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베테랑 모델에서 신인 배우가 됐어요. 이참에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모델 일을 하고 있고, 이번에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김원중입니다. 하하.
오늘은 모델이 아닌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섰잖아요. 같은 화보 촬영이지만 기분은 달랐을 것 같아요.
사실 평소 모델로 일할 때도 조용하게 촬영하는 편인데요. 오늘은 괜히 더 조심스럽고 부끄럽네요.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들 중에도 화보 촬영은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저도 화보 촬영할 때가 더 부끄러워요. 화보 촬영을 하면 김원중으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거잖아요. 반면 연기할 때는 김원중이 아닌 제가 맡은 역할로 카메라 앞에 서고요. 그런 점에서 연기가 더 어렵지만, 덜 쑥스러웠어요.
연기할 때는 가면이 한 겹 생기는 거네요.
맞아요. 저는 여전히 촬영할 때면 긴장되고 부끄럽거든요. 그런 점에서 연기할 때 스스로 신기하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모델도 연기자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함께하는 스태프분들이 있어야만 결과물이 나오는 직업이죠.
그만큼 저는 같이 작업하는 분들께 인정받는 게 중요해요.”
검색해보니 대학교 전공이 건축학과던데, 사실은 와전된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안 그래도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웃음) 저 건축설비학과로 대학 입학했거든요. 건축학과랑 건축설비학과는 엄연히 다른데 어디서부터 잘못 전해졌는지 모르겠어요. 결론적으로는 자퇴를 해서 최종 학력은 고졸이 맞습니다.
올해로 15년 차 모델이죠. 군대 전역 후에 우연히 모델을 제안받아서 시작했고요. 그때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전혀 몰랐죠. 그때는 ‘남자 모델’이라는 직업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거든요. 늘 불안감이 있었어요. 다행히 남자 모델도 하나의 트렌드도 자리 잡아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사실 지난 15년 동안 주야장천 달려온 건 아니에요. 디자인 일을 병행하면서 쉬어 가는 기간도 있었으니까요. 직업에 대한 고민과 휴식을 적절히 가졌기 때문에 오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도 궁금했어요.
저는 일할 때 항상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TV에 나와서 김원중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활을 보여주는 게 참 어색하고 어렵다는 걸 새삼 크게 느꼈어요.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요. 패션 디자인도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과연 이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까’ 고심하게 됐어요. 3~4년 전부터 다음 단계를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떠올리게 됐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배우는 가면을 쓰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일이니까요. 모델로 일하면서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촬영했던 것도 즐거웠고요.
마음가짐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떤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할 때 무엇을 고려하나요?
하나밖에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철부지 같은 생각이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결정할 거예요. 모델도, 디자인도, 연기도 모두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나 저거 해보고 싶다.
배우로 성공한 후배 모델들이 많잖아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동료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나요?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주인공 ‘고영’을 맡은 남윤수 배우가 모델 출신이에요. 물어봤죠. 모델 일이랑 연기의 차이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하시던 대로 하면 돼요” 하고 말해주더라고요. 얼어붙은 제 모습을 보고 윤수 씨가 긴장을 풀어주려 한 말이었지만, 제게는 아주 큰 용기가 됐습니다. 제가 시작을 앞둔 일을 먼저 해본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죠. 캐릭터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처음 ‘하비비’ 역할을 제안받고 곧장 서점부터 갔어요. 소설 속 ‘하비비’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으로만 그려진 인물이에요. 하비비가 어떤 서사를 지녔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설명이 없거든요. 그 여백을 채워야 했어요. 감독님이 방법을 제시해주셨죠. 김원중이 지닌 본래의 모습 위에 하비비의 성격을 얹어보자고.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다 보니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소설과 극본으로 이해한 하비비와, 본인이 연기로 보여주고자 한 하비비가 다를 수도 있겠네요.
텍스트로 만난 하비비의 첫인상은 지루하고 고루한 아저씨였어요. 감독님은 극 중 하비비가 외적으로 좀 더 비밀스러워 보이길 원하셨고요. 성격은 비슷했던 것 같아요. 하비비는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비밀이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외로움을 잔뜩 품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낯설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낄 만한 보편적인 감정이니까요.
퀴어 역할인 만큼 더 신경 써야 했던 점도 있었을까요?
드라마의 장르를 퀴어물로 규정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상 책을 읽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장르는 잊게 됐어요. 아주 보편적인 사랑과 우정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거든요. 연기 자체는 어려웠지만, 장르 때문에 특별히 더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다.
아직 드라마 공개 전이라 하비비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요. 오늘 촬영한 이미지 중 가장 하비비와 닮은 모습은 어떤 사진인가요?
마지막에 촬영한 사진. 빨간색 배경에 타이를 매고 촬영한 컷인데요. 모니터링을 하면서 저도 ‘오, 이건 하비비다’ 생각했어요.
어떤 점이 닮았나요?
하비비는 극 중에서 묘사되지는 않지만 엘리트 집안의 자제거든요. 제목처럼 대도시에 살고요. 왜인지 모르게 풍기는 도회적인 분위기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하비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배우님일 텐데요. 하비비가 실제 친구라면 어떨 것 같아요?
저는 완전 환영이에요.(웃음) 제가 그렇게 왁자지껄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요즘 제 성격과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아주 잘 맞을 것 같아요
만일 내일 하비비를 만나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것 같아요. 하비비가 그걸 제일 편안해할 거예요. 늘 혼자 다니는 친구니까. 나란히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하지만, 나름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거예요.
조금 식상한 질문이지만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뻔한 답변이긴 한데요. 다 해보고 싶어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배운 게 있어요. 저는 가족이랑 있을 때 가장 ‘나답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기자님을 대면하고 있는 모습도 진짜 제 모습이고, 다른 누군가와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모습도 제 모습임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대도시의 사랑법>을 준비하면서 여러 연기 선생님을 만났어요. 하나같이 해주신 말씀이 “연기를 하면서 실력이 늘어가는 것도 좋지만, 네 자신이 누군지 발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였어요. 저 스스로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라고 부정하던 모습조차 제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연기가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다양하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제가 맡은 역할만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배우들은 작품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꼭 배우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도시의 사랑법>이 가르쳐준 것이 있나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인생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어요. 거기에 ‘홀로움’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빛나는 외로움’이라는 뜻이래요. 홀로 외로울 때도 그 자체로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죠. 지금도 하비비를 생각하면 홀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생각나요. 외로움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꿈은 안 가졌으면 좋겠다. 본인이 지금 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구분하고 살다 보면 분명 다른 비전이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 김원중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연기자로서 기회를 더 만드는 것. 싫은데 해야 돼서 하는 일은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은 모두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다만 필요한 일은 있죠. 새로운 역할을 맡기 위해서 연기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 하지만 어떤 역할에 캐스팅되려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면 그 마음이 부러지더라고요. 상처도 많이 받고요. 스스로를 응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인터뷰를 하다 보면 하나같이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김원중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인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호기심이 있는 어른 아닐까요? 나이가 많아도 청춘일 수 있으니까요. 청춘과 철부지는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좋은 어른이 되려면 건강한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도 노력이 필요하고요.2013년 인터뷰를 찾아보니 최종 목표는 ‘부자’라고 말했어요. 지금 김원중의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웃음) 사실 그때는 물질적인 게 정말 중요하긴 했어요. 지금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유 있는 단계거든요. 30대 초반에 정말 공허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살면서 가장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기였는데, 지금은 그때를 가장 후회해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갈증이,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김원중이란 사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느낌. 한창 다리 위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 다리가 끊겨버린 느낌이었죠.
그 시기는 어떻게 넘겼나요?
못 넘겼어요. 그래서 시간도 많이 허비했고요. 그때 다짐했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돈 때문에 나의 호기심을 양보하지 말자. 저의 최종 목표는 늘 궁금한 게 많고,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직업인으로서 지금 김원중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모델도 연기자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함께하는 스태프분들이 있어야만 결과물이 나오는 직업이죠. 그만큼 저는 같이 작업하는 분들께 인정받는 게 중요해요. 작업물을 봐주시는 분들께 받는 평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시 15년이 지났을 때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쓰임새 있는 사람. 동료들에게 쓰임새 있는 동료이자 모델, 그리고 연기자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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