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오메가는 씨마스터 아메리카 컵 기념 모델에 교체 가능한 브레이슬릿을 장착해서 출시했다. 케이스는 보통 손목시계와 차이가 없고 브레이슬릿에만 버튼이 달려 있다. 탈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진 속 ‘AUCKLAND’ 아래 보이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슬릿과 케이스를 연결하는 스프링바가 수축된다. 버튼을 누른 채 브레이슬릿을 당기면 어린아이의 유치처럼 브레이슬릿이 쏙 빠져나온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건 오메가의 저력과 보수성이다. 2023년 현재 오메가에서 교체 가능한 브레이슬릿을 적용한 시계는 이것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오메가는 이 시계 하나만을 위해 별도의 전용 교체 장치를 고안했다. 요즘 시계 업계는 앞으로는 장인정신을 말하며 뒤로는 점점 자동화하고 효율성을 높인다. 오메가는 요즘 고급 시계 업계의 추세에 종종 역행한다. 오메가의 기묘한 매력이다.
예거 르쿨트르
예거 르쿨트르는 마스터 컨트롤 모델의 일부 라인업에 교체 가능한 브레이슬릿을 장착했다. 이 구조는 교체할 수 있는 브레이슬릿이나 스트랩 중 가장 간단하고 기초적이다. 브레이슬릿 끝부분 양쪽에 나사처럼 튀어나온 부품이 보인다. 양 손가락으로 이 부품 둘을 꼬집듯 당겨주면 스프링바가 수축되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분리되는 구조다. 손톱을 너무 바짝 깎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예거 르쿨트르의 합리성이 읽힌다. 시계 케이스 끝단에 길게 튀어나온 러그가 있고 그 안에 스프링바를 체결하는 구멍이 파여 있다. 그 구멍으로 꿸 수 있다면 뭐든 시곗줄이 된다. 예거 르쿨트르(이자 일반적인 손목시계)의 구조라면 이미 출시된 다양한 정품, 사제 스트랩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반대로 아직은 별도의 스트랩/브레이슬릿 교환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파네라이
파네라이는 루미노르 듀에 일부 모델에 교체 가능한 스트랩을 적용했다. 이 스트랩은 스프링바를 수축시키던 앞선 방식과 조금 다르다. 스트랩 끝단 중앙 버튼을 누르면 스프링바와 스트랩을 고정하던 부위가 열린다. 시계를 찬 입장에서 스트랩의 버튼을 누른 채 아래에서 위로 힘을 주면 스트랩이 빠진다. 낄 때는 반대다. 체결과 해체가 가능한 특정한 각도가 있는데, 그 각도를 익히면 체결과 해체를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파네라이의 고뇌가 읽힌다. 파네라이는 스트랩을 바꿔 끼우는 재미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편리하면서도 기존 시스템과 호환되는’ 제3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파네라이는 스트랩 체결 부위를 수정하며 해답을 제시했다. 이거라면 전용 가죽 스트랩으로 교체할 수도 있고, 스프링바를 제거한다면 기존의 다양한 사제 스트랩도 쓸 수 있다. 편리하고, 기존 방식과 호환되고, 파네라이답다.
로저 드뷔
로저 드뷔는 교체 가능한 스트랩에 ‘퀵 릴리즈 시스템’이라는 별도의 이름까지 붙였다. 퀵 릴리즈 시스템은 전용 케이스와 전용 스트랩으로 구성되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스프링 버튼을 누르고 시계 아래에서 위로 끼우면 된다. 스프링의 압력에도 신경 썼는지 버튼을 누를 때의 압력이 오늘의 시계 중 가장 가벼웠다. 해체할 때는 스트랩 버튼을 누르고 스트랩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매끈하게 빠져나간다. 참신하다.
로저 드뷔의 퀵 릴리즈 시스템에서는 이들의 정체성이 읽힌다. 이 시스템은 확실히 견고하다. 로저 드뷔는 구조적으로 시계 스트랩의 안정성을 높였다. 러그 사이 가운데에 있는 별도 지지대가 스트랩을 잡아두고, 양옆 지지대가 스트랩을 받쳐준다. 스프링을 노출시켜서 정밀 기계 장치 느낌도 물씬 난다. 별도의 거창한 이름을 붙인 장치답다. 로저 드뷔는 구석구석 신경도 많이 쓰고 생색도 잘 낸다.
불가리
불가리 옥토 로마 신형은 브레이슬릿과 스트랩에 전용 ‘인터체인저블 시스템’을 적용했다. 브레이슬릿과 스트랩 끝부분은 별도 설계된 전용 체결 부위다. 탈착 스위치 역시 브레이슬릿이 아니라 케이스에 자리한다. 체결과 해체 방법은 오늘의 시계 중 가장 간단. 가로로 쭉 집어넣으면 ‘찰칵’ 하는 느낌과 함께 브레이슬릿/스트랩이 체결된다. 해체할 때는 버튼을 누른 채 서랍을 여는 느낌으로 당겨준다. 끝.
불가리의 인터체인저블 시스템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고급 시계의 진화다. 미국 동부 힙스터가 빈티지 시계를 재발견하고 미국 서부 테크 회사가 애플 워치를 만들면서 21세기 손목시계는 손쉽게 줄을 바꿔 끼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교체 가능한 스트랩 시스템은 불가리처럼 별도의 전용 케이스와 스트랩으로 발전했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조용한 듯 보여도 나름 이런저런 개선을 꾀하고 있다.
제니스
제니스는 신형 데피 스카이라인 모델에 스트랩 교환 가능 시스템을 적용했다. 별도 설계한 전용 스트랩 및 브레이슬릿이 케이스에 체결된 장치에 고정되는 구조다. 버튼을 눌러서 체결하고 해체할 수 있는 건 불가리와 같지만 구체적인 체결과 해체 방법은 조금 다르다. 케이스 버튼을 누른 채 병따개로 음료수를 따는 기분으로 브레이슬릿을 위로 젖히면 해체된다. 익숙해지면 상당히 직관적이라 편리하게 쓸 수 있다.
제니스의 교체 가능 시스템에서는 이들의 융통성이 읽힌다. 제니스 데피 스카이라인의 케이스 하단을 자세히 보면 러그 사이에 체결 시스템이 별도 나사로 설치된 걸 알 수 있다. 기존에 쓰던 보통 케이스에 별도의 시스템을 추가해 사용하기 더 편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용자는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좋고 사실은 브랜드도 좋다. 이 시스템에서는 제니스 전용 스트랩과 브레이슬릿만 써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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