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레나>는 별책부록까지 만들어가며 클래식 수트에 대해 열변을 토해왔다. 남성복의 뼈대는 클래식이고, 그것이 밑거름으로 깔려 있어야만 옷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발맞춰 한국의 클래식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커지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겨났다. 얼마 전 어느 패션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에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 그득했고, 대부분 클래식 수트에 머리도 삐침 하나 없이 정갈하게 빗어 넘기고, 노트를 살려 타이를 매고, 손에는 포트폴리오 백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이렇게까지 빨리 변할 줄이야. 패션 에디터로서 뿌듯하고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치 같은 참고서라도 본 듯 특색 없이 똑같이 입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기껏해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나이에 빈틈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하게 클래식 신봉자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다들 노신사라도 된 듯 중후한 척했지만 역시 어울리지 않았다. 내면과 외면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듯했다.
저건 아닌데 싶었다. 클래식은 교복이 아니다. 정석대로 답답하게 입을 필요가 없다. 형식에 일단 갇혀버리게 되면 좀처럼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옷도 마찬가지겠지만 클래식 수트는 특히 그렇다. 보다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이다. 디자이너 ‘유밋 베넌(Umit Benan)’을 예로 들어보자.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는 현재 남성복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인 디자이너다. 그 역시 클래식 수트를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만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클래식 수트 위에 기발한 스타일링을 더한다. 예를 들면 기본적인 감색 블레이저에 붉은색 레깅스를 입고, 셔츠와 타이, 거기에 재킷까지 입고 그 위에 또 니트를 반쯤 걸친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옷을 입고 있는 모델들은 반지보다 큰 피어싱을 하고, 한 10년 정도는 면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수염이 덥수룩하다. 그에게 클래식 수트는 하나의 재미있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클래식이란 범주 안에서 이토록 창의적인 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다고 그의 컬렉션 룩을 그대로 따라 입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도 입을 수 있구나’를 생각하라는 거다. 분명한 것은 패션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은 서로 합쳐지고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교과서에 나오는 덧셈 공식과도 같은 클래식 하나만을 달달 외운다고 어려운 응용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냔 말이다. 공식에 얽매이지 말고 응용력을 키우자. 때론 빈틈도 보이고, 때론 삐딱하게도 입어보자. 어쩌면 그게 똑바른 것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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