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다음 날 손흥민 유니폼이 더 팔린다는 말이 있다. 자동차계에도 그런 때가 있었다. 모터스포츠 대회 성적으로 각 브랜드의 성능이 판단되어 구매와 연결되던 때가. ‘일요일에 우승하면 월요일에 차가 팔린다’는 시절을 뜻하는 말이다. 반면 오늘날 르망 24시와 F1 경기 결과에 구매할 차를 결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테슬라는 단 한 번도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적 없이 전 세계에 차를 판다. 그런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이하 ‘현대’)는 고성능 라인업 N을 냈다. N은 종종 BMW M과 비교된다. 대형 자동차 브랜드의 고성능 라인업이기 때문에,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 거의 모든 지표에서 M이 N을 웃돈다. 기계의 성능, 기계의 가격, ‘헤리티지’라 부르는 전통까지. 그래서인지 현대는 N을 개발하며 M의 남자를 영입했다. 알버트 비어만. BMW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M의 개발총괄책임자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N을 M의 아류작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그렇다면 엠블럼을 떼었을 때 N과 M 중 어떤 차를 고를까?
N과 M의 근본적 목표는 같다. 운전 재미다. 공도에서든 트랙에서든. 둘은 모두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하고 그 경험을 양산차에 적용한다. 그런데 둘의 가격과 퍼포먼스는 큰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브랜드의 포지셔닝에서 비롯된다. BMW는 프리미엄 브랜드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시작 가격이 4천만원을 넘긴다.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M은 후륜구동을 고집한다. 라인업은 6기통·8기통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이 500마력을 웃돈다.
현대는 대중차 브랜드다. 엔트리 모델인 캐스퍼의 가격은 1천3백85만원부터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판매대수도 많다. 지난해 현대차의 글로벌 총 판매대수는 BMW 그룹의 약 1.5배에 달한다. 그 안에서 현대의 특기는 100마력대의 전륜구동차다. 현대 N은 지난 8년간 300마력을 넘지 않는 전륜구동 스포츠카에 주력했다. i30 N, 벨로스터 N, 아반떼 N 모두 그랬다.
현대도 할 수 있다. 500마력 이상의 1억원대 고성능 차를 만들지 못할 리 없다. 현대가 M5의 직접적인 경쟁 모델을 만들지 않는 이유와 BMW가 아반떼 N의 경쟁 모델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같다. 속한 시장이 다르니까. 이들은 각자 속한 시장에서 최고의 차를 만들 뿐이다. 현대는 같은 성능과 가격의 차라면 소비자가 N이 아닌 M을 택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신형 아반떼 N의 최고출력은 280마력이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며 500마력, 0→100km/h 3초 같은 수치가 익숙해져도 280마력은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아니라면 280마력의 출력을 100% 뽑아내기 어렵다. N은 일반 운전자가 탈 수 있는 수준 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카를 만든다. 슈퍼카 오너 중에도 N을 사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시계로 비유하자면 N은 롤렉스보다 지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차는 사람이 수심 300m는 고사하고 수심 3m까지 들어갈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될까? 반면 실제로 바다에 들어갈 사람은 롤렉스보다는 지샥 프로그맨을 찬다. 더 실용적이고 정비성도 좋다. N은 평일 강남대로 출퇴근 길에도, 주말에 찾은 인제스피디움 서킷에서도 즐길 수 있는 차다. 서킷에서 차를 몰아세우다 디퍼렌셜이 고장나도 동네 카센터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리할 수 있다.
N과 지샥 같은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훌륭한 제품력. N은 2015년 출범 이래 성능을 지표로 증명하고 있다. N이 달성한 WRC 2년 연속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2019, 2020),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라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8년 연속 완주는 그럴싸한 브랜딩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지표다.
자동차 회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자를 설득한다. 현대는 헤리티지나 디자인 대신 유의미한 숫자를 들이밀며 N 브랜드를 설득해왔다. ‘일상의 스포츠카’를 앞세워 N을 만들기 시작해 지난 8년간 꾸준히 성과를 올렸다. 대중 브랜드의 가격과 성능에서 벗어나지 않는 차.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차. 만일 현대가 ‘일상의 스포츠카’가 아닌 ‘최강의 스포츠카’를 앞세웠다면 오늘날 N이 지닌 설득력은 없을 것이다.
모델명 | 브랜드 | 시작 가격 | 전장×전폭×전고(mm) | 엔진 | |
아반떼 N | 현대자동차 | 3천3백52만원 | 4,710×1,825×1,415 | N 전용 터보 2.0L 가솔린 직렬 4기통 | |
M3 컴페티션 | BMW | 1억3천4백50만원 | 4,795×1,905×1,440 | M 트윈파워 3.0L 가솔린 직렬 6기통 | |
모델명 | 구동 방식 | 최고출력(ps/rpm) | 최대토크(kgf·m/rpm) | 복합 연비(km/L) | 공차 중량(kg) |
아반떼 N | 앞엔진 앞바퀴굴림 | 280/5,500 ~ 6,000 | 40.0/2,100~4,700 | 복합 10.4 | 1,520 |
M3 컴페티션 | 앞엔진 뒷바퀴굴림 | 510/6,250 | 66.3/2,750-5,500 | 복합 8.3 | 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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