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쓰는 남자는 별로.” 몇 달 전 어느 여자 대학생이 유튜브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떠나 갤럭시에 대한 편견은 계속 있었다. 몇 년 전 인터넷에는 대학 신입생이 ‘갤럭시를 쓴다는 이유로 소개팅에서 퇴짜 맞았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스마트폰에는 각자의 기호가 반영되고 라이프스타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도 스마트폰 하나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MBTI는 16가지에 혈액형도 4가지인데 스마트폰은 사실상 2가지 아닌가. 갤럭시를 쓰는 이유도 다양하지 않을까?
“남자 회계사인데 향수 뿌린다? 100% 아이폰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김모 씨는 ‘외모에 신경을 쓸수록 아이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근거는 그의 사회생활, 반례는 자기 자신이다. 그는 LG G2를 쓴 이후 지금까지 갤럭시만 쓰고, 향수를 뿌리기는커녕 향수병조차 만져본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 보면 셀카 많잖아요. 전신 거울 앞에서 찍는 사진이요.” 그는 SNS 사용률과 스마트폰 선호도도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저는 거기서 한 번도 갤럭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인스타그램에 ‘#거울셀카’를 검색하자 101만 개의 게시물이 떠올랐다. 호텔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사람, 헬스장을 배경으로 복근 보여주는 사람, 천장에 달린 거울 쳐다보는 사람. 사진 속 배경은 제각각이었으나 스마트폰은 같았다. 아이폰.
스마트폰으로는 셀카만 찍는 게 아니라 일도 한다. 일 때문에라도 갤럭시를 써야 할까? 김모 씨는 확실히 그랬다. “입사하고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바꾸는 사람은 있습니다. 회계사는 전문가 조직이고 감사 업무를 해야 하는 직군인데, 고객사 측에 전화해서 ‘아까 말씀하신 게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이게 맞나요?’ 묻기 애매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통화 녹음이 유용하죠.” 갤럭시는 아이폰과 달리 통화 녹음 기능이 기본 탑재된다.
공무원은 어떨까? “저는 한 번도 비싸고 좋은 스마트폰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카카오톡이랑 전화만 하면 되거든요.” 왠지 공무원 같은 말을 하는 박경찬 씨는 세종시청 공기업 팀장으로 일하다 지난가을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자국 공무원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그의 직장에 스마트폰 관련 규정은 전혀 없다. 그러나 박경찬 씨의 스마트폰은 갤럭시 S9+. SNS를 하지 않지만 향수는 뿌린다.
그가 갤럭시를 쓰는 이유 역시 업무와 관련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업무 복장. “저희는 정장 입고 출근하거든요. 안주머니에 지갑 넣으면 생각보다 불편해요. 갤럭시는 삼성페이가 되니까 지갑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애플 페이가 들어왔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굳이 아이폰으로 바꿀 필요는 없죠. 갤럭시에는 원래 있던 기능이니까요.”
김 씨의 직장 동료처럼 아이폰을 쓰다 갤럭시로 넘어간 이들도 있다. 한국타이어 구매기획팀의 이세영 선임은 대학생 때 첫 스마트폰으로 아이폰 4를 구입했다. 그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내내 디자인과 성능에 만족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턴을 할 때까지는. “외국에 나가면 스마트폰이 유일한 생존 도구잖아요. 날씨가 꽤 추운 날이었는데 배터리 20%에서 갑자기 꺼지더라고요. 갤럭시는 마지막 1%까지 짜내고 죽을지언정 갑자기 꺼지는 법은 없거든요. 국산 자주포만큼 튼튼합니다.” 그 후로 이세영 씨는 갤럭시만 쓴다.
갤럭시를 쓰는 남자 직장인들은 공통된 주장을 했다. 어릴수록, 여자일수록, 패션에 관심이 많을수록 아이폰을 선호한다. 정말일까? 나는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직장인을 찾아가기로 했다. “지금 저희 팀 직원이 남자 1명, 여자 2명이거든요. 공교롭게도 전원 아이폰 쓰고 있습니다.” 전아영 씨는 외국계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웹 머천다이징 매니저다. 회사에서 아이폰을 지급하진 않지만 여기도 업무상 사정이 있다. “외국계 회사는 사내 인트라넷이 갤럭시랑 연동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아이폰으로 바꾸는 분들이 있죠. 에어드롭도 유용해요. 저희는 메시지만큼이나 이미지나 파일을 주고받을 일이 많거든요.” 에어드롭은 애플 기기 간에 무선으로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아이폰 그룹과 갤럭시 그룹은 단톡방을 넘어선 오프라인 세계에서 잘 만나지 않는다. 갤럭시파와 아이폰파가 서로에 대해 가진 미묘한 편견이 그 증거다. 서로를 확인할 수 있다면 편견도 덜 생길 테지만 만나지 않으니 갤럭시와 아이폰 사용자는 서로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갤럭시 쓰는 남자는 별로’라거나 ‘패션에 관심 많은 어린 여자가 아이폰 좋아함’ 등이 그 편견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 갤럭시 쓰는 사람과 아이폰 쓰는 사람은 서로를 외계인 보듯 한다. 아이폰과 갤럭시는 평행우주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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