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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담다

속내를 말하게 하는 가면을 의자로 만든 가구 디자이너. 공간을 띠 하나로 둘러 채운 인테리어 디자이너. AC 밀란의 클럽 건물을 역동성으로 빚은 건축가.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파비오 노벰브레를 설명하는 단어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손댄 결과물을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 그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다.

UpdatedOn April 03, 2025

파비오 노벰브레와 함께한 네모체어는 크리에이티브랩 제품.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다 행복을 찾아야 해요.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하늘이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점이죠. ”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을 맞아 홍보대사로서 방문했어요.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은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탈리아 정부가 디자인이 얼마나 이탈리아의 중요한 자산인지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굉장히 자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중에 디자인을 이탈리아 정부 차원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홍보하려고 하는 거죠. 굉장히 오래된 행사는 아니에요. 9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을 기념하죠. 이탈리아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홍보대사가 따로 있나요?
제가 나이와 경력이 좀 있어서 여러 나라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어요.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최근 세계정세가 혼란스럽잖아요. 그럴 때 아시아야말로 세계의 미래가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이 가장 흥미로웠기에 선택했죠. 2019년에 찾은 이후로 오랜만에 방문했어요. 앞으로 한국에 오래 머물고 싶네요.

한국의 어떤 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나요?
한국인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굉장히 비슷해요. 한국에 오면 너무 편하고 이탈리아에 있는 것 같죠. 또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좋아요. 한국은 역동적인 국가이기에 흥미 있는 프로젝트를 굉장히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느린 나라인데 한국은 굉장히 빠른 나라죠.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명확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탈리아 디자인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이탈리아 디자인의 차별점은 접근법에 있어요. 특정 분야의 고정된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점이 중요하죠. 인문학과 과학을 섞는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라 그 안에 다양한 분야를 혼합한 접근법이 이탈리아 디자인의 특성이죠. 이런 특성을 굉장히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요. 이 말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건축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가서 영화학을 공부했어요. 영화를 공부한 점이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큰 영향을 줬죠. 제 디자인은 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자체에 어떤 서사나 이야기를 담기 때문이죠. 이런 점은 영화의 서사가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로 이끈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철학적인 대답이 될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가 점점 더 평면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니터, 차, 컴퓨터, 휴대폰 등등 다 평면적이죠. 하지만 인간은 피와 살이 있는 3차원적인 존재잖아요. 인간의 그런 육체성을 가장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분야야말로 디자인과 건축이 아닌가 생각해 디자인과 건축을 선택했죠.

지금까지 구현한 건축과 인테리어, 제품 디자인을 보면 상상력이 뛰어나고 대담성이 느껴져요. 기존 형태에서 벗어나는 과감성이나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요?
용기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그 모든 것이 정상으로 느껴졌거든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으로,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요. 좀 전에 제 답을 들으며 기자님이 미소 지었는데, 무언가 느낄 때 짓는 그런 미소를 추구하는 디자인을 하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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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의 본사 카사 밀란. 축구의 역동성을 건물의 날카로운 외관과 뛰는 선수 형상으로 표현했다.

  • AC 밀란의 본사 카사 밀란. 축구의 역동성을 건물의 날카로운 외관과 뛰는 선수 형상으로 표현했다.
  • 스튜어트 와이츠먼의 플래그십 스토어. 하나의 끈으로 선반과 조명, 소파를 모두 구현하는 디자인으로 공간을 채웠다.
  • 네모 체어. 파비오 노벰브레는 집 안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가면 같은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 뮤즈 램프.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거나 듣지 않으려는 사람의 멍한 얼굴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일상의 소소함을 디자인으로 발화하죠.
그래서 항상 행복해야 해요.
슬프면 영감을 얻기 힘들죠.”


디자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이런 느낌으로 디자인하는구나 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다 대표작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를 꼽진 않아요. 이곳에 있는 네모(Nemo) 체어를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이야기하면 제 디자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네모 체어는 15년 전에 만들었어요.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 드리아데가 요청했죠. 당시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들은 민얼굴로는 모든 진실을 말하지 못하지만 가면을 주면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요. 이 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집 안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가면 같은 의자를 만들어두고 싶었죠.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의자로 연결됐네요.
또 네모 체어를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시아인인지 백인인지 모호해요. 아무도 아닌데 모두일 수 있죠. 그래서 네모 체어예요. 이탈리아어로 네모는 ‘그 누구도 아닌’이란 뜻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드리아데 창업자가 이 의자가 너무 마음에 들지만 솔직히 하나도 안 팔릴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그런 점이 이탈리아 디자인답다고 하며 출시했죠. 하지만 15년 동안 드리아데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체어가 됐죠.

매번 시작점이 다를 테지만, 보통 디자인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요?
파블로 피카소의 난로 위에 이런 말이 쓰여 있어요. 나는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발견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가장 생산적인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 자체로 봤을 때 전략가라고도 할 수 있죠. 어떻게 보면 되는 대로 흐르는 대로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야말로 예술가의 삶 자체가 영감이라는 뜻이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문에 비치는 햇살이나 꽃이 예쁘게 핀 모습에서 영감받을 수도 있죠. 그럴 수 있는 지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선장이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심지어 바닷물을 먹어보며 나아갈 길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영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저도 프로젝트를 맡으면 그 시기, 그 순간에 저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소소함을 디자인으로 발화하죠. 그래서 항상 행복해야 해요. 슬프면 영감을 얻기 힘들죠. 또 슬프더라도 그 기간이 짧아야 해요.  

현대인은 행복을 잘 못 느끼죠. 항상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다 행복을 찾아야 해요.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하늘이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점이죠. 건강 그 자체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셋째를 얻었어요. 제 나이가 쉰여덟 살인데 한 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그 아들의 미소를 봤을 때 너무 행복하죠. 이런 작은 행복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끔찍한 비극 때문에 슬픔이 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에 비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은 작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하죠.

다시 디자인 얘기로 돌아가서, 일상의 영감을 디자인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을까요?
2003년쯤에 유명 브랜드 카펠리니와 ‘소파 오브 솔리튜드’라는 소파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당시 전 부인과 이혼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죠. 그때 느낀 감정을 소파 컬렉션에 담아내 ‘고독의 소파’가 탄생했죠. 많은 예술 분야에서 작가는 지극히 사적인 것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디자인하죠.

독특한 결과물을 많이 선보였어요. 창의적 발상을 잘 받아들이는 이탈리아 문화 덕에 그럴 수 있었나요?
이탈리아가 특별히 예술가의 창의성에 호의적인 건 아닙니다. 다만 전 스토리텔링에 신경 썼어요. 결과물에 담긴 스토리에 사람들이 더 주목하고 매력적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화가한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해도 피카소나 카라바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결과물이 다르잖아요. 결과물은 초상화지만 화가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제 스타일을 알고 의뢰한 거죠.

지금까지 결과물에 스토리텔링을 담아왔는데 항상 잘 풀리진 않았을 듯해요. 어렵게 풀어낸 경우는 무엇이었나요?
특별히 어려운 경우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영감 자체를 막 애써서 떠올리지 않으니까요. 영감은 유동적이고 액체 같은 것이에요. 흐름에 따라서 오는 거죠. 페트병을 디자인해야 할 때 계속 앉아서 페트병을 보고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산책하면서 주변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영감을 얻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디자인이란 결국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건물부터 의자까지 다양한 분야를 디자인해왔는데, 꼭 디자인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요?
항상 도전 의식으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찾기보다 자연스럽게 오는 걸 좋아합니다. 의뢰가 오는 대로 하는 게 좋아요. 지금은 심지어 로봇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냥 있으면 삶이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해요. 또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감옥을 호텔 겸 아트센터로 리모델링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예전에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 때문에 투옥된 감옥이에요. 이렇게 좋아하는 것, 새로운 것이 그냥 찾아오죠.

디자인 안목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정한 열정과 주입된 열정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업적인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다른 누군가가 입고 있는 게, 혹은 광고나 매체가 주입한 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혼동하는 일이 많죠. 어떤 것을 봤을 때 정말로 이것이 자신한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죠. 가짜 욕망과 진짜 욕망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번 인터뷰에선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요?
언어가 통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교감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할 때 표정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결국 인간은 동물이기에 본능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비언어적인 걸 포함해 함께 본능적인 무언가를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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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신동훈

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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