.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인파가 몰리는 가로수길에 작업실이 있는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는 막차로 아직 사람이 많지 않은 강남 시장 근처 ‘곰돌이 쌀롱’(이하 ‘곰쌀’)을 간다.�다양한 술을 파는 덕에 입맛 따라 수요를 맞추기 좋다.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것이 가로수길보다 홍대에서 볼 법한 ‘곰쌀’은 안주도 다채롭다. 홍석우 추천 메뉴인 닭똥집과 조랭이떡에 달콤한 소스를 얹은 ‘꿀똥집’도, 진한 토마토소스에 각종 해물이 푸짐한 ‘이때리 해물탕’도 소박하지만 뚝심 있는 젊은 주인장과 꼭 닮았다. 가벼운 화이트 와인을 시켜놓고 하나뿐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고해성사처럼 말들이 쏟아진다. 술집 여기저기 비치된 포스트잇에 신청곡을 적어내면 거의 모든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한쪽 벽면에 단골이 만드는 세트 메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위치 강남구 신사동 510- 11 | 문의 02-3446-2218 | 영업시간 오후 6시 30분~오전 4시 30분(일요일 휴무) | 메뉴 이때리 해물탕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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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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