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본능"
남자답다는 문장에는 단도가 하나 숨어 있다. 키퍼 서덜랜드가 영화의 사각지대를 돌며 품에서 꺼낸 잭나이프 같은. 싸움의 세를 뒤집는 번뜩이는 섬광. 순식간이어서 서늘하고 회전이 짧아서 더 단호한, 그런 단도직입적인 손놀림.난 그게 남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오’라고 믿는다. 남자의 핏속을 질주하는 속성이라 믿는다. 일단 스피드. 빨라야 한다. 빨리 골을 넣고 빨리 결승점에 도달하고 빨리 발기해야 한다. 또한 한 방 정신. 마늘과 쑥만 먹고 백일기도를 올린 곰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됐을 거라고 믿는 건, 남자의 성정으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려 했으면 한 방에 결판을 냈을 거다. 남자라면 말이다. 조물주하고 맞장을 뜨든, 삼신할미를 협박하든, 선악과를 두고 하느님과 내기를 하든 뭐라도 한 방에 결판을 냈을 거다.
이런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짐승 같은’이란 명찰을 달아준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거부의 형용구가 아니다. 여자들이 동물적 말초신경을 활성화해, 생물학적인 본질에 스스로 가까워졌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이성의 옷고름으로 단단히 봉인했던 동물적 본성을 끄집어냈음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들이 이성의 빗장을 풀고 본능의 판도라에 빠지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눈을 흘기며 ‘짐승’ 운운하는 특별한 상황을 즐겨도 된다. 그건 여자들이 남자들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걸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건 위험이지. 누구나 자기들의 생활에 흥분을 불러일으켜줄 약간의 위험을 원한다네.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지나친 안전을 싫어한다는 것을 말일세. 남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위험을 추구하지만 여자들은 대개 성적인 측면으로 자신들의 위험에 대한 추구를 국한시킨다네. 그것은 여자들이 발톱을 감추고 있는 호랑이, 즉 봄 날씨처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암시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세. 선량하고 친절한 남편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친구들, 그런 작자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네.” 선량하고 친절한 남자들이 보면 땅을 치고 곡을 할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쫓는 건 본능에 가까운 것을.
이달 <아레나>의 첫 장을 장식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을 바라보는 여인네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흰색 셔츠 한 장 걸쳤을 뿐인데 말이다. 잘 모르겠다면 표지를 한번 같이 보자. 셔츠 윗단추가 벌어진 농염한 각도, 귀찮다는 듯 둘둘 말아 올린 소맷단의 무심함, 팔뚝의 완강한 굴곡. 수컷의 이 강도 높은 삼합은 여자들의 가슴속을 쑤신다. 순식간의 일이지만 상흔은 깊다. 좀 더 줌인해서 들어가면 야생의 거뭇한 수염, 비대칭적인 눈썹 아래의 거만한 눈빛도 한몫한다. 이 상황에서 여자들의 마음은 봄의 꽃망울처럼 부풀 대로 부푼다. 그때 빗장뼈까지 펑 하고 열리는, 닫힌 꽃잎을 일순 열어젖히는 비장의 한칼은 이런 거다. 라이언 고슬링처럼 무덤덤하게 말하는 거다. “나? 패션 따위 관심 없는데?” 절대 그럴 리 없지만 말이다. 패션에 관심 없다면서 소매를 저런 식으로 걷고 그 아래로 문신이 살짝 삐져나오도록 했을 리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속아주는 게 여자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생각한다. ‘애들이나 찰 만한 카시오 전자시계를 차다니 너무 귀여워.’ 이쯤 되면 그녀들 내부에서 팽창하는 긍정의 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몸에 꼭 끼는 맞춤 수트에 딤플이 풍성한 넥타이와 행커치프로 견고하게 흉부를 방어하고 반들거리는 갈색 구두와 위트라 믿어 의심치 않는 페이즐리 양말로 발끝까지 틀어막은 모범적인 남자들에게 여자는 ‘존경’을 표한다. 그 교과서적인 반듯함. 그리고 그들의 몸에 문장처럼 새겨진 깍듯함. 그런데 이를 어쩌랴. 여자들의 붉은 가슴은 열리지 않는데.
다시 한 번 애거사 크리스티의 글을 인용해볼까? ‘여자들은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호랑이를 좋아한다. 선량하고 친절한 남편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친구들, 그런 작자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성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달 <아레나>에는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 호랑이, 봄 날씨처럼 은근한 바람기를 품은 남성들이 가득하다. 구깃한 재킷과 팬츠, 팔뚝의 힘줄을 고스란히 드러낼 셔츠들로 늑대의 심중을 표출한 남자들 말이다. 이런 남자들 곁엔 여자들이 나란하다.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듯 은연중에 말이다.
마음에 바람이 부는 4월이다. 이 4월이라면 수컷 본능 충만한 시절로 살아보는 건 뭐 어떠랴.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건 또 어떠랴.
4월인데 말이다.
노래 한 소절 뽑고 글을 마치려 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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