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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것

202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80년간 인류는 하늘을 넘어 우주로 향했고, AI가 사람의 손과 발을 대체하며,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모든 소식을 보는 시대를 맞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 활약하는 군수품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름을 떨쳤던 물건들을 모아 무용담을 살펴봤다.

UpdatedOn February 07, 2025

01 미국과 독일의 탄산 전쟁 코카콜라 & 환타

보급품은 전쟁을 수행할 때 반드시 필요한 물품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기호품까지 포함한다. 콜라도 그중 하나였다.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고국을 떠난 병사들에게 콜라를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943년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코카콜라 측에 전보를 보내 해외에 코카콜라 컴퍼니 공장을 지을 것을 요청했다.

코카콜라는 ‘회사에 얼마나 부담이 되든 상관없이 어디서든 코카콜라 한 병을 5센트에 마실 수 있게한다’라는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마신 코카콜라는 약 50억 병에 달한다. 난처해진 쪽은 독일군이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시는 나라였다. 전쟁 전 독일에는 코카콜라 제조 공장이 43곳 있었고, 특히 노동자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전 국민의 ‘총력전’을 선포한 독일은 군인의 사기 증진을 위해 범국민적 콜라 보급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추축국이었던 독일은 미국으로부터 코카콜라 원액을 제공받지 못했고, 결국 1940년 독일의 코카콜라 지사장 막스카이트는 코카콜라를 대체할 탄산음료를 내놓는다. 바로 환타다. 환타는 금세 독일의 국민 음료로 자리매김했는데, 전쟁통에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탓에 매번 원료가 바뀌면서 다양한 맛의 환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환타는 1960년 코카콜라에 인수되면서 전 세계에 팔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밴을 착용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건 파일럿이 아닌 육군 장성이다.”

02 하늘에서 치러진 전쟁 레이밴

제2차 세계대전은 공군력이 핵심 전력으로 떠오른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도 항공기가 활약했지만, 주로 참호전으로 전개된 전장에서 전세를 뒤집는 건 결국 보병과 전차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 육군 항공대 대령 존 A. 맥레디는 일찍이 파일럿을 위한 선글라스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높은 고도에서 장시간 태양광에 노출된 파일럿들이 메스꺼움과 두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맥레디 대령은 광학 제품을 제조하던 바슈롬에 특수 렌즈 개발을 의뢰한다. 훗날 바슈롬은 ‘광을 차단한다’라는 뜻을 담아 자신의 선글라스에 ‘레이밴(Ray Ban)’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레이밴 선글라스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 파일럿에게 보급됐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레이밴은 가벼우면서도 충격에 강한 합금을 사용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도 계기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렌즈 위는 짙고 아래는 옅은 코팅 기술을 도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이밴을 착용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건 파일럿이 아닌 육군 장성이다. 태평양 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는 1944년 필리핀 레이테섬 팔로 해변에 상륙할 때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이때 촬영된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레이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로 남았다

03 세상에 나쁜 고기는 없다 스팸

스팸은 미국 대공황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26년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제품명은 ‘호멜 플레이버-실드 햄(Flavor-Sealed Ham)’. 미국 미네소타의 정육업체 호멜은 당시 부산물로 취급받던 돼지고기 어깨살을 활용해 통조림 햄을 만들었고, 새 이름 ‘스팸’과 값싼 가격을 앞세워 인기를 끌었다. 스팸은 날씨에 상관없이 보관 및 취식이 편리했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곧장 병사들에게 보급됐다.

미국은 자국 병사뿐만 아니라 연합국 병사에게도 막대한 양의 스팸을 제공했는데, 동부전선에서 고전하던 러시아군은 스팸에 ‘루즈벨트 소시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전쟁 동안 보급된 스팸은 1억 개 이상이다. 스팸은 전쟁 후에도 유용했다. 미군이 각지에서 복구사업을 펼칠 때, 스팸은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훗날 한국전쟁에서 피란민들이 만든 부대찌개도 스팸 덕분에 탄생했다. 참고로 현재 스팸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클래식 부대찌개 아미 스튜’라는 이름으로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쉽게 고장나지 않는 지포는 담뱃불을 피우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며, 추위 속에서 병사들의 체온을 지켰다.”

04 사람 살리는 라이터 지포

지포는 19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시골 창고에서 탄생했다. 지포 창업자 조지 G. 브라이스델은 뚜껑이 따로 분리되는 오스트리아제 방풍 라이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라이터 뚜껑에 경첩을 달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라이터를 제작한다. 여담이지만 1930년대 가장 화제를 모은 발명품은 다름 아닌 지퍼였다고 한다. 브라이스델은 자신의 라이터가 ‘지퍼에 견줄 발명품’이라 자부하며 지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1941년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은 담배와 함께 보급할 라이터를 찾고 있었다. 지포는 이때부터 일반 소비자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모든 라이터를 미군에 납품했다. 지포 컬렉션 중에는 ‘1941 레플리카’ 모델이 있는데, 그중 새까맣게 페인트칠한 라이터가 있다. 반짝이던 지포 라이터는 전쟁 당시 적군에게 아군의 위치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어 군인들이 이를 막기 위해 검은색 페인트를 칠한 것을 그대로 복각한 것이다. 쉽게 고장나지 않는 지포는 담뱃불을 피우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며, 추위 속에서 병사들의 체온을 지켰다. 지포는 단순한 생필품이 아닌 전우였던 셈이다.

05 적도에서도 녹지 않는 초콜릿 엠앤엠즈

제2차 세계대전은 에어컨 없이 치러진 전쟁이었다. 당시 미군 보급품 리스트에는 초콜릿이 포함됐고, 무더운 태평양에서도 전쟁을 치러야 하는 미군에게는 녹지 않는 초콜릿이 필요했다. 이때 활약한 브랜드가 엠앤엠즈다.

엠앤엠즈 특유의 디자인은 스페인 내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버지로부터 초코바 사업을 이어받은 포레스트 마스는 유럽에 머물 당시, 군인들이 딱딱한 설탕 껍질을 두른 초콜릿 사탕을 먹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포레스트 마스는 초콜릿 회사 허쉬의 브루스 머리를 찾아갔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이름 초성을 따 ‘엠앤엠즈(M&M’S)’를 세운다. 엠앤엠즈가 처음 출시된 건 1941년 3월이다. 같은 해 12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내열성이 뛰어나고 운반까지 용이한 엠앤엠즈 초콜릿도 함께 전선에 투입됐다.

전쟁이 끝나자 엠앤엠즈는 일반 대중에게도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엠앤엠즈 초콜릿은 모조품이 생길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1950년부터 엠앤엠즈는 자신이 원조임을 알리기 위해 초콜릿에 ‘m’ 로고를 새기기 시작했다.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06 전쟁 필수품이 된 인스턴트커피 네스카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커피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 중 하나로 여겼다. 이때 보급된 것이 네슬레의 인스턴트커피, ‘네스카페’다. 네스카페는 브라질의 요청으로 처음 고안됐다. 1929년 네슬레는 브라질로부터 ‘막대한 양의 잉여 커피를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화학자 맥스 모르겐탈러는 가루 형태의 커피를 고안해냈는데, 여기에 탄수화물을 첨가하면 커피 원두에 가까운 풍미가 유지되는 점을 발견했다.

네슬레는 7년간의 개발 끝에 인스턴트커피를 개발했고, 1938년 스위스에서 자사 이름(Nestlé)과 카페(Café)를 합쳐 ‘네스카페’를 선보였다. 네스카페는 미군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야전에서 피로와 싸우던 병사들은 커피를 마시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각성 효과를 얻었다. 또한 의무관들은 부상병이 쇼크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했다고 한다.

07 설탕을 대체한 화학물질 자일리톨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서부전선’ ‘태평양전선’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개전 초창기부터 치열하게 전선을 지켰던 나라 중 하나다. 핀란드의 ‘겨울전쟁’은 1939년 11월 소련이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쟁은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고, 그 후속전인 ‘계속전쟁’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치러졌다. 자일리톨은 이 시기에 전쟁 물자 동원으로 설탕이 부족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일리톨이 처음 발견된 건 1891년이다. 독일의 화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에밀 피셔가 처음 분리해내며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전쟁으로 설탕이 부족해지자,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를 비롯한 활엽수에서 얻은 자일리톨을 설탕 대신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자일리톨은 다시 잊히는 듯했다. 1970년대 들어 자일리톨의 충치 예방 효과가 연구로 검증되었고, 1975년 핀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자일리톨 껌이 출시됐다.

“두 형제는 펜촉 끝에 작은 쇠구슬을 달고,
구슬이 굴러간 자리에 잉크가 남는 새 필기구를 만들어냈다.”

08 유대인 형제가 발명한 새로운 필기구 BIC 볼펜

세계 최초로 볼펜을 발명한 사람은 신문기자였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라슬로 비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부다페스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당시는 만년필을 쓰는 시대였다. 라슬로 비로는 만년필 잉크가 너무 천천히 마르고 만년필 촉에 종이가 찢어지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런 어느 날 신문 인쇄용 잉크가 만년필 잉크보다 종이 위에서 금방 마른다는 점을 발견했다. 라슬로 비로는 화학자인 동생 게오르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형제는 펜촉 끝에 작은 쇠구슬을 달고, 구슬이 굴러간 자리에 잉크가 남는 새 필기구를 만들어냈다. 최초의 볼펜이 탄생한 순간이다.

유대인이었던 비로 형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르헨티나로 망명했지만, 이들이 만든 볼펜의 가치는 영국 공군이 알아봤다. 높은 고도에서 상하좌우로 기동하는 파일럿에게 볼펜은 만년필보다 훨씬 유용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이 되자 프랑스 사업가 마르세 비슈는 비로 형제의 볼펜 특허를 사들인다. 그는 자신의 이름 ‘비슈(Bich)’에서 ‘h’를 떼어내고 ‘빅(BIC)’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필기구 회사로 성장한 빅은 지금까지 1000억 자루가 넘는 볼펜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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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박도현

202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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