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
윌리엄 제르마노, 지금이책
부끄럽게도 나는 원고에 대한 훈련이나 연습이 거의 없이 일을 시작했다. 잡지계는 그런 걸 알려주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내가 배운 건 영문학 작문 시간에 익힌 글쓰기의 기본 규칙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십자드라이버 하나 들고 건설 현장에 나간 기분이었다. 핑계를 대보면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잡지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름 달고 페이지를 만들게 된 이상 잘해야 했다. 그 마음만으로 페이지를 채워갔다.
일을 해나갈수록 글쓰기에 대해 더 알아야 했다. ‘원고를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원고를 작성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줘야 할 일도 생겼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나 역시 글쓰기가 영감이나 혼처럼 개량 불가능한 뭔가의 소산인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생산하는 글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잘 만들어진 배선처럼, 만든 나도 보는 사람도 쉽게 파악해야 하고, 좋은 노래처럼 읽고 듣기 즐거워야 했다. 그게 완성도라면, 나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디서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쳐쓰기, 좋은 글에서 더 나은 글로>는 그 면에서 눈이 간 책이다. 이 책은 글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글을 고쳐 쓰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면 좋은지에 대해 설명한다. 나처럼 업무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고쳐쓰기의 각 단계, 글에서 구조와 논리를 잡는 방법 등. 이런 건 전부 참고하지는 않아도 읽기 즐겁다. 내 일을 국숫집 운영에 비유하면 ‘저 국숫집은 저렇게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구석도 있고.
이 실용서는 사상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글은 저자의 생각이 텍스트의 흐름을 통해 표현된 것이니 기본적으로 사상이기도 하다. 저자 윌리엄 제르마노는 글을 쓰는 마음가짐도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 저자를 일러 ‘적절한 타이핑 기술을 갖춘 한 쌍의 귀’라는 표현을 썼다. 잘 쓴 글은 ‘듣기에도 좋다’는 표현도 있고, 훌륭한 글이란 독자를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독자들 ‘사이에서’ 쓰는 글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방금 이야기가 내게는 실용적으로 와닿는다. 그러나 이 일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교훈적일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장점은 믿을 수 있는 저자가 전하는 풍부한 사례다. 영미권 출판계의 편집자는 상당한 엘리트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실제로 책의 완성도와 흥행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저자 윌리엄 제르마노 역시 영문학을 박사까지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 출판부 편집주간을 역임하는 등 학력과 이력이 화려한 편집자다. 그런 사람답게 책 곳곳의 멋진 인용문을 보는 것도 재미다. ‘산문이란 최상의 순서로 배열된 단어들이며, 시란 최상의 순서로 배열된 최상의 단어들’ 같은 말들. 새뮤얼 콜리지의 말이라고 한다.
아울러 나는 이 책 속에 있는 세밀하고 긍정적인 세계관이 좋다. 쓰기에 대한 책은 많아도 고쳐쓰기(revise)에 대한 책은 적다. 좋은 글이 한 방에 물 흐르듯 나온다 여기는 일필휘지에 대한 환상 때문일까. 이 책은 좋은 글이란 그렇지 않으며, 고칠수록 좋아지는 방법론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으로 설명한다. 글이든 뭐든 사람이 만든 건 고칠수록 나아진다. 나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의 무기력함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만큼 이 책의 능동성과 진취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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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
벤 웨스트호프, 소우주
책도 책인데 저자의 프로필과 책을 쓰게 된 이유가 흥미롭다. 저자 벤 웨스트호프는 <LA 위클리>의 음악 편집자로 일하다가 EDM 페스티벌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죽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저자 역시 LSD와 전자음악으로 젊은 날을 보냈지만 2010년대의 펜타닐은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1백60여 명을 인터뷰하고 몇 달을 취재해 이 책을 썼다. 중국부터 미국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타고 이어지는 펜타닐의 유통을 보면 이 책의 말대로 펜타닐이 ‘고삐 풀린 글로벌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
기계 속의 악마
폴 데이비스, 바다출판사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써내려간 답. 저자 폴 데이비스는 생물학, 물리학, 컴퓨팅, 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낸 조사와 통찰을 토대로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을 가르는 변수는 정보’라는 멋진 명제를 만들어낸다. 이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학자답게 다양한 논증과 사례를 동원한다. 읽다 보면 저자의 빼어난 지성에 감탄하는 동시에 지금이 각종 학제 분야가 통합되는 시기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추석 연휴 내내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읽을거리가 풍부한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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