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RIDER
라이더 재킷이 주는 이미지는 명백하다. 거칠고, 강인하고, 반항적이며 섹시하기까지 하다. 모터사이클 라이더를 위해 디자인한 재킷이기에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바이커 재킷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재킷은 1920년대 미국 브랜드 쇼트(Schott)에서 상업적으로 처음 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 채 라이딩하는 라이더의 자세를 고려해, 재킷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짧게 처리한 밑단과 사선 지퍼 디테일은 오늘날까지도 재킷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라이더 재킷이 남자의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한 건 1950년 들어서다. 영화 <와일드 원(The Wild One)> 속 배우 말론 브란도가 착용하면서 앞서 나열한 수식어가 뒤따르게 됐다. 1960~70년대에는 섹스 피스톨스와 라몬즈를 필두로 록과 펑크의 상징으로, 1980~90년대는 마이클 잭슨과 영화 <터미네이터>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통해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자리를 굳혔으며, 오늘날에는 모터사이클 트렌드가 부상하며 관련된 재킷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탄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주목받지 않은 적이 없기에, 하나쯤 장만하면 돌고 도는 계절에 꼭 한 번 꺼내 입게 될 거다.
02 FIELD
군대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한 튼튼하고 실용적인 재킷. 필드 재킷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올리브 그린 컬러와 방수, 방풍 소재, 엉덩이를 사뿐하게 덮는 길이, 손에 닿는 대로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여러 개의 주머니 등이 필드 재킷을 정의하는 요소. 대표 모델은 1965년 미군이 착용한 M-65, M-65의 전신이자 1951년 미군이 착용한 M-51, 영국군 필드 재킷 등이 있다. 특히 M-65 재킷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 속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배역 트래비스 버클이 착용하면서 대중에게 각인됐다.
필드 재킷에 투영된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스타일링의 한계를 깬 것. 활용도가 높은 재킷답게, 이후 영국 바버사가 제작한 왁스 재킷으로 변주를 거치며 지금 계절에 꼭 필요한 재킷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24 F/W 남성 런웨이에서는 밀리터리 무드를 덜어내고 세련된 아우터로 변신한 이미지가 도드라졌다. 묵직한 울 소재와 오버사이즈로 재해석한 프라다, 코듀로이, 가죽 등 소재로 풍부한 디테일을 보여준 펜디가 모범적인 예다.
03 HARRINGTON
스탠드칼라, 대각선으로 부착한 플랩 포켓을 지닌 캔버스 블루종을 해링턴 재킷이라고 한다. 해링턴 재킷이 낯설다면 바라쿠타 재킷을 떠올리면 된다. 1937년 영국 맨체스터의 바라쿠타사에서 골퍼를 위해 내놓은 G9 재킷이 바로 해링턴 재킷의 오리지널 모델이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에 알맞은 편안하면서 점잖은 스포츠 재킷으로, 1950년대 브라운관을 타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해링턴 재킷을 이야기할 때, 아마도 영원히 소환될 스티브 매퀸과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가 입은 바라쿠타 G9은 곧장 반항기 어린 청춘의 표상으로 부상했다. 이들의 스타일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쿨한 클래식의 교본. 단정하지만 묘하게 삐딱한 뉘앙스를 지닌 아이템일수록 몸에 잘 감기는 핏, 군더더기 없는 아이템들과 연출하면 더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04 VARSITY
바서티 재킷은 태생 자체가 젊음이다. 미국 대학이나 고등학교 운동선수가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 입는 팀 유니폼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바서티 재킷의 또 다른 이름인 레터맨 재킷(Letterman Jacket)은 당시 선수들 유니폼에 소속을 나타내는 커다란 이니셜 패치를 붙인 것에서 비롯됐다. 몸통은 울 소재, 소매는 가죽 소재를, 칼라와 소매 그리고 밑단엔 골이 지게 짠 신축성 있는 니트 소재를 사용하는 게 특징.
팀을 하나로 묶는 역할에서 어딘지 모를 단정함이, 스포츠 재킷이라는 점에서 들끓는 젊음과 청춘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기에 젊음을 대변하는 아이콘들이 바서티 재킷을 갈망하는 건 당연하다. 마이클 잭슨이 <Thriller>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M’ 이니셜을 새긴 바서티 재킷은 오늘날까지 스트리트 브랜드에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니고의 겐조,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등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이 시대의 아이콘들은 바서티 재킷을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있다.
05 BOMBER
봄버, 보머 재킷이라고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 비행사들이 입던 항공 점퍼가 원형인 이 재킷은 항공 재킷의 역사와 함께 다채로운 실루엣과 소재, 이유 있는 세부로 전개됐다. 춥고 비좁은 군용기 조종석의 제약에 영항을 받은 A-2 항공 점퍼를 비롯해 양털 안감을 덧대 한파에도 거뜬한 무통 재킷의 전신인 B-3, 1949년도 탄생해 나일론 소재와 선명한 주황색 안감으로 제작된 MA-1 재킷 모두 보머 재킷에 해당된다.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이 전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경신하며, 보머 재킷은 더 이상 군복이 아닌 실용성을 겸비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보머 재킷은 트렌드의 최전선은 아니지만 오리지널을 거듭 재해석하며 저마다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낸다. 질 좋은 가죽과 스웨이드 소재의 단단한 보머 재킷을 꾸준히 선보이는 토즈와 제냐, 부드럽고 풍성한 캐시미어 소재로 만든 로로피아나 보머 재킷만 봐도 알 수 있다. 발렌시아가의 헤비급 오버사이즈 재킷과 마틴 로즈의 나일론 크롭트 보머 재킷의 극명한 대비도 흥미롭다. 왼쪽 소매에 펜을 수납할 수 있는 포켓,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인터내셔널 레스큐 컬러로 채택한 선명한 오렌지색 안감 등은 디자인 요소로 여전히 유효하다.
06 BLAZER
블레이저는 두 가지 문화가 결합돼 탄생했다. 금색 단추가 달린 네이비 컬러의 더블브레스트 디자인은 영국 해군 유니폼에서 출발했고, 이름은 영국 로윙 클럽의 밝고 대담한 재킷 컬러를 상징하는 ‘BLAZE’에서 따왔다. 시작은 다를지라도 모두 특정한 무리를 대표하는 유니폼이라는 점이 블레이저의 단정하고 점잖은 성격을 대변한다. 이런 블레이저 스타일의 정석은 영화 <007>시리즈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다양한 배우들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는 블레이저를 즐겨 입는데 각자의 개성에 따라 컬러와 패턴을 달리한 스타일링을 선보여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블레이저는 얼핏 수트 재킷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쓰임새를 생각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수트 재킷은 팬츠와 한 벌을 이루도록 입는 것이 일반적인데, 블레이저는 어떤 하의와도 매치할 수 있어 스타일링이 훨씬 자유롭다. 그래서 포멀한 차림부터 캐주얼한 스타일까지 두루 아우르는 것이 장점이다. 같은 컬러의 팬츠와 함께 수트처럼 입어도 좋고, 데님 팬츠, 쇼츠, 스커트 등 원하는 하의와 제멋대로 섞어도 문제없다. 덕분에 블레이저 하나로 수만 가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옷장 속에 꼭 필요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07 TRUCKER
트러커 재킷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880년대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블루칼라의 작업복으로 제작한 트리플 플리츠 블라우스가 나온다. 이후 1900년대 타입 1, 1950년대 타입 2, 1960년대 타입 3까지 거치며 가슴 높이에 자리한 2개의 플랩 포켓과 V자 모양으로 좁아지는 포켓 스티치, 허리까지 오는 짧은 길이 등 오늘날 트러커 재킷의 조건을 갖추게 됐다. 데님으로 만든 질기고 탄탄한 내구성, 말안장이나 트럭에 올라타도 거슬리지 않는 길이를 지닌 재킷은 미국, 특히 중서부 지역을 가로지르는 트러커들이 즐겨 착용했다.
트러커 재킷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1980년대, 미국 패션을 탐미한 일본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트러커 재킷은 트러커들이 입던 스타일을 칭하는 아이템으로 데님 재킷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국에 뿌리를 둔 재킷인 만큼, 미국 서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루이 비통 2024 F/W 컬렉션에서 가장 동시대적인 트러커 재킷을 볼 수 있다.
08 TRACK
트랙 재킷은 이름이 암시하듯 운동선수들이 트랙에서 입던 운동복이다. 육상, 테니스, 축구 등 대부분의 스포츠를 넘나들며 톡톡히 활약하다 영화 <사망유희>의 주인공 이소룡이 노란색 트랙수트를 입고 쌍절곤을 휘두르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대중의 눈에 띄게 됐다. 하지만 운동복이라는 인식을 탈피하고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온 건 1980년대 급부상한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 덕분이었다.
런 DMC, 비스티 보이즈 등의 아티스트들은 트랙 재킷과 스니커즈, 금목걸이 등을 함께하는 것을 즐겼고, 결국 스트리트웨어를 상징하는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요즘에는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경계를 확장해 다양하게 변주된 디자인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꾸준하게 트랙 재킷을 선보이는 구찌, 발렌시아가 등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수트나 셔츠, 타이와 매치해 색다르게 응용한 스타일링을 보여준 마틴 로즈나 헤드 메이너, 보터 등의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한결같은 인기에 보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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