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록 송강호가 “대학로에서 고개를 옆으로만 돌려도 그대로 의미가 되는 배우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서서히 알려지는 찰나였다.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이라는 독립 영화로 처음 스크린에 데뷔했고, <잠복근무> 같은 상업 영화까지 찍었다. 그렇다고 그가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니다. “박찬욱 감독이 자기 영화가 상업 영화라고 말한 의미는 상업의 끝을 잘 깨뜨려 관객과 소통하겠다는 의미예요. 그런 면이 내가 박찬욱을 좋아하는 이유죠. 상업 영화에 익숙한 관객과 소통하면서 서서히 우리가 추구하는 길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딱 한 컷을 건지느라 두 시간을 찍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서도 1백 장이 넘는 사진을 띄운 모니터 앞에서 그는 한 장 한 장을 꼼꼼히 살폈다. 오광록의 영화 속 대사에는 늘 공백이 있다. 첫 문장이 끝나면 한 템포 기다린 후 다음 대사를 친다. 그와의 촬영도, 인터뷰도 그렇게 이뤄졌다. 한 콘셉트로 한 컷을 찍으면 커피 한 잔,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다음 컷 감정을 잡는다. 수십 번 했을 인터뷰인데도, 질문이 가면 조금의 공백 후 답이 나온다. “난 시를 쓰며, 연극을 하며 살았어. 배고프게 살았단 말이지. 시간이 나면 밭 갈고, 여행하고, 책 읽고 사는 게 다야.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지. 배고프면 잤고, 일어나면 시를 썼어. 난 느리게 사는 게 좋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 그의 이런 느린 걸음은 채우고 싶지 않은 여백이다. 20대에 배우예술원 1기로 들어갈 때만 해도, 연극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글쟁이였고 시로써 80년대의 부당한 사회를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무대를 사랑하게 되면서 3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물론 그의 시도 꾸준히 한 줄 한 줄을 늘리고 있었고. “올 5월쯤에 연극을 한 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의 3년 만이니까 오랜만에 하는 거죠.” 박찬욱 복수 시리즈에 빠짐없이 출연한 것을 필두로, <마지막 늑대>,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흡혈형사 나도열>까지 그가 연기한 역할은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역할의 히스토리를 중요시 해요. 영화에서 짧게 보여주니까 관객은 그의 삶을 다 알 수 없어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잖아요. 그런 역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아요. 악당이라도 그가 악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던 그의 히스토리를 보여줘야지.” 하나의 주름을 더 새기면서 오광록은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Editor 박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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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느리다, 심하게 느리다.” 하나뮤직 사람들 얘기를 하던 이한철이 갑자기 반말이다. 그런데, 반말이 아니다. 사투리일 뿐이다. 대구 촌놈들에겐 느끼할 테고 능글능글 서울 촌놈들에겐 억세겠지만 사투리는 사투리다. 1994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면서 상경했으니 서울 생활만 12년째다. 그래도 이 ‘천재뮤지션(지식검색에 등장한 질문 ‘이한철은 천재인가요?’로 인해 인터뷰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란다)’의 말투는 여전히 ‘대굿말’이다. 장난스러운 인상도 여전하다. 장난꾸러기, 아이, 악동. 이한철의 이미지는 고집스럽게 한결같다. “나이가 드셨잖아요.” 말을 꺼내자마자, “네. 고민이에요.” 그의 대답이 내 두 손을 덥썩 잡는다. 고민의 시점은 불독맨션 2집을 만들 때다. 어른스러워져 볼까 하고 만든 음반은, 그러나 어두워져버렸다. 어른스러워져 보려니 안 맞다는 게 결론이었다. “우울할 때는 아예 곡이 써지지도 않아요. 결국 밝고 기분 좋을 때 만든 곡들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밝은 사람이니 나도 거기에 반응하는 것 같아요.” 델리스파이스보다 앞서 한국적 모던록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솔로앨범, 이어서 ‘지퍼’라는 듀오를 결성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적당히 꾸밀 줄 알고 이미지 메이킹도 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투리’를 고칠 생각은 없었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세금 정리해서 고향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그즈음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스위트피’라는 앨범을 혼자서 뚝딱 만드는 걸 보고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불독맨션을 만들어 연습실에서 녹음한 음반 2천 장을 만들었다. 홈페이지에서 주문받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포장하고 우체국으로 갔다. 주문자 이름과 6천 원이란 금액이 쭉 찍힌 통장은 한 달이면 새 통장으로 바꿔야 했다.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다시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랐다. 그가 8년 만에 낸 솔로앨범 <organic(올가닉)>은 스스로에 관한 고민에서 얻어낸 답들이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아예 ‘재부팅’해보기로 했다. 통기타에 목소리만 뼈대로 놔두고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 어떤 곡은 기타, 베이스, 드럼의 단출한 구성이다. 하지만, 음악은 단출하지 않다. 가사속지 없는 ‘불친절한’ EP 음반은 그야말로 털털하다. 오버와 과잉에 지친 귀를 쉬어가기에 충분하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이한철은 낯간지러운 짓 못하고 ‘여러운 짓’을 어려워하면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느낌이다. “따뜻한 접근은 좋아하는데 표현은 잘 못해요. 진지해지고 싶을 때도 있는데 말을 꺼내면 상대방이 웃어버리니까. 진지한 얘기를 할 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가볍다고 해서 결코 진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어른스럽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고로 이한철의 잘못이 아니다. 녹취를 풀기 위해 플레이버튼을 눌렀더니 “안녕하세요, 이한철입니다.”라는 그의 음성이 들린다. 녹음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그가 집어들고 바로 녹음한 소리다. 역시 그는 그런 게 어울린다. Editor 이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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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화 군대 다녀온 남자 복학생들만 마신다는 ‘코카스(이 음료의 이름에서 ‘복학생’을 최초로 연상한 이의 중학생 유머감각에 경의를!)’를 한 병씩 나눠 마시며 인터뷰를 시작… 하려 했으나 스튜디오엔 커피밖에 없었다. 코카스를 떠올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성화 씨를 보면 항상 ‘복학생 형’ 이미지예요. “PD나 작가들이 내 이미지를 항상 그렇게 보는 모양입니다. 안경을 벗으면 인상이 좀 달라 보이기도 하는데 말이죠.” “어, 그런데 뭔가 달라 보이네요?” “관리를 좀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정성화의 목소리는 앙드레 김으로 바뀐다. “우리 쇼에 세우고 싶어서 제가 성화 씨를 불렀어요. 그런데, 코를 약간 높이셔야 될 것 같아요.” 앙드레 김의 한 마디는 그에게 ‘내가 이 부분이 맹점이었구나!’하는 깨우침을 안겨줬고 그 길로 성형외과를 찾았다. 이 정도면 주사 한 방으로 됩니다. 그것도 곧장. 성형외과 의사도 앙드레 김과 비슷하게 해법을 곧장 찾아주는 센스를 가졌고 참으로 간단하게 정성화의 푸근한 인상에 대한 콤플렉스는 사라졌다. 개그맨으로 출발한 그는 드라마 <카이스트>를 하면서 정성화 하면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선하고 순수한 청년의 인상을 갖게 됐다. “첫인상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계속해서 그런 방향으로 섭외가 들어왔죠.” 이후, 여러 드라마에 등장했지만 그를 결정적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바로 <아이러브유>라는 뮤지컬을 통해서다. 2004년 11월 말에 시작해서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있는 이 뮤지컬을 본 사람들은 ‘정성화의 재발견’에 대해서 얘기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한국 뮤지컬 대상 남우신인상에 최종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TV 활동 틈틈이 <방황하는 별들>, <가스펠> 같은 뮤지컬에 선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배역을 맡지 못했던 그로서는 대단한 결과다. “군대를 제대한 뒤 쭉 연기를 해오면서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지만 생각처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러브유>를 하면서 뮤지컬이 이렇게 잘 맞는구나, 나에게 많은 걸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뒤로는 이래저래 바빠졌다. 뮤지컬에서 업그레이드돼서 아침 드라마에도 나오더니 이제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숱하게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묻혀 있던 그가 조승우·강혜정 커플이 주연하는 <도마뱀>에서 존재감 있는 조연을 한다. “<도마뱀>에서는 어떤 역할인가요?” “똑같지요, 뭐.” 연기는 생김새가 아닌 그 사람의 정서로 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침 드라마로 한동안 쉬었던 <아이러브유>에도 지난 1월부터 다시 출연 중이다. Editor 이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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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킴 의외였다. 늘 걸치고 다니던 페도라와 선글라스를 벗고, 스트라이프 셔츠에 밝은 색 스웨터를 수수하게 받쳐 입은 바비 킴은, ‘힙합 아티스트’라는 이름 앞에 우리가 떠올리게 마련인 1만 가지 고정관념 중 어느 것과도 상관이 없어 보였다. 말쑥한 모습에서는 문득 미소가 넉넉한 모 영화배우의 얼굴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일종의 콘셉트예요.” 그가 빙글거리며 입을 연다. “부가 킹스 멤버로서가 아닌, 바비 킴의 다음 앨범을 준비 중입니다. 밴드와 구별되는 저만의 색을 드러내는 음악이 될 거예요.” 이제는 자신을 좀 더 보여주겠다는 뜻을, 외모의 변화를 통해 사소하게 흘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바비 킴의 음악이, 고정관념을 들이댈 만큼 순도 100%의 힙합인 적은 없었다. 포크나 레게, 때로는 솔적인 기운이 들썩거리는 비트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다양한 장르는 그의 음악에 입체적인 표정을 더하는 것 같았다. “또래 사이에서 힙합이 대세였던 어린 시절에도, 저는 음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이런저런 노래를 접하고, 또 좋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영향이 지금의 음악에도 녹아 있는 거겠죠.” 그렇다고 다양한 장르를 능숙하게 버무린 앨범 정도로만, 바비 킴의 음악을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노래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목소리에 오랜 세월을 견뎌낸 듯한 은근하고 깊은 감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데뷔 이후 10여 년 동안이나 그가 감내해야 했던, 순탄치 않은 무명 시절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떠나고 싶어도 계속 찾게 되더라고요. 또 음악이 나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음악은 연인보다는 형제 같아요. 쉽게 짜증도 내고, 미워도 하는데, 그래도 떠날 수가 없었어요.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오랜 세월 함께 걸어온 음악에 대한 애증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아닌 바비 킴처럼만 보였다. 감정이 깊은 눈, 장난스럽게 치켜올린 입매, 이것이 바비 킴의 얼굴이다. Editor 정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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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명랑 만화에 등장하는 뻔뻔하고 고집 센 골목대장이 고스란히 나이만 먹은 것 같았다. 아, 얼마 전 인터뷰가 아니라, 이선균이 시트콤 <연인들>을 통해 데뷔할 즈음의 이야기다. 과장된 코미디 세계 안에서도 특히 도드라질 만큼 괴상하게 가벼운 인물을, 이선균은 익숙한 듯 연기하고 있었다. “사실은 녹화 때마다 굉장히 긴장을 했어요. 제가 원래 숫기 없는 A형이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오버를 섞어 연기한 건데, 역할이 독해서인지 한동안 그 이미지를 떨치느라 힘들었죠.” 이선균을 고쳐 살피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태릉선수촌>부터다. 그는 과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지는 국가 대표 수영 선수를 연기했는데, 무심하게 돌아서는 뒷모습에 현실만큼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어 담담하게 걷는 품이 참 쓸쓸해 보였다. 멋있는 ‘시늉’이 서툴러서 근사한 역할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이선균은, 과연 주름 하나 없이 다림질한 캐릭터보다 많이 구겨져서 좀 더 진짜같이 보이는 인물에 끌리는 듯하다. 최근 개봉한 <손님은 왕이다>에서는 잔인한 해결사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문소리의 우유부단한 남자친구를 연기한 <사과> 역시 우여곡절 끝에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오래 참았다는 듯, 다양한 모습을 풀어놓고 있는 참이다. “대학 시절, 술 많이 사줄 것 같아 연극반에 찾아갔죠. 배우는 싫고 스태프만 하겠다고 했어요. 조명부로 한동안 일하다 배우 한 명이 힘들다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결국 대신 무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관객 앞에 선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배우 이선균의 출발은 농담 같았지만, 그의 열정만은 언제나 진지했다. 1g도 되지 않을 듯 가벼워 보였던 시트콤에서의 모습은 그만 잊어도 괜찮을 것 같다. 골목대장은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Editor 정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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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요즘은 입을 찢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양옆으로 씩 그려지는 미소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승열은 태권도장에 갓 출석한 꼬마가, 발차기 훈련을 위해 가랑이를 유연하게 할 때처럼 ‘찢는다’는 표현을 썼다. “웃는 게 어렵고 어색해요, 꼭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니까요?” 생각해보니 이승열의 웃음을 본 기억이 적다. 사진 속의 그는 대부분의 경우, 묵묵한 얼굴을 반쯤 어둠 속에 묻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방준석과 함께한 ‘유앤미 블루’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여겨진 적은 없었다. 이승열의 블루는 항상 빛이 탁하고 진했다. 단번에 해독할 수 없는 감정이 한숨같이 발을 끄는 목소리를 타고 무심하게 흘러나온다. 달리 말하자면, 대중이 쉽게 귀를 열기에는 요란함이 적었다는 뜻이다. 자연인 이승열도 그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그는, 예상처럼 채도가 낮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말마따나 능숙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잘 웃었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제 음악이 그렇게 무겁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데뷔 이래 줄곧 그를 따라다닌, U2의 보노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넉넉하게 반응했다. “그런 말에 민감해져서 일부러 다른 창법을 짜내지는 않으려고요. 일단 제 안에서 음악의 어휘를 늘리고 익히는 게 중요하겠죠. 그 뒤에는 의식하지 않아도 순간에 맞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게 생각도, 계산도 없이 노래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준비 중인 새 앨범은 전보다 좀 더 밝을 거라고 덧붙인다. “꼭 대중성을 의식해서는 아니에요. 그냥 스스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전작에서 영 멀어지는 것은 아닌 ‘이승열’적인 밝음이 되겠죠.” 가을이 되기 전에 우리는 그답게 밝은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될 터다. 그때쯤이면 ‘연습’을 마친 이승열이 보기 좋은 웃음도 슬쩍 걸치고 있을 것 같다. Editor 정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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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 “섹스에 관한 거예요.” 찍히다 보니 찍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몇 개 썼다. 내용을 물으니 대뜸 ‘성인물’이다. 데뷔작 이후 <방과후 옥상>까지 줄기차게 교복을 입어야 했던 그가 비슷한 처지의 문근영과 달리 ‘국민 남동생’이 되지 못한 것은 미소년이 아니라서가 아니겠느냐는 다음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난감하다. 그렇지, 봉태규는 어른이다. 불의 혀 같은 연애의 뜨거움과 데인 상처에 대해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가 주는 성숙함을 말할 줄 아는 어른이다. 그럼에도 교복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나는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이만큼밖에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싫진 않았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배역이 안 들어와요.” 딱 <광식이 동생 광태>이후부터다. 오히려 멜로영화 제의가 많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그렇게 넓게 보고 있다는 것. 액면가로 보면 경재(김아중)에게 그리 당당할 것 없어 뵈는 광태를 사람들은 실제의 봉태규와 쉽게 동일시한다. “사람마다 다 잘생길 순 없죠. 그런데 저 같은 얼굴이 ‘되지도 않는 자신감’을 가진 게 오히려 귀여워 보인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잘생긴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어느 날 ‘개성파 배우’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당황하시던 어머니 얘기를 하던 그가 그리는 궤적은 송강호의 그것이다. 대사를 애드리브처럼 하고 애드리브를 대사처럼 한다는 칭찬을 감독으로부터 듣는 선배의 연기는 봉태규가 생각하는 ‘2% 부족론’과 맥을 같이 한다. 오버하지 않는, 오히려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지혜다. 모델 사이즈의 미소년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가 돼서는 단 한 번도 오디션에 붙어본 적이 없는 봉태규에게서 임현식 선생의 궤적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그건 아마도 시대가 변해서, 그리고 봉태규가 디올 옴므의 스키니 팬츠를 입을 줄 알아서일 거다. 정작 디올 옴므가 어울리는 것은 강동원이지만 말이다. “나한테도 자신감은 있다. 잘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나를 좋아해서다”는 ‘주연배우 봉태규’의 자신감을 보려면 <방과후 옥상>에 올라가볼 양이다. Editor 이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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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희 론 커스텀, 김서룡 옴므, 송지오 옴므, 홍승완, 장광효, 이주영, 르꼬끄 스포르티브…. 2006년 S/S 서울컬렉션에 양재희가 메인으로 선 무대다.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에 디올 옴므 스키니 팬츠가 딱 어울릴 것 같은 마른 몸매의 그가 헤집고 다니지 않은 쇼를 찾는 것이 쉬울 지경이다. 그는 확실히 톱 모델이다. 하지만 얄밉게도 모델 지망생이 아니었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페이가 가장 높은 ‘성도어패럴’ 디자인실에 들어가 피팅 모델을 시작했어요.” 디자인실에 있다 보니 온갖 잡지를 섭렵하게 됐고, 서서히 모델에 관심이 생겨 무작정 모델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제가 아카데미 원생 중에 제일 워킹을 못하는 모델이었어요. 남자 모델과 여자 모델의 워킹은 확실히 달라야 하는데 전 계속 김원경, 노선미 선배의 워킹을 따라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워킹이 모델 양재희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캣(cat)워크’인 만큼 제 워킹이 고양이같이 우아하다며 선호하는 디자이너들이 생겼어요.” 차별화를 위해 3년 동안 무작정 머리를 길렀고 메트로섹슈얼이 유행하자 죽을힘을 다해 10kg가량을 감량했다. 왜 성형은 안 했느냐고 물었다. “너무 고칠 데가 많아서요, 하하”라며 이렇게 덧붙인다. 모델은 몸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냐고. 강동원, 조인성, 조한선 등 모델 경력을 발판으로 배우가 된 선배처럼 꽃미남과는 아니다. 하지만 살찔까 마음껏 맥주도 못 마시고 피곤해 죽어도 피트니스 센터에 가는 그는 프로 모델이다. “무대에 안 서보셨죠? 그 긴장감과 설렘은 정말 끝내줘요.” Editor 박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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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장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바로 김반장의 얼굴이다. 얼굴도, 어깨도, 사상도 동그란 그는 얼마 전 <한겨레 21> 표지를 장식했다. 불쾌한 국수주의를 나타내는 국기 경례를 거부한다고 주장한, 활동가로서다. 그가 드럼과 보컬, 리더를 담당한 ‘아소토유니온’은 흑인 음악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을 얻으며 오버그라운드로 단숨에 올라섰고, 아소토유니온을 전신으로 하는 새로운 밴드 ‘윈디시티’도 오리지널 솔 뮤직을 하고 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제게 음악과 사회 활동은 몸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그 스피릿을 이해해야 하고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 해요.” 그는 여전히 전철을 타고 다니고 이주 노동자들 틈에 끼어 집회를 한다. 함께 집회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단상에 올라가 멋진 공연을 하는 걸 보면서 놀란 시위 대원이 한둘이 아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하는 사람이 모두 오버그라운드에 진출하길 바라진 않아요. 제 경우엔 어떤 것도 상관없이 음악만 할 수 있으면 되고요. 그래서 조금 유명해졌다고 해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 대학 1학기를 마친 뒤 학교를 그만뒀고,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으로 유럽에 갔다. 거기서 느낀 자유로움이 좋았고, 조상으로부터 체득하는 흑인의 음악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딪히는 문제가 많았고 고민거리도 생겼다.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같은 필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비(非)아티스트적인 행동.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걸 하는 ‘가수’들이 많은 게 문제죠. 머리가 알기 전에 몸이 먼저 좋아해서 음악을 시작하고, 그 음악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바로 가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러브 레코드>란 제목의 윈디시티 데뷰 앨범을 만들면서도 솔 뮤직에 뿌리를 둔 여러 음악 장르의 재해석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펑크와 레게, 삼바 재즈까지 솔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솔, 펑키, 윈디시티, 흑인 음악, 언더그라운드 등 어떤 하나의 타이틀에 구속받고 싶진 않아요.”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타이틀은 역시 아티스트 김반장이다. Editor 박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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