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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진보

위블로 스퀘어 뱅이 어떻게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UpdatedOn July 12, 2024

위블로 스퀘어 뱅 유니코 블루 세라믹의 모습. 여기에 위블로의 지난 40여 년이 들어 있다.

위블로는 스위스 고급 시계에서 여러모로 독특한 브랜드다. 역사가 길지 않다. 사람 이름을 브랜드 이름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유럽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위블로’가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러나 위블로는 이름 자체로 고급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을 보여주는 예다.

‘위블로’는 해양 용어다. 위블로를 영어로 하면 ‘포트홀(porthole)’이 되고 한국어로 하면 ‘현창’이 된다. 현창(舷窓)은 배에 난 창을 뜻한다. 배에 난 창에 이름을 따로 붙이는 이유는 창 모양이 일반 창과 다르기 때문이다. 선박의 창은 일반 창보다 더 강한 압력에 견뎌야 한다. 보통 창문으로 쓰는 사각형보다 원형이 압력에 강하다. 배의 창이 원형을 띤 이유다. 아울러 자신의 배를 소유하는 건 서양인에게 전통적인 부의 상징이다. ‘위블로’라는 이름이 은근히 부와 연결된 이유다.

초기 위블로는 이러한 상징을 거의 그대로 시계에 이식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위블로 특유의 원형 베젤과 나사들은 1980년대 위블로에서부터 보이던 것이고, 그 디테일은 바로 배의 현창 디테일이다. 초반의 위블로는 그 정도로만 남다르던 신생 시계 브랜드였다. 현창의 디테일을 따온 케이스 디자인, 골드 케이스에 러버 스트랩을 조합하는 감각, 조금 화려한 디테일이 있고 보통 고급 시계 브랜드와 발상이 달랐지만 당시의 고급 시계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장 클로드 비버가 위블로와 함께하며 모든 게 변했다. 장 클로드 비버는 스위스 고급 시계 역사상 최고의 마케터 중 하나다. 그는 위블로의 남다른 부분을 증폭시켜 아주 눈에 띄는 시계를 만들어냈다. 그게 오늘날 위블로를 만든 빅 뱅이다. 지름 45mm에 달할 정도로 큰 크기, 화려한 생김새, 거기에 여전한 골드 케이스에 러버 스트랩. 버니 에클레스턴 F1 회장이나 제이 Z 같은 화려한 손님들. 매출과 인지도가 컬렉션 이름과 같이 ‘빅뱅’처럼 폭발했다. 비버가 위블로를 맡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출이 5배 올랐다.

위블로는 비버 없는 시대를 꾸준히 지나오고 있다. 라인업은 간결하게 정리되었다. 대표 모델은 여전히 빅 뱅이다. 1980년대의 오리지널 모델을 계승한 클래식 퓨전도 있다. 고가 시계 브랜드에 있는 복잡한 고급 시계 라인업은 MP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분류된다. 오늘 소개할 스퀘어 뱅은 이들과는 다른 ‘쉐이프드(shaped)’라는 라인업에 들어간다. 말 그대로 원형이 아닌 다른 모양을 갖췄다는 것. 이 라인업에는 토노(양옆이 불룩한 사다리꼴)형 ‘스피릿 오브 빅 뱅’과 사각형 ‘스퀘어 뱅’이 자리한다.

스퀘어 뱅은 2022년 처음 출시된 신규 라인업이다. 시계의 신상품도 자동차처럼 페이스리프트 혹은 신규 모델 개발 등으로 나눠 볼 수 있고, 물론 후자의 개발 자원이 더 많이 소요된다. 스퀘어 뱅은 새로 개발한 모델이다. 케이스를 새로 만드는 일은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일이고, 사각 케이스는 조금 더 까다롭다. 보통 시계 무브먼트는 원형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고가 시계 시장은 보수적이다.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사면서 남다른 선택을 할 사람은 많지 않다. 새로운 실루엣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스퀘어 뱅도 2022년에는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다가 반응이 좋았는지 점차 라인업을 늘려가는 중이다. 오늘의 스퀘어 뱅은 세라믹 케이스로 마무리한 모델이다.

위블로의 슬로건 ‘아트 오브 퓨전’은 이 시계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특히 이 시계는 케이스에만 3개의 소재가 눈에 보이게 들어갔다. 파란색 소재가 세라믹이다.

스퀘어 뱅은 위블로 최초의 사각 시계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정사각형 비율에 가까울 정도로 세로가 조금 더 긴 직사각형이다. 시장에 미리 나온 시계들과 비교하면 정사각형인 산토스보다는 길고 완전히 길쭉한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보다는 짧다. 비율만 놓고 보면 오히려 가장 비슷한 건 애플워치다. 위블로는 럭셔리 시계 중 꾸준하게 스마트워치를 출시하는 브랜드니 언젠가 이 케이스로 스마트워치를 출시할 수도 있다. 케이스 폭은 42mm다. 사각 시계는 원형이 아니므로 폭이 실질적인 사이즈다. 42mm면 작은 사이즈는 아니지만 한창 때의 45mm 위블로에 비하면 작은 사이즈다. 막상 손목에 차보면 별로 크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위블로의 슬로건 ‘아트 오브 퓨전’은 이 시계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특히 이 시계는 케이스에만 3개의 소재가 눈에 보이게 들어갔다. 케이스 소재가 세라믹이다. 푸른 세라믹이 햄버거의 빵처럼 위아래 층을 이룬다. 그 사이에는 금속 버튼이 있다. 크라운은 위블로가 자랑하는 고무로 감쌌다. 다이얼은 무브먼트를 그대로 노출시킨 오픈워크 형태인데, 파란 세라믹에 맞춰서 무브먼트 표면에도 같은 색을 입혔다. 세상에 똑같은 색은 없으므로 다른 소재로 같은 색을 맞추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공이 드는 일이다.

시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고무 역시 위블로의 정체성 중 하나이자 역사의 일부다. 위블로는 자신들이 ‘스위스 시계 중 최초로 금과 고무를 조합한 회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로 초창기 위블로가 돋보였던 이유 역시 고무였다. 위블로는 고급 시계의 각종 실루엣과 디테일을 계승하면서도 고무 등 새로운 소재를 쓰며 눈에 띄었다. 금과 고무를 함께 쓴다는 위블로의 방침은 여전하다. 위블로 이후 고가 시계의 고무 스트랩은 롤렉스마저 정품 고무 스트랩을 취급하면서 업계에 정착되었으며, 애플워치 등 스마트워치에서도 고무 스트랩을 볼 수 있다. 고무 스트랩계에서만큼은 위블로가 원조인 셈이고, 이 시계의 스트랩 역시 원조답게 아주 적당한 감도로 감긴다. 뻑뻑하지도 않고 흐물거리지도 않는다.

스퀘어 뱅 유니코 블루 세라믹

레퍼런스 821.EX.5170.RX 케이스 폭 42mm 케이스 소재 세라믹, 티타늄 스트랩 러버 무브먼트 HUB1280 기능 시·분·초 표시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만8800vph 한정 여부 없음 가격 4013만원

다이얼 부분을 확대해 촬영한 것.
베젤의 H 나사는 장식이 아닌
실제 기능을 한다. 6시 방향의
칼럼 휠 중앙에도 위블로의 H가
보인다.

다이얼 부분을 확대해 촬영한 것. 베젤의 H 나사는 장식이 아닌 실제 기능을 한다. 6시 방향의 칼럼 휠 중앙에도 위블로의 H가 보인다.

다이얼 부분을 확대해 촬영한 것. 베젤의 H 나사는 장식이 아닌 실제 기능을 한다. 6시 방향의 칼럼 휠 중앙에도 위블로의 H가 보인다.

무브먼트를 뒤에서 본 모습. ‘첨단
기계처럼 보이겠다’는 디자인
방향성을 느낄 수 있다.

무브먼트를 뒤에서 본 모습. ‘첨단 기계처럼 보이겠다’는 디자인 방향성을 느낄 수 있다.

무브먼트를 뒤에서 본 모습. ‘첨단 기계처럼 보이겠다’는 디자인 방향성을 느낄 수 있다.

케이스 측면. 세라믹, 고무,
티타늄에 유광과 무광 처리를
번갈아 하면서도 전체적인 톤과
색감을 유지했다.

케이스 측면. 세라믹, 고무, 티타늄에 유광과 무광 처리를 번갈아 하면서도 전체적인 톤과 색감을 유지했다.

케이스 측면. 세라믹, 고무, 티타늄에 유광과 무광 처리를 번갈아 하면서도 전체적인 톤과 색감을 유지했다.

6시 방향 하단의 사다리꼴
버튼을 누르면 간단하게
스트랩을 갈아 끼울 수 있다.

6시 방향 하단의 사다리꼴 버튼을 누르면 간단하게 스트랩을 갈아 끼울 수 있다.

6시 방향 하단의 사다리꼴 버튼을 누르면 간단하게 스트랩을 갈아 끼울 수 있다.

스타 마케터 장 클로드 비버가 시계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고 떠났다. 시계 곳곳의 화려한 색과 디테일은 그 시절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스트랩을 바로 끼울 수 있는 퀵 릴리즈 시스템도 탑재했다. 퀵 릴리즈 시스템을 적용한 회사들 중에서도 퀵 릴리즈 버튼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다양성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롭다. 스트랩 쪽 혹은 케이스 쪽, 케이스에 둔다면 (눈에 보이는) 위쪽 혹은 (안 보이는) 아래쪽. 위블로는 케이스 위쪽에 버튼을 두어서 퀵 릴리즈 버튼도 시계 디자인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이 역시 상대적으로 규칙이 많지 않은 젊은 브랜드에서 할 수 있는 발랄한 접근이다.

무브먼트는 자사 무브먼트 HUB1280이다. 칼럼 휠 크로노그래프 방식이다. 크로노그래프는 구동 방식에 따라 캠 방식과 칼럼 휠 방식으로 나뉘는데 보통 칼럼 휠 방식을 더 고급이라 한다. 칼럼 휠 방식과 캠 방식의 차이는 버튼을 눌러보면 알 수 있다. 칼럼 휠 방식이 스타트, 스톱, 리셋 버튼을 누를 때 훨씬 부드럽다. 요즘은 캠 방식도 많이 개선되어 누르는 품질이 좋아졌지만 칼럼 휠 방식 특유의 매끄러운 느낌이 있고, 이 시계에서도 그 느낌이 이어진다. 특히 이 시계의 칼럼 휠은 6시 방향으로 노출되어서 크로노그래프를 조작할 때마다 칼럼 휠이 보인다는 것도 작은 재미다. 파워 리저브는 72시간.

이 시계의 가장 큰 인상은 푸른 세라믹에서 온다. 푸른색 등 컬러 세라믹을 만드는 것도 나름의 기술이다. 그 때문에 컬러 세라믹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들은 몇 안 되고, 그 브랜드가 모두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 컬러 세라믹 시계를 정규로 출시하는 브랜드라면 라도, IWC, 위블로 등이 있다. 라도와 IWC와 위블로 역시 각기 특기와 이미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톤의 컬러 세라믹을 낸다. 위블로 세라믹의

특징은 역시 높은 명도와 광택이다. 위블로의 붉은색과 파란색 세라믹은 타사의 세라믹에 비해 확실히 눈에 띄는 느낌이다. 전면부는 무광, 측면부는 유광으로 마감하는 등 여기서도 상세한 디테일을 볼 수 있다.

위블로의 44년 역사가 이 사각 시계 안에 들어 있다. 초창기 위블로는 기성 시계에 비해 디자인을 조금 바꾸고 고무 스트랩을 추가하는 정도로 수수하게 시작했다. 그때의 흔적이 고무 스트랩과 소재 혼합에 남아 있다. 스타 마케터 장 클로드 비버가 시계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고 떠났다. 시계 곳곳의 화려한 색과 디테일은 그 시절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다. 남은 사람들이 브랜드의 방향성을 계승하고 되살려가며 지금에 이른다. 계승할 요소를 이어가고 새로운 시도를 지속했다. 그 결과 위블로 최초의 사각 시계인 스퀘어 뱅이 나온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기억에 남는 건 착용감이다. 케이스 하부에 약간의 커브를 줘서 손목에 자연스럽게 감긴다. 크로노그래프 시계면 무거울 텐데 티타늄과 세라믹이 섞이고 스트랩이 고무라 착용했을 때 가볍게 결착된다. 이런 종류의 화려한 외양풍 시계들은 막상 착용했을 때 어딘가 찔리거나 긁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위블로는 섬세하게 착용감에 문제가 생길 요소를 제거했다. 차보면 안다.
그러므로 이 시계는 단순히 사진만 보거나 인터넷으로 ‘몇 대 시계’ ‘근본 시계’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평가받을 만한 시계가 아니다. 화려해 보일지는 몰라도 착용하기 편안하다. 마냥 튀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20세기 후반에 시작한 브랜드의 40년 역사가 샌드위치처럼 담겨 있다. 이런 물건의 디테일을 계속 들여다보며 즐기는 것 역시 시계 애호의 한 방면이다. 어찌 보면 그게 정말 오늘날의 시계 애호일 것이다.

끌림 요소
+ 뜯어볼수록 상당히 공들인 디테일
+ 차보면 느낄 수 있는 상당히 훌륭한 착용감
+ 누군가에게는 분명 마음에 남을 디자인

망설임 요소
- 세라믹과 고무는 깨지거나 찢어질 가능성이 있음
- 이 모든 가치를 인정한다 해도 조금은 비싸다 싶은 가격
- 누군가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울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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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박도현

202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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