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센세이션’은 네덜란드 축구 클럽 아약스의 홈구장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렸다. 무려 2만 명이 왔다. 다음 해 두 번째 센세이션이 열렸다. 센세이션의 설립자 던컨 스투터하임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그의 형 마일스를 추모하기 위해, 마일스의 장례식에서처럼 센세이션 참가자들에게 하얀색 옷을 입도록 했다. 마일스는 던컨이 센세이션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그래서 어렵고도 곤란하게 화이트가 두 번째 센세이션의 드레스 코드가 됐다. 티켓은 지난해의 두 배가 팔렸다. 센세이션의 드레스 코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센세이션을 만든 건 ID&T다. ID&T는 일렉트로 댄스 뮤직 엔터테인먼트다.
ID&T는 199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일렉트로 하우스 뮤직 바람이 불면서 설립됐다. 던컨 스투터하임과 그의 친구 두 명은 몇 번의 소규모 이벤트를 열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대규모 이벤트를 기획한다. 이름은 ‘기말고사.’ 이벤트가 열리기 며칠 전에 기말고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엔 1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이것이 ID&T의 시작, 그리고 2000년에 처음으로 열린 센세이션의 전주곡이다.
센세이션은 거의 10년간 세계 19개국에서 열리고 있는 거대 규모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페스티벌이다. 스테이지 쇼, 애크러배트, 조명 쇼, 레이저 쇼, 불꽃놀이가 DJ들의 디제잉과 함께 연출된다. 한국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에선 최강의 이벤트다. 대략 여기까지 알고 센세이션에 참가하기 위해 루마니아에 갔다.
루마니아? 거기 가난한 나라 아니야? 김일성을 따라 했다는 차우셰스쿠인가 뭔가 하는 독재자가 오랫동안 통치한 나라 아닌가? 맞다. 갔더니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마트도 불이 꺼지고, 편의점에 가려면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길고 날씬하면서도 볼륨 있는 여자가 많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우울해 보였다. 이런 나라에서 센세이션이 센세이션하게 열릴 수 있을까? 티켓이 안 팔려서 역설적으로 센세이션한 센세이션이 되는 건 아닐까? 하물며 드레스 코드가 화이트인데. 게다가 올 화이트! 멋쟁이들도 어지간하면 올 화이트는 꺼리는데, 이 평범한 사람들이 올 화이트를 몸에 걸칠 용기를 낼까.
낮에 센세이션이 열리는 장소를 가서 보곤 더 의아했다. ‘돔 엑스포’라는 곳인데 내부가 중학교 운동장만 할 것 같았다. 과연 저 안이 꽉 찰까?
거리 곳곳에 센세이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센세이션은 해마다 콘셉트가 바뀐다. 올해 콘셉트는 ‘Ocean of White’다. 그래서인지 포스터엔 섹시한 인어공주가 바닷물과 함께 현실 세계로 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쁜 인어여서.
장소가 루마니아여서 생뚱맞긴 했지만 센세이션이라는 멋진 페스티벌을 한국에 소개하는 미션이 있었다. 센세이션이 열리기 이틀 전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 동안 센세이션보단 하얀 옷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올 화이트로는 절대 입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수십 번 말했다. 뭐가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이냐, 세계 최고로 촌스러운 모임이겠지, 청색 팬츠에 흰 셔츠를 걸치고 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뭐랄까, 커다란 돔 안에 하얀색 옷만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 같았다. 하물며 루마니아에서는….
하지만 <아레나> 에디터가 시간, 장소, 상황에 안 어울리는 옷을 입는 건 상상할 수 없다. 흰 팬츠, 흰 셔츠, 흰 운동화로 변신하고 센세이션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 것은 거짓말이다.
보통 이런 글은 잘 ‘써준다.’ 센세이션을 소개하면서 센세이션이 별로다, 하고 적진 않는다. 대체로 이런 경우 주최 측이나 후원사의 초대를 받고 간다. 하이네켄 코리아가 7월에 한국에서 센세이션 페스티벌을 연다.
센세이션이 아시아에서 열리는 건 처음인데, 아마도 하이네켄과 센세이션의 고향이 둘 다 네덜란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다. 센세이션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페스티벌이어서 하이네켄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 하이네켄은 그동안 뮤직 스폰서십 활동을 해왔고, 한국에서 센세이션을 개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핫한 라이브 음악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소개는 사실이고 보통 ‘이런 글’에선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패턴화된 문장이다. 이어서, 직접 보고 놀았더니 센세이션이 대단한 페스티벌 맞더라, 하고 아주 잘, 좋은 말을 적는 일이 남는다. 그래야 7월에 센세이션 코리아가 열리는 일산 킨텍스가 꽉 찰 테니까. 그런데 마음의 의무와는 별개로, 센세이션은 멋졌다. 정말 멋졌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때문에 돔 엑스포는 빛났다. 장관이라는 말론 부족하고… 세상의 하얀색이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촌스러울 줄 알았는데, 하나하나의 하얀색도 수천의 하얀색도 예뻤다. 그리고 더 놀랍고 감격적이었던 건, 이럴 수가, 거리에는 한 명도 없던 길고 날씬하면서도 볼륨 있는 여자가 다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 <아레나> 에디터가 오니까 루마니아의 예쁜 여자들을 다 불러 모으라고,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하늘에서 명령이라도 내린 것 같다. 센세이션했다.
돔 엑스포 안으로 들어가자 바닷속이었다. 바다 생물을 연상하게 하는 구조물들이 하늘에 떠 있었다. 중앙에 DJ 부스가 신전처럼 솟아 있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물처럼 물고기처럼 흘렀다.
‘미스터 화이트(Mr. White)’라는 DJ의 등장으로 센세이션이 시작됐다. 돔 안이 순식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감전됐다. 취해서 사람들은 끌어안고 춤췄다. 그 속에서 멋진 루마니아 여자들과, 떨어져도 달려드는 루마니아 남자들과도 섞이고 꼬였다. 이성을 놓아버렸다. 미스터 화이트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신비했다. 어디에서 열리든 센세이션의 시작은 항상 미스터 화이트가 맡는다고 한다. 초청받은 DJ들이 오기 전에 센세이션다운 음악을 틀어주는, 센세이션의 대표 아이콘이다. 그가 틀어주는 음악은 심장을 두드린다. 그런데 DJ 부스에서 내려와 출연자 대기실에 있는 걸 봤는데 배 나온 동네 형같이 생겨서 좀 웃겼다.
센세이션의 압권은 퍼포먼스다. 공중에서 웅장한 물 쇼가 벌어졌는데 물줄기 사이에서 날씬한 여자들이 춤을 췄다. 옷을 하나씩 벗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속옷까지 벗어주세요, 기도했다. 기도는 안 이뤄졌다. 그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메인 DJ는 페데 르 그랑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친구인지는 옆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심하게 대단해서 인터뷰 시간을 10분밖에 안 줬다. 7월에 한국에 온다고 해서 이해하기로 했다.
센세이션이 멋지다. 이렇게 거대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흰옷만 입고 이렇게 멋진 퍼포먼스와 이렇게 멋진 음악과 공존한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 않나? 하이네켄 코리아가 ID&T와 계약을 맺고 7월 21일 일산 킨텍스 - 여기도 정말 넓은데, 일찍 가서 흰 티셔츠나 팔까 - 에서 센세이션을 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센세이션은 조용한 루마니아까지 들썩이게 만든다. 듣고만 있어도 호흡을 가쁘게 만드는 음악이 뇌를 마비시킨다. 한국도 점점 멋진 나라가 되는구나. 하이네켄 코리아가 센세이션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답례로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적어야겠다. 맥주는 하이네켄이지.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거듭 적지만 드레스 코드는 어설픈 화이트가 아니라 올 화이트다.
오, 이런 하얀색
웃음이 전파된다. 흰색이 번지고, 밤이 환하다. 돔 엑스포 안에서 흰옷을 입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숭배하듯 공중을 올려다본다. 종교단체 같기도 하고 UFO 신봉자들 같기도 하다.
공 굴려봐유
춤추고 노는데 하늘에서 공들이 떨어졌다. 밝은 달 같은 공이었다. 사람들이 공을 굴리기 시작했다.
‘이성’도 마구 굴러가더니 사라졌다.
+ Interview
페데 르 그랑 Fedde le Grand - DJ
2006년 ‘Put Your Hands Up For Detroit’로 언더그라운드 하우스 곡에 수여하는 온갖 상을 휩쓸었다. 윌 아이 앰, 로비 윌리엄스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리믹스 리퀘스트 요청을 받았다. 마돈나가 ‘Give It 2 Me’를 그의 스타일로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하기도 했다. 2009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은 세계 60여 개 국가에 발매됐다.
2011년 10월 ‘DJ Mag Top 100’ 차트에서
14위에 올랐다. 2012년에 그의 순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7월 센세이션 코리아에 참여할 예정이다.
데뷔 앨범 이 큰 성공을 거뒀다. 아쉬운 점과 기뻤던 점이 다 있을 것 같다.
그 앨범은 조금 실험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재밌었지만 듣는 사람들이 음악을 온전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좋았던 점은 우상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이다. 앨범의 음악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다음 앨범은, 지금 작업 중인데, 좀 더 하우스 뮤직에 가까울 것 같다. 지난 앨범보다 덜 대중적일 거고.
언제 나오지?
내년 여름쯤.
유명 뮤지션과 다양한 협업을 했다. 누가 기억에 남나?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 윌 아이 앰. 그는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스테레오 엠시스의 멤버 롭 버치와 작업할 때도 즐거웠다. 그는 내 우상이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도 있겠지?
콜드플레이. 예전에 리믹스 작업을 같이 했는데(콜드플레이의 ‘Paradise’를 리믹스했고 이 곡이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전문 사이트 ‘비트포트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다음엔 곡을 함께 만들고 싶다. 굉장한 경험이 될 것 같다.
7월에 서울에 온다. 한국은 하우스 뮤직의 불모지다.
센세이션 페스티벌에 와서 내 음악을 들어라. 하우스를 사랑하게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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