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계급론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오월의봄
책을 홀린 듯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아쉬웠다. 이 책은 아주 재미있을 뿐 아니라 주제도 굉장히 중요한데, ‘야망 계급’은 그 중요성이 전해지지 않을뿐더러 메시지도 약하다. 이 책이 말하는 야망 계급은 ‘Aspirational Class’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요소(럭셔리 업계, 미식 등)를 실제로 소개하는 직군 종사자의 입장에서 나라면 이걸 ‘선망 계급’이라고 부르겠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건 늘 비슷하다. 선망성을 티내고 읽는 방식만 달라진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도 그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선망하며, 그 선망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사회학자인 저자는 ‘옛날 부자들이 쓰던 물건이 럭셔리라는 산업이 되며 역으로 그 물건들이 진짜 부자를 대변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부자들이 더 은밀한 수단으로 자신의 부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미국 소비자 데이터를 통해 분석힌다.
이 책의 백미 중 하나가 모유 수유의 럭셔리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과 사회적 데이터를 통해 왜 오늘날 모유 수유가 도시 여자의 럭셔리인지 소상히 소개한다. 모유 수유의 우수성을 떠올리는 교육 수준, 모유 수유를 보장하는 육아휴직의 가능 여부로 대표되는 고급 직장, 모유 수유가 물리적으로 가능한 지역의 치안까지. 이 책에서 저출산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나오지만 읽다 보면 왜 저출산 시대가 국제적으로 오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이제 아이를 그럴싸하게 카우려면 중산층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이다.
데이터와 통찰이 함께하면 의외의 구석에서 의표를 찌르는 재미가 나온다. 이 책에도 그 재미가 있다. 저자는 도시인의 다양한 소비지표를 모아 우디 앨런 영화처럼 그 소비의 의미를 설명한다. 자신의 출신 대학으로 농담을 하는 엘리트의 자기 기만성에 대해, 공정무역 커피처럼 제품을 이해하는 데 지식과 교육이 필요한 상품군을 소비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저자는 논리와 사례를 통해 도시 소비문화의 그럴싸한 포장지를 한 꺼풀씩 벗겨낸다.
책의 원제는 ‘작은 것들의 합(The sum of samll things)’이다. 제목처럼 책은 일상을 이루는 소비의 양상을 합하며 현대사회를 그린다. 저자가 보여주는 세상의 흐름은 사실 조금 곤란해 보인다. 육아와 교육이 비싸지니까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고가품을 할부로 끊는 세상. 이 생산품이 얼마나 옳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과시적 생산’이 새로운 럭셔리가 된 세상. 이제는 진짜 럭셔리가 무엇인지 모두 쉬쉬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통로가 무엇인지 보이지도 않는 세상. 그래도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는 나으니 책을 권한다. 일단 재미있기도 하고.
나도 이 책이 말하는 ‘야망/선망 계급’이다. ‘모호해 보이는 크리에이티브’ 직군 종사자니까. 크리에이티브 직군은 선망 계급의 저소득 분위에서 유기농 채소와 공정무역 커피를 즐기며 이 시대의 부자들과 함께 장은 볼 수있다. 진정한 부의 증명이자 티켓인 고가 육아나 고급 교육은 다른 문제지만. 업계 친구들끼리 ‘왜 우리 직군은 유독 출산율이 낮을까’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책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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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나라
이종성, 틈새책방
저자 이종성은 한국 사회를 해석하는 데 야구라는 도구를 쓴다. 한국 주류 사회의 중심에 학연이 있는데, 야구는 그 학연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 상징물 중 하나이며, 학연으로 얽힌 파워 엘리트는 야구가 한국 대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결론에 닿기 위해 저자는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한 세기의 자료를 근거 삼아 한국에 야구가 자리 잡은 과정을 추적한다. 현대 한국을 이루는 두 선진국인 일본, 미국과 한국은 야구로도 얽혀 있었고, 야구와 엘리트로 얽혀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정리해 다큐멘터리처럼 보는 맛이 있다. 논증이 탄탄한 건 물론 특정 정파나 관점에 매이지 않고 상황의 경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세련된 책이다. -
아버지의 용접 인생
셰쟈신, 산지니
저자 셰쟈신은 대만의 사회학 연구자이자 트레일러 노동자의 딸이다. 그는 책의 처음부터 그 사실을 드러내며 자기 아버지의 일과 삶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아버지가 노동자인 동시에 자신이 훈련받은 연구자라는 사실을 활용해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성공한 블루칼라가 되었으나 이를 계승하려 하지는 않는, 더 쉬운 말로 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나처럼 고생하지 않는다”고 자식에게 말하는 노동자의 논리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노동자의 가족이라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는 동시에 동아시아 노동 계급이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된다. 한국과 대만은 비슷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 이야기인데도 마음 찡해지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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