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신발 + 박만현(스타일 리스트)
크리스찬 루부탱 스터트 로퍼
파리 구두 브랜드 크리스찬 루부탱의 인기를 대변하는 말들이 몇 개 있다. ‘여성들의 로망’ ‘하이힐의 종결자’ ‘주얼리 슈즈’ ‘서인영 신발’까지. 물론 이런 수식어들은 여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한데 크리스찬 루부탱에서 남자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이힐 못지않은 강력한 징 장식의 로퍼를 말이다. ‘주얼리 같은 신발을 만들고 싶었다’는 크리스찬 루부탱의 말은 남자 신발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보석처럼 화려한 하이힐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남자 신발을 만들었으니 이 정도는 무난했을 터. 이미 하이 패션 추종자들 사이에선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올해 남자 신발 중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틀림없다.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요물’처럼 보이겠지만.
올해의 의자 + 김명환(aA디자인 뮤지엄 대표)
핀율 45 체어
북유럽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핀율은 덴마크 왕실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는 탁월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완벽한 구조와 고유한 곡선이 흐르는 아름다운 형태로 의자를 만들었다. 그의 선구적인 가구 작업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70여 년이 지난 2011년, 뉴욕에 위치한 UN 대회의실이 핀율이 만든 의자들로 리뉴얼되면서 그는 올해 ‘기념비적인 해’를 맞게 된다. UN은 전통적이면서도 21세기에 맞는 현대적인 공간을 꾸미고 싶어 했다. 그만큼 핀율의 의자가 세월을 초월한 디자인임이 다시 한 번 검증된 셈이다. 다가올 2012년에는 대림미술관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핀율 회고전이 열릴 계획이다.
올해의 카메라 + 조원희(테크 컬럼니스트)
올림푸스 XZ-1
후지 X100을 올해의 카메라로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올림푸스 XZ-1을 선택할 것인가 오래 고민했지만 결론은 XZ-1이다. 똑딱이 카메라는 렌즈 밝기가 F1.8이다. 112mm 망원에서도 최대 개방이 F2.5다. 35mm 카메라로 환산할 때 28mm의 광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역시 여행 시 짐을 가볍게 해줘 좋다. 이런 슈퍼맨급 렌즈에 ‘똑딱이’계에서는 큰 편인 0.62″ CCD가 달려 있다. 경쟁 기종인 파나소닉의 LX는 단번에 제치면서 매출 면에서 자신들의 주력 제품인 올림푸스 펜 시리즈마저 다소 잠식할 기세다. 이미지 처리 엔진을 거친 화질도 보통이 아니다. 이 크기에 이 가격대에 이 정도의 선예도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없다고 보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격마저 착하다는 점이다. 비슷한 스펙의 리코 GR 디지털 IV는 70만원대다. 콤팩트 디카와 하이엔드의 경계를 무너뜨린 공로가 크다.
올해의 디자인 제품 + 유영규(클라운드앤코 대표)
X-Ray by 토쿠진 요시오카
2005년 KDDI ‘Media Skin’ 디자인을 일본에서 처음 접한 후, 토쿠진 요시오카의 다음 모바일폰 디자인을 매우 기대했다. 그동안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모바일폰에 손을 댔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수준에는 못 미쳤다. 그만큼 모바일폰 디자인은 감각적인 재능, CMF(Color·Material·Finish) 그리고 기술의 이해를 넘어선 초디자인적 재능이 필요하다. 2010년 말 KDDI iida는 토쿠진 요시오카와 합동 작업한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미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아진 터에 피처폰 디자인이라 소유욕은 덜했지만, 자극을 주기에는 충분하고 훌륭했다. 이 디자인은 복잡한 내부를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색상, 재료와 질감의 조화롭고, 단순한 관계 정립에 대해서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7백 개 이상의 LED로 만들어내는 LED GLOW의 은은함은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도 정교하고, 정밀한 느낌이다. 한국에서도 선보인 ‘자이언트 크리스털 윈도‘와 ’인비저블 체어’ 등을 통한 반투명 소재의 다양하고 감각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느낌이다. 이제 나는 그의 다음 디자인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의 레스토랑 + 안휴(미식 컬럼니스트)
산당
2011년은 양평에서 수년간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자 ‘방랑식객’으로 잘 알려진 음식 연구가 임지호 선생의 한식당 산당이 청담동 한복판에 오픈한 기념비적인 한 해랄까? 이곳은 철저히 우리 몸에 약이 되는 자연 음식 전문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인 영국 팻 덕(Fat Duck)의 오너와 산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그는 산당의 음식을 ‘전위적이며 신비로우면서도 새로운 한식’이라고 격찬했다. 요 몇 년간 그다지 성과는 없었던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식당이 문을 닫는 시점에 오픈한 산당은 긴 가뭄 속에 처해 있는 한식의 현주소에 단비 같은 존재다. 누구라도 운 좋게 산당 임지호 선생의 즉흥 요리를 맛본다면 ‘음식은 종합예술이며 약이고 과학이다’라는 산당의 철학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왼쪽) 올해의 스타일 아이콘 + 한태민(센프란시스코 마켓 대표)
애런 존슨
정확히 말하면 영화 <노웨어보이>에서 존 레넌 역할을 한 애런 존슨이다. 이 영화는 존 레넌의 풋풋했던 시절을 담고 있다. 즉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초반 정도.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그 당시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에드워디안 룩(Edwardian Look)과 로커빌리(Rockabilly) 스타일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애런 존슨이 입고 나오는 옷과 웨이브를 말아 올린 ‘퐁파두르(Pompadour) 헤어스타일, 자유분방한 걸음걸이까지 마치 ‘영국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1990년생이란 놀라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 레넌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애런 존슨에게는 올해의 스타일 아이콘이란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른쪽) 올해의 슈트 + 정욱준(패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요즘 디자이너는 예전과 달리 입을 수 있는(조금만 용기를 내면) 옷을 권하고 또 만든다. 그 안에 얼마나 자신의 색을 자연스럽게 입히는가가 요즘 디자인의 관건이다. 한데 남성복 그것도 수트 분야에서는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라프 시몬스의 수트는 가장 모범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마치 ‘미니멀리스트’라고 선포라도 하듯 현대건축과도 같은 옷을 만들지 않는가. 가까운 미래와 현재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영악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이름을 건 컬렉션과 질 샌더라는 브랜드에서 보여준 그의 수트는 얄미울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올해의 시계 + 구교철(시계 컬럼니스트)
예거 르꿀뜨르
리베르소 울트라 씬
작년 몇 개의 모델이 출시되면서, 올해 본격적으로 등장을 예고한 바 있는 울트라 씬 워치. 예상대로 많은 모델이 등장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거 르꿀뜨르의 리베르소 울트라 씬이다. 직사각형 케이스가 기본인 리베르소는 원형의 무브먼트 대신 사각형 무브먼트인 칼리버 822를 사용하는 것이 매력이다.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한 경쟁 무대는 어디까지나 동그란 시계만을 위한 곳이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이것은 예거 르꿀뜨르가 더욱(?) 상업적으로 변신하기 직전 남긴 가장 아름다운 사각형 울트라 씬 무브먼트이다. 설계 당시와 달리 매우 고전적인 자태를 지니고 있어 다른 데서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인 칼리버 822는 생산성이 낮아 입지가 점점 좁아졌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선사해야 하는 메이커들은 이런 울트라 씬을 슬그머니 다시 꺼내 들면서, 그 덕에 칼리버 822를 사용한 리베르소가 울트라 씬이라는 칭호를 새롭게 받고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반길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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