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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이름을 찾아서

70년 전 남극에서 일어나 이제야 완결된 놀라운 이야기.

UpdatedOn May 30, 2024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가에쓰 히로시, 북멘토

<에이트 빌로우>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화는 일본 이야기다. 일본은 1956년 자국 최초로 남극 탐험대를 보낸다. 당시 설상차 성능 한계 때문에 홋카이도 북부와 사할린섬 출신의 튼튼한 개 15마리를 데려간다. 1년 뒤 탐험대는 남극을 떠날 때 기상 악화로 개들의 목줄을 묶어둔 채 귀환해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당시 개 훈련 담당이었던 젊은 학자가 1957년 다시 남극을 찾았을 때 살아남은 개 타로와 지로가 발견된다.

1차 남극 원정대 귀환 이후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 다 끝났나 싶은 이야기에서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가 시작된다. 15마리의 개 중에는 사망이 확인된 개와 실종된 개가 섞여 있었는데, 사실은 1968년 기지 근처에서 실종되었다고 여겨진 개가 한 마리가 더 발견되었다. 타로와 지로 소식이 워낙 인기였기 때문에 으레 알려져야 했을 뉴스지만 그 사실은 어디에도 공표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른다.

멈춰 있던 시계가 돌아가는 게 이 매혹적인 논픽션의 시작점이다. 저자는 은퇴한 신문기자로, 당시 개 담당 요원이었던 기타무라 다이이치와 같은 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옛날 소식을 듣기 위해 그를 만난다. 그때 기타무라가 제3의 개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건넨다. 그는 1982년에 1968년 소식을 듣지만 연구와 개인 사정 때문에 추가 탐구를 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기타무라는 1차 남극 탐험대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저자 가에쓰 히로시와 과거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힘에 대한 증명이다. 1년 내내 따뜻한 후쿠오카에서 이제 노인이 된 기타무라가 극한 환경을 되살린다. 가에쓰와 자료를 모아가며 기타무라가 풀려는 문제는 하나다. 1968년 발견되었으나 기록 없이 사라진 그 개는 어떤 개인가? 개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기타무라와 가에쓰는 그 과정에서 놀라운 결말을 마주친다. 그동안 풀기 어려웠던 다양한 비밀도 풀린다.

이 과정을 읽어나가며 그저 재미있다고 하는 건 조금 면구스럽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극한의 상황과 감정이 있다. 개를 끌고 남극에 가야 했던 열악한 당시 상황, 거기서도 뭔가를 해보려 했던 인간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동물의 신비로운 유대가 얼음 속에 있던 보물처럼 녹아내리며 그 모습을 하나씩 드러낸다. 탐험 논픽션이나 모험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의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남극 탐험대 최후 생존자의 마지막 과업으로 남기고 싶다며 자료를 모으고 개의 정체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 가에쓰 히로시 역시 일본 전역에서 재료를 모으고 집요하게 진실을 찾아 나간다. 이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기도 하다. 집요함, 디테일, 그리고 뭔가 좋은 걸 남겨야겠다는 사명감. 그 결기가 느껴지는 게 걸작의 조건이며, 이 책은 그 면에서 걸작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

    마츠무라 준, 인벨로프

    일이 없다. 젊은이, 특히 젊은 창작자가 모인 자리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는 이런 세태에 대한 건축가 버전의 평론서다. 저자는 2급 건축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회학자이니 이런 연구에 적격이다. 그는 자신의 두 가지 축인 건축과 사회학을 도구 삼아 ‘건축가로 성공하기’라는 퀘스트의 공략법을 해설한다. 그 공략법은 ‘탁월한 건축가’라는 지위를 얻는 것이며, 이 지위를 얻는 게임은 모호한 듯하면서도 명확하다. 저자는 탁월한 건축가의 개념을 말하는 동시에 탁월한 건축가라는 개념을 얻는 실질적 사례를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탁월한 ㅇㅇ’는 일군의 ‘크리에이티브’ 직군에 얼추 호환된다. 그러니 오히려 타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 탑건: 초대 교장의 회고록

    댄 페더슨, 애니텔

    <아레나>의 신간은 가내수공업적으로 찾는다. 원칙적으로 이 페이지를 담당하는 내가 시간 될 때마다 인터넷 서점의 모든 신간 목록을 검색한다. 이 책 같은 책을 찾기 위해서다. <탑건: 초대 교장의 회고록>은 제목 그대로다. 미 해군 엘리트 조종사 양성소인 탑건 스쿨을 만든 댄 페더슨이 비행 인생을 돌아본다. 이런 책의 압도적인 장점은 극한 현장의 디테일에서 오는 생기와 지혜다. 탑건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조종사들이 기존 성적 이하의 결과를 낸 후 더 강한 조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저자이자 탑건 초대 교장인 댄 페더슨은 개인 소회와 실전 경험을 곁들여 탑건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영화 <탑건>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페이지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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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송태찬

202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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