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늘 똑같아요. 음악 작업하고, 공연 준비도 하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보내고 있어요.
며칠 전 10CM의 아시아 투어 <Close to You> 포스터가 공개됐어요. 수많은 해외 관객 앞에서 한국말로 노래하는 10CM의 기분을 상상해봤어요. 짜릿하죠?
가끔 콘서트 혹은 페스티벌 때문에 해외 공연을 한 적은 있는데, 본격적으로 투어를 가는 건 작년 이후 두 번째예요. 멋진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건 없는데, 국내와 해외 공연의 차이라면 제가 부른 OST에 반응이 더 좋다는 거? K-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럴 거예요.
<눈물의 여왕> <마이 데몬> <남은 인생 10년> 등 올해만 드라마와 영화 OST에 더러 참여했어요. OST는 작품에서 극적인 순간에 흐르는 노래이기도 한데, 이런 작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OST 작업에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보니 제 목소리가 작품과 잘 어울릴까 걱정도 됐고요. OST는 대체로 제가 만든 곡이 아닌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도 어려웠죠. 그런데 틈틈이 OST로 참여한 곡들이 사랑받는 걸 보며 자신감이 생겼고 활발하게 참여하게 됐어요. 요즘은 OST 작업을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요.
10CM로서 최근 발표한 음악은 올해 초에 발표한 곡이자 ‘청춘’ 3부작에 속하는 ‘소년’이에요.
‘그라데이션’(2022)과 ‘부동의 첫사랑’(2023)을 잇는 시리즈예요. 사실 처음부터 시리즈를 염두하고 작업한 건 아니에요. 두 곡을 발표한 뒤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비슷한 감성을 담은 노래를 더 내고 싶어 3부작으로 완성한 거죠. 사실 청춘보다는 짝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정확한 설명일지 몰라요. 세 곡 모두 짝사랑 이야기거든요.
청춘이라는 단어는 10CM에게 데뷔부터 붙은 수식어예요. 시간이 지나며 음악도 나이가 드는 뮤지션이 있는 반면, 몇몇 뮤지션은 내내 특정 나이대의 시선에서 노래하는데, 10CM는 후자가 아닐까 짐작해요.
맞아요. 제가 청춘에 집착하는 면이 있죠.(웃음)
권정열이 생각하는 10CM는 어떤 뮤지션인가요?
처음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음악에 투영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10CM만의 캐릭터가 생기더라고요. 의도한 게 아니라 꾸준히 노래를 만들었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청춘 시점에서 음악을 만드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10CM의 음악에 담긴 캐릭터가 곧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거나, 사랑을 하거나, 어떤 관계에 능숙하지 않고, 서툰 모습이 10CM의 음악에 담긴 화자의 모습이 아닐까 해요.
10CM 음악의 근간은 무엇인가요?
‘결핍’인 것 같아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랄까요. ‘봄이 좋냐??’ 같은 곡으로, 예를 들면 다들 벚꽃이나 봄의 화사한 분위기에 취한 걸 보며 어느 정도 까칠한 모습으로 반응하는 거죠. 그 외 행복하고 달콤한 노래도 있는데 모두 마찬가지예요. 달콤하고 기분 좋은 노래는 과하게 행복에 취해 있는데, 그런 모습 또한 평소에 결핍을 느끼니 달콤한 감정에 확 빠진 거라 생각해요. 좋아 죽겠고, 뭐든 해주고 싶고, 안달 난 사람이니까요.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뭐예요?
예전에는 뮤지션으로서 제 만족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요. 저만 좋아하면 허무할 때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자는 마음이 중요해요. 그 기준은 다양한데, 자연스럽게 ‘이런 곡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10CM의 신곡이야’라고 느낄 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10CM의 이전 곡과 나란히 들어도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노래죠.
불현듯 새로 나온 노래가 반갑게 들리는 느낌일까요?
맞아요. 그렇다고 오래전에 사랑받은 노래와 비슷한 걸 또 만들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식상할 수 있으니까요.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뮤지션으로서 완전히 새롭거나 파격적인 시도도 고려하나요?
그런 방면으로는 소극적인 편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싶달까.
그럼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뭐예요? “듣기엔 편한데 따라 부르기에는 어렵다”라는 반응도 있어요.
어렵게 부르려고 애쓰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따라 부르기에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 있을 거예요. 제가 노래할 때 일반적인 남자 목소리보다 높은 편이죠. 데뷔 전에 가수로서 저만의 음색을 찾는 것에 집중했거든요. 가수로서 저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저만의 음색과 창법을 개발했어요. 그래서 10CM의 음악은 저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게 달라요.
10CM의 노래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후렴보다 첫 소절, 첫 목소리가 아닐까 해요.
제게 첫 음은 매우 중요해요. 녹음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첫 음절의 목소리는 인사 같은 거잖아요. 그게 좋아야 다음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말하듯 자연스럽게 부르는 가수와 연구하고 개발해 특별한 소리를 내는 뮤지션 중, 10CM는 후자죠? ‘목소리로 입국 심사 가능한 가수’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남다른 음색이 특징이니까요
하하하. 참 좋아하는 별명이에요. 데뷔 전부터 저만의 음색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했는데,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음색이 아주 달라요. 데뷔 이후로도 조금씩 변한 것 같고요.
가장 아끼는 10CM의 노래는 무엇인가요?
꽤 많은데, 그래도 ‘스토커’가 먼저 떠오르네요. 제 모습이 잘 담긴 노래를 좋아해요. 제 성격이 100퍼센트 반영된 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저와 닮았으면서도 듣는 사람이 공감할 만큼 자연스럽게 몰입되는 노래를 아껴요.
세간의 평가나 관심과 별개로 아쉬운 노래도 있나요?
너무 많죠.(웃음) 음. 한때는 ‘아메리카노’를 싫어했어요. 부르기 싫었을 만큼요. 발매 직후부터 큰 관심을 받았는데, 막상 부르는 저는 지루했어요. 물론 지금은 고마운 곡이라 생각해요.
왜 싫어했나요?
세상에 10CM를 알린 곡이지만, 그 노래가 어떤 프레임이 된 느낌이었어요. ‘아메리카노’는 만들 때도 친구들과 카페에서 기타 치며 놀면서 완성했어요. 제가 이 노래를 얼마나 아끼지 않았냐면 만들 때 같이 있던 동료 뮤지션에게 주려고 할 정도였어요. 10CM와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 여겼던 거죠.
데뷔 초 상상했던 것과 지금의 10CM는 꽤 다른가요?
거의 반대되는 모습이죠.(웃음) 데뷔 초에는 록스타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의 10CM는 어쿠스틱 뮤지션이니까요. 록스타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건 제가 그런 기질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로커의 자질은 뭐라고 생각해요?
눈치 보지 않는 저항 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해야 하고요. 반면에 저는 억울한 일이 생겨도 불만을 잘 얘기하지 않는 스타일이더라고요.(웃음)
요즘 부쩍 관심이 생긴 게 있다면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걸 보는 게 재밌어요. 예를 들면 몇 년 전부터 제가 어릴 때 좋아하던 록 컬처를 소재로 한 패션이 유행하더라고요. 록이나 펑크 요소가 가미된 곡을 유명 아이돌이 부르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현상을 보는 게 참 재밌어요.
눈여겨보는 후배도 있나요?
빅나티요. 열정도 넘치고 순수하게 음악을 하더라고요. 자기 검열도 철저한데, 저도 그렇게 성장한 뮤지션이라 신기하기도 해요. 그의 에너지를 옆에서 보는 게 좋아요.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빅나티를 비롯한 신예 후배 뮤지션과 협업하기도 했어요.
빅나티와는 꽤 친해졌어요. 그 외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젊은 뮤지션들과 만나며 새로운 세대를 알게 됐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어요. 그와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걸 쉽게 받아들이는 편은 아니에요. 친해지는 건 더 어렵고요.
유튜브나 SNS 댓글 문화가 예전과 꽤 달라졌어요. 팬과 뮤지션이 격의 없이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 같달까요. 기억나는 댓글도 있나요?
웃긴 댓글 많죠. 예를 들면 제가 무대에서 한 퍼포먼스가 별로였는데 그걸 꼬집는 사람들이 참 재밌어요. 제가 봐도 별로거든요.(웃음)
‘안경좌’ ‘유죄 인간’ 등 팬들이 지어준 얄궂은 별명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재밌죠. 저와 고영배, 이석훈을 칭하는 별명인데, 영배와 저는 미남 이석훈과 엮였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웃음)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나요? ‘아메리카노’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무한도전>(2014)에 출연해 엄청난 관심을 받을 때, ‘봄이 좋냐??’(2016)의 메가히트 등, 기록할 만한 순간이 더러 있어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지금처럼 음악하는 게 잘 맞고요. 예전의 저는 젊어서 그랬는지 필요 이상으로 멋을 부린 것 같기도 하고, 록스타를 꿈꾸며 저와 맞지 않는 가치관을 추구한 적도 있거든요. 아, 그런 의미에서 돌아가고 싶네요. 예전의 저를 혼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어요.(웃음)
아직 세상이 잘 모르는 10CM의 새로운 면도 있나요?
글쎄요. 10CM는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어쿠스틱 뮤지션이라 대부분 콘서트도 그럴 거라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데 콘서트는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통기타 하나로 채우는 무대가 다가 아니에요. 나름 큰 스케일로 완성한 무대도 있고요. 그리고 저 생각보다 성실하게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주 오랫동안. 이 또한 의외라면 의외일 것 같네요.
2004년 밴드 해령으로 데뷔했고, 어느덧 20년 차 뮤지션이에요. 돌아보면 어때요?
저는 데뷔일을 두 개라 말하거든요. 어려 보이고 싶으면 2010년 10CM 데뷔를 얘기하고, 장난치고 싶을 때는 밴드 해령으로 데뷔한 2004년을 말해요.(웃음) 아무튼, 지난 시간이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안식년 같은 걸 가져본 적도 없고 내내 달린 것 같거든요. 항상 바빴고, 대체로 작업실에 있었거든요.
10CM를 지금까지 이르게 한 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음악을 왜 하고 있나, 명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결론은 제 만족이 다가 아니라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어릴 때는 오로지 저만 생각했거든요.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다만 음악을 열심히 만들어서 발표하는 것에 집중했고, 제 노래에 대한 평가나 호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좋게 말하면 장인정신인데, 좀 꼬장꼬장한 면이 있었달까요.(웃음) 그런데 활동하다 보니 저도 칭찬을 좋아하더라고요. 동시에 제멋대로 만든 음악에 대한 만족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조금씩 철이 든 건지, 이제는 제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어느 정도 느껴요.
벌써 봄의 끝자락이에요. 올여름 계획도 있나요?
아시아 투어가 있죠. 그리고 ‘너랑 밤새고 싶어’라는 신곡이 나와요. 지난 ‘청춘’ 3부작이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진지했는데, 신곡은 편하게 듣기 좋은 달콤하고 설레는 무드의 노래예요. 날씨 좋은 날 플레이리스트에 더하고 싶은 곡이랄까? 풋풋하고 설레는 멜로디가 특징이에요.
목표는요?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처럼 계속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먼 미래를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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