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블랙베이를 차보기 일주일 전. 궁금한 마음에 튜더 매장을 찾았다. 튜더 직원들은 이 시계를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명동 튜더 매장에 도착하자 영화 <맨 인 블랙> 수트 차림의 직원이 반겼다. 그는 딱 부담스럽지 않을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형 블랙베이 있나요? 맨 인 블랙이 답했다. “모노크롬 모델 말씀이시죠? 어쩌죠. 워낙 인기가 많아서요. 매장 들어오자마자 나갑니다. 미리 주문하시는 게 좋아요.” 그대로 나가자니 서로 머쓱할 것 같아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럼 블랙베이 54는 있나요? 그는 한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아유 이걸 어쩌죠. 블랙베이 54도 지금 매장에 없어요. 예약한 손님들이 많아서 들어오자마자 나갑니다.”
블랙베이 54는 지난해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공개된 튜더의 37mm 다이버 워치다. 신형 블랙베이 41mm 모노크롬은 올해 출시된 그 후속작이다. 나의 체감상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모델은 작년도 올해도 블랙베이였다. 다만 두 시계가 관심을 끈 이유는 다르다. 블랙베이 54가 작은 사이즈와 복각된 오리지널리티로 주목받았다면, 신형 블랙베이는 컬러와 브레이슬릿을 무기로 내세웠다. 일주일 뒤, 블랙베이 실물을 보자마자 어쩔 수 없이 다른 시계가 떠올랐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서브마리너 닮은 꼴’은 블랙베이에게 양날의 검이다. 오늘날에도 블랙베이는 서브마리너와 많은 것을 공유한다. 하지만 블랙베이가 서브마리너를 따라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로 튜더는 서브마리너라는 이름의 시계를 만든 적이 있다. 1954년 공개된 튜더의 첫 다이버 워치 다이얼에는 ‘BLACK BAY’ 대신 ‘SUBMARINER’라고 적혀 있다. 그 시계를 충실하게 복원해 출시한 것이 블랙베이 54다.
외모만 본다면 블랙베이 모노크롬은 블랙베이 54보다 더 서브마리너와 닮았다. 블랙과 화이트 조합으로 구성된 다이얼 및 인덱스, 41mm의 케이스 지름, 베젤 위에 0~15분까지 새겨 넣은 눈금이 대표적이다. 서브마리너와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차이는 가격이다. 신형 블랙베이 가격은 615만원. 서브마리너 논데이트 모델 가격은 1306만원이다. 블랙베이 두 개를 사고도 76만원이 남는 금액이다.
물론 블랙베이에는 서브마리너에게 없는 것도 있다. 시계줄이다. 신형 블랙베이는 ‘러버 스트랩’ ‘3열 브레이슬릿’ ‘5열 브레이슬릿’ 세 가지 버전으로 구입할 수 있다. 반면 서브마리너에는 3열 브레이슬릿만이 기본 적용된다. 튜더 직원은 신형 블랙베이를 구입하는 손님 대부분이 5열 브레이슬릿 모델을 구입한다고 했다. 시계 자체가 구하기 힘들어, 러버 스트랩 모델을 구매하고 5열 링크를 따로 구매하는 고객도 많다고.
5열 브레이슬릿의 진가는 햇빛 아래서 더욱 도드라진다. 가운데 3열과 가장자리 2열에 각기 다른 브러싱을 적용해 너무 번쩍거리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기존 튜더 브레이슬릿에 적용한 ‘T-fit’ 클래스프는 세 가지 브레이슬릿에 모두 적용됐다. 클래스프는 별도의 도구 없이 최대 8mm까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데, 실제로 조작해보면 세라믹 볼 베어링에서 기분 좋은 장력이 느껴진다. 베젤이 돌아갈 때의 미세하게 다른 조작감과 소리에 환호하는 시계 애호가라면 이 역시 만족스러울 요소다.
블랙 베이는 200m 방수 기능을 갖췄음에도 두껍다는 인상은 없다. 블랙베이를 차기 전, 손목에 감아둔 지샥 DW-5600과 비교해도 두께감에는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신형 블랙베이 두께는 13.6mm로 쿼츠 시계인 지샥과 0.2mm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튜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도 신경 썼다. 튜더가 자체 제작한 MT5602-U는 COSC 인증을 받아냈다. 인증 기준은 하루 허용 오차 범위 -4 ~ +6초이지만, 튜더는 앞뒤로 2초씩 줄여낸 -2 ~ +4 초의 오차를 잡아냈다. 왜냐? 할 수 있으니까. 실제 사용하는 사람조차 눈치채지 못할 오차를 기어이 잡아내는 것,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케이스 테두리에 단면을 하나 추가하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무브먼트에 각종 문양을 새겨 넣는 것. 남들은 굳이 하지 않을 무언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날 럭셔리 워치 브랜드의 생존법이다. 튜더를 고민하는 이들을 망령처럼 쫓아다니는 생각이 있다. ‘롤렉스 못 사서 산 시계로 보이면 어떡하나?’ 600만원을 주고도 ‘다른 시계 못 사서 산 시계’라는 인상을 풍긴다면 누구라도 조바심이 날 것 같다. 내가 차본 블랙베이는 ‘서브마리너 찬 사람도 갖고 싶어 할 법한 시계’였다.
블랙베이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서브마리너보다 눈에 덜 띈다. 베젤은 번쩍이는 세라믹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고, 사이클롭스 렌즈를 덧댄 데이트 창은 아예 없애버리는 식으로 화려함을 덜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블랙베이의 매력이 비롯된다. 서브마리너는 시계를 넘어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이유로 누군가 서브마리너를 찬다면 다른 특색은 지워진 채 ‘서브마리너 찬 사람’으로만 기억될 확률이 높다.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적어도 시계보다 사람이 궁금해지는 쪽은 ‘섭마남’보다 ‘블베남’일 것이다.
튜더 블랙베이
레퍼런스 M7941A1A0NU-0003 케이스 지름 41mm 러그 너비 21mm 두께 13.6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방수 200m 브레이슬릿 스테인리스 스틸 무브먼트 튜더 MT5602-U 기능 시·분·초 표시 파워 리저브 70시간 구동 방식 오토매틱 가격 615만원 (러버 스트랩 버전 57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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