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완벽합니다.” 로빈 콜건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대표가 눈으로 뒤덮인 야산을 뒤로한 채 인사를 건넸다. ‘데스티네이션 디펜더’ 행사가 열린 곳은 강원도 인제. 물론 인제스피디움 트랙은 아니다. 서울은 초봄의 푸근한 날씨였지만, 인제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보통 자동차 브랜드라면 눈으로 뒤덮인 도로를 걱정하겠지만, 로빈 콜건 대표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이번 ‘데스티네이션 디펜더’ 시승 행사가 뉴욕, 텍사스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로빈 콜건 대표의 인사말이 끝나자 신형 디펜더 소개 영상이 흘러나왔다. 5분 남짓한 영상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펜더가 등장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길에서 달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서, 정글에서, 숲에서, 강에서 달리는 디펜더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늘 시승 코스가 어떨지 예상됐다. 로빈 콜건 대표는 저 멀리 소양강 건너편에 있는 산을 가리키며 이런 말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오늘은 저기로 갈 겁니다.” 그는 여느 정장 차림의 자동차 브랜드 CEO와 달리, 윈드브레이커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디펜더 수십 대가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그중에는 디펜더 라인업에 새롭게 추가된 모델도 있었다. 신형 직렬 6기통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56.1kg·m의 힘을 내는 ‘디펜더 90 P400 X’, 적재 공간을 극대화해 최대 2516L 용량의 짐을 실을 수 있는 ‘디펜더 130 P400 아웃바운드’, 지붕 위에 새하얀 눈이 내린 듯한 ‘후지 화이트’ 컬러 루프의 ‘디펜더 110 카운티 에디션’이다.
내게 배정된 차는 디펜더 110이었다. 운전석에 올라타자 실내에 배치된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장 오프로드로 갈 겁니다. 서스펜션을 최고로 높인 후에 주행 시작하겠습니다.” 디펜더 110에는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다. 센터 콘솔에 있는 버튼을 이용하면 차체 높이를 ‘오프로드 높이’ ‘정상 높이’ ‘승하차 높이’ 총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디펜더는 지상고를 최대 145mm까지 들어 올려 일반 차라면 엄두도 못 낼 암석 지대나 진흙밭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운행 준비가 끝나자 선두 차량은 비포장도로를 지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승 행사를 위해 임의로 만든 물웅덩이가 아니라 진짜 물이 흐르는 계곡이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디펜더 운전석에서는 서라운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차량 좌우와 뒤를 살필 수 있다. 화면을 보니 후방 카메라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계곡 바닥에 깔린 자갈 때문에 차는 좌우 앞뒤로 뒤뚱거렸지만 조금도 지체 없이 물길을 헤쳐나갔다. 창문을 내리니 손이 닿을 높이만큼 물이 차 있었다. 디펜더의 최대 도강 수심은 900mm. 웬만한 세단은 운전석 창문 끝까지 물이 차오를 높이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진흙밭이었다. 아침 일찍 내린 눈이 햇빛을 받아 녹고 있었다. 또 한 번 무전이 들렸다. “지금부터는 주행 모드를 ‘머드’에 놓고 달리겠습니다.” 주행 모드를 바꾸자 차는 RPM을 높이며 엔진음을 쏟아냈다. 도로 곳곳에는 움푹 파인 웅덩이가 깔려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바퀴가 빠졌다는 무전을 하지 않았다. ‘S’자를 그리며 산을 오르자니 출발 전 로빈 콜건 대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디펜더는 한국의 기후와 지형에 아주 유리한 차입니다. 산이 많고 눈과 비가 고루 내리니까요.”
출발지로 돌아올 때는 일반 도로를 달렸다. 차체를 정상 높이로 낮추고 주행 모드는 ‘컴포트’로 설정했다. 승차감은 신기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디펜더는 튼튼하고 유연한 차다. 태생부터 일반 도로가 아닌 험지를 달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차니까. 그런 차로 매끄럽게 정돈된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운전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군대에서 산길을 오르내리다 일반 도로에 내려왔을 때 발바닥에 느껴지는 편안함처럼.
실제로 디펜더를 구매한 사람 중에 계곡에 뛰어들고 돌산에 오를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주행 모드 역시 일곱 가지나 되지만 1년에 ‘샌드’ ‘암석’ 모드로 달릴 일이 몇 번이나 될까? 하지만 디펜더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의 사막을 달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한국의 포장도로를 달릴 때 나름의 여유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디펜더는 진짜 럭셔리 차다. 모든 럭셔리는 여유에서 비롯되니까. 하지만 여유만 즐기면서 타기에 디펜더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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