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눈으로 뒤덮인 거리만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윤희에게>, 넷플릭스 시리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의 배경이 모두 한겨울의 삿포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아닌 계절의 삿포로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한 마음을 품고 일본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위도가 높은 탓에 홋카이도는 벌써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평일임을 감안해도 거리가 무척 한산하고 조용했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인구는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도시지만 그에 비해 땅이 넓어 인구밀도가 최하위라고 한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북적이지 않고 날씨도 시원해서 일단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뉘엿뉘엿 지던 해도 모습을 감춘 까만 밤, 분홍빛 조명으로 반짝이는 삿포로 TV 타워가 보였다. 맞은편에는 도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오도리 공원이 자리했는데 일반적인 공원의 형태와는 좀 달랐다. 직사각 모양의 블록을 길게 나열한 듯한 이 공원은 블록 사이사이에 횡단보도가 있어 잠시 멈추고 걷는 것을 반복하며 산책하기 좋았다. 처음엔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버스킹 공연을 구경하거나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니 지루하지 않았다.
다음 날의 첫 일정은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삿포로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한풀 꺾인 늦여름의 햇빛과 느린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서 있다 보니 시끄러웠던 마음이 금세 조용해졌다. 낙원 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삿포로를 대표하는 명소인 맥주 박물관을 방문했다. 일본 최초로 맥주 생산을 시작한 삿포로 맥주의 역사와 원료, 제조 공정 등을 관람할 수 있는데 사실 이곳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다.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맥주는 물론, 박물관 한정으로 판매하는 생맥주가 있어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박물관 옆에는 홋카이도 지역 음식을 대표하는 징기스칸 요리로 인기 있는 ‘삿포로 비루엔’도 있다. 시내의 징기스칸 음식점에 비해 공간이 넓어 단체 여행이나 가족 단위로 찾기도 좋다.
자연 풍경을 만끽하고 미식을 즐겼지만 여행을 기념할 만한 선물을 사려고 하니 생각보다 마음에 차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삿포로 도큐백화점에 새롭게 오픈한 유니클로에 들렀다.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옷을 재활용하고 수선 및 리메이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유니클로 스튜디오(RE. UNIQLO STUDIO)’ 뿐만 아니라 ‘UTme!’ 서비스도 만날 수 있는 매장이다. ‘UTme!’는 고객이 자신만의 티셔츠와 토트백을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로 지역사회와 협업한 한정 디자인을 선보인다. 도큐백화점 삿포로점에선 홋카이도의 기업이나 대학과 함께한 17종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야키토리 전문점 쿠시도리, 구니마레 사케 양조장 등이 그것인데, 내가 방문했던 가게와 함께한 디자인을 직접 티셔츠에 프린트해 삿포로의 특별한 기억을 남길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여름과 가을 사이, 삿포로의 선선한 날씨를 마음껏 만끽했던 여유로운 기억은 내게 삿포로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계절이든 다시 이곳에 오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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