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가 시작하기 전부터 런웨이를 따라 줄지어 설치된 웅장한 마스크 조각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둠 속에 반쯤 실루엣을 드러낸 채 제각기 희로애락을 담은 얼굴들은 에트로 2024 F/W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쥐고 있는 듯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드 빈센조(Marco De Vincenzo)는 고대의 패브릭 여정으로 손님들을 이끌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가 이번 시즌 에트로의 영감이 됐다. 율리시스가 겪은 모험과 미지의 여정을 장엄한 분위기와 극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컬렉션은 시종 뜨겁고 이국적이었으며, 오리엔탈적인 세부가 짙게 드러났다.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버건디 컬러 셋업을 비롯해 펠트 소재 위로 과감하게 쓰인 정교한 금박 패턴, 레더 위의 스텐실 등 페이즐리부터 기하학적인 플로럴, 보태니컬 패턴을 다채로운 소재에 배치하고 레이어하면서 견고한 형태에 섬세한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런웨이에 설치된 거대한 마스크 조각상들은 네크리스와 이어링의 모티브로 눈에 띄었다. 작아져도 여전한 존재감과 입체적인 양감으로 원초적인 이국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쇼 전반은 스카프로 연결돼 떨어지는 니트 드레스를 셔츠와 오버핏 재킷, 수직적인 실루엣의 코트와 새롭게 연출한 스타일링으로 이어졌다. 뒤이어 가볍고 시어한 소재의 블라우스와 스커트, 홀터넥 드레스에 수직적이고 묵직한 아우터의 매치로 색다른 균형을 만들어냈다. 테라코타, 올리브, 버건디, 그레이 컬러 팔레트로 이뤄진 클래식한 패턴과 패턴의 중첩은 회화 기법처럼 아름답고 오묘했다. 이것 또한 마르코 드 빈센조가 준비한 여정 중 하나였다.
에트로 아카이브인 페이즐리 모티브의 에스닉한 무드와 장인정신을 근사하게 드러낸 이번 컬렉션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브랜드 월포드(Wolford)와 협업했다. 현대적인 우아함과 완성도 있는 디테일의 가치를 공유한 두 브랜드는 제2의 피부로 봐도 무방한 스킨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에트로×월포드 컬렉션은 에트로의 아카이브인 페이즐리 모티브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세 가지 디자인 패턴을 보디수트, 점프수트, 드레스와 톱, 퀼로트, 타이츠에 적용했다. 장갑처럼 꼭 맞고, 의외로 웨어러블하며, 유려한 몸의 실루엣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자카르 기법을 적용한 보디스타킹은 마치 피부에 패턴을 새긴 듯한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얇고 정교한 마감이 돋보였다.
여기에 다채로운 소재와 풍성한 양감을 더해 인상적인 대조를 만들어냈다. 관념적인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은유적 장치이기도 했다. 에트로의 남녀 통합 컬렉션은 꽤 오랜만이었으니까. 다양한 패브릭으로 통합하고 구현된 세계는 그 의도와 메시지가 또렷해서 남성 비중이 줄었다고 아쉬워하기 무색했다. 절도 있는 테일러링, 찰랑이는 프릴 장식, 니트, 울, 가죽에 대담하게 새긴 패턴과 자수는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며 소설과 희곡이 교차하는 내러티브를 지루할 틈 없게 이끌어나갔다. 벨라 백을 비롯해 런웨이에 등장한 액세서리들은 수공예적 요소를 덧대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 백의 장식과 새 시즌 벨라 백에 가죽 끈을 정교하게 엮은 기법이 보였고, 원석들을 줄줄이 꿰어 만든 목걸이와 가방 참 장식은 작지만 강렬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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