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노윤호도 아침에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까?
하죠. 물론 합니다. 다만 일어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예를 들어 아침 8시에 일어나야 하면 7시 10분과 8시에 알람을 맞춥니다. 그럼 ‘50분 더 자고 일어났네’ 할 수 있으니까요.
하루를 잘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더 자고 싶다는 욕심을 이기네요.
그렇죠. 오늘 하루는 한 번밖에 없잖아요. 저도 인간이니까 스트레스를 받아요. 좋은 스트레스와 나쁜 스트레스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 받는 스트레스는 내가 발전하기 위한 경험이다’ 혹은 ‘이건 감정 소비에 가까운 스트레스다’를 나름대로 구분해요.
이런 건 데뷔 초부터 생긴 습관인가요, 아니면 일을 하다 보니 생긴 노하우인가요?
노하우였어요. 연차가 쌓이면서 일을 즐길 수 있게 됐거든요. 마냥 열심히만 하지 말고 즐겨도 보자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포인트가 많이 바뀌었죠.
오늘처럼 화보 촬영이 있거나 무대에 서는 날의 아침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노래를 들으셨나요?
폴 사이먼의 ‘50 Ways to Leave Your Lover’를 들었어요. 제목을 직역하면 ‘연인과 헤어지는 50가지 방법’이지만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는 내용이거든요. 저는 그때그때 제 생각과 맞닿아 있는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요. 요즘처럼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으면 ‘내 이야기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런 생각이 이 곡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자기 관리 철저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요즘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격투기 제일 열심히 해요.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스파링 1백 번 이상은 했을
거예요.
아마추어 대회는 충분히 나가실 수 있겠는데요. 좋아하는 선수도 있나요?
누구 하나 고르기 애매할 정도로 좋아하는데(웃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수는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늘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선수죠.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깊고요. 국내 선수 중에는 김민우, 강경호 좋아해요. 김동현 선수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방송도 많이 하시지만 본래의 자기 일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하시잖아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늘 촬영하다 보니까 발목에 래핑을 했던데 운동하다 다친 건가요?
뮤직비디오 촬영 중에 발목 부상이 있었어요. 그러고 일본에 콘서트하러 갔어요.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된 상태는 아니었어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그랬죠. “멘털이 몸을 지배합니다” 하고. (웃음) 지금은 병원장님도 ‘진짜로 이런 사람이 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신대요. 정말로 최면 효과가 있다고요.
마인드도 운동선수네요. 프로 운동선수처럼 가수도 휴식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쉴 때는 어떻게 쉬세요?
쉬는 날에는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서 영화를 틀어놓는 걸 좋아해요. 집중해서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배경음악처럼 틀어두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해요.
올해가 벌써 데뷔 20주년이시죠. 이럴 때면 ‘그땐 그랬지’ 하고 돌아보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자주 회상하는 때가 언제인가요?
저한테 초심은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아니라, 천상지희 다나의 래퍼 정윤호예요. 그때 무대 영상을 지금도 심심할 때마다 꺼내 봐요. 당연히 얼굴도 잘 안 나오고 분량도 짧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를 전부 쏟아내는 느낌이 있어요. 어설프지만 엄청나게 노력하는. 연예인은 스포트라이트 받는 게 일이잖아요. 관심받고 칭찬받는 데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해요.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죠.
활동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 혹은 ‘이것만큼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게 있었나요?
‘꼭 하자’는 리허설 연습이요. 반드시 100%로 해요. ‘절대 하지 말자’는 한 번 오른 무대에 대해서는 미련 갖지 말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으니 다음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미련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스로 세운 기준에 엄격한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아무리 제가 ‘열정 가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힘듦이 있어요. 전 항상 인생을 산에 비유해요. 지금 오른 산보다 더 높은 산에 가려면 한 번은 정상에서 내려와야 하잖아요. 그 과정 없이 다른 산에 가려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수밖에 없고요. 힘들거나 지칠 때면 ‘지금은 산에서 내려가야 할 차례구나’ ‘다른 산으로 가려면 이 길도 가야지’ 하고 받아들여요.
20년 차 아이돌의 멘털은 확실히 남다르네요. 이번 공개될 세 번째 미니 앨범 <Reality Show>는 어떤 작품인가요?
군대에 있을 때 처음 구상했어요. 막연하지만 언젠가 모두를 위한 쇼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단순한 콘서트라기보다 일종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죠. 싸이 선배님의 ‘흠뻑쇼’처럼 ‘유노쇼’ 같은 걸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주인공은 관객이에요. 제 공연장에 오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거예요. 그 사연 하나하나가 쇼라고 생각했어요. 1백 명의 관객이 오면, 그날 1백 개의 <트루먼 쇼>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앨범이에요. 완성되기까지 4~5년 걸렸어요.
유노윤호의 인생 영화 5
<포레스트 검프> -스티븐 스필버그, 1994
한 가지 능력으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포레스트 검프. 나의 인생 가치관과 일치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벤 스틸러, 2013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최고의 명대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 2022
단순한 가족 이야기지만 화려한 미장센과 메타포를 보는 재미가 탁월했던 영화.
<존 윅> 시리즈 -채드 스타헬스키·데이비드 리치, 2014
‘난 나만의 길을 간다’의 대표 주자.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캐릭터에 매료된다.
<행복을 찾아서> -가브리엘 무치노, 2006
시련을 인내한 끝에 행복이 찾아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됐다.
앞서 나온 미니 앨범들도 <Reality Show>를 위한 디딤돌이었던 거네요.
맞아요. 물론 <Reality Show>를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당장 완성도 높게 매듭지을 수 없겠더라고요. 1집 <True Colors>에서는 미래, 2집 <NOIR>에서는 과거를 이야기했고 3집 <Reality Show>에서야 현재를 이야기했어요. 네 번째 앨범은 그다음의 이야기가 담길 거예요.
이번 앨범에는 확실히 영화적 요소가 많아요. 수록곡 중 하나는 제목부터 ‘Tarantino’이고, 앨범 제목 ‘Reality Show’는 <트루먼 쇼>를 연상시켜요. 이런 장치들을 넣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무슨 영화 같지 않냐?’ 말하잖아요. 수많은 개개인이 저마다의 영화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음악으로 포장하고 싶었죠. 실제로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다양한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을 만났나요?
먼저 저와 나이대가 비슷한 직장인들을 만났어요. 취업 준비생도 만나고, 갓 데뷔한 후배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대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스태프분들도 찾아갔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엄청나게 노력하시네요. 자료를 찾다 보니 2012년에 ‘일본어 전문 강사가 뽑은 일본어 잘하는 한류 스타 1위’에 오르셨더라고요. 아이돌에게 제2 외국어 능력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거잖아요. 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문화를 배우는 건 능력보다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낯선 언어를 배울 때 생기는 자세랄까, 태도가 있잖아요. 그 자체로 전달되는 힘이 있죠.
실제로 유노윤호의 일본 공연장에는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3대가 같이 온다고 들었어요.
일본 팬분들의 가장 특별한 점이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각 세대를 위한 공연을 기획해보고 싶기도 해요.
‘열정왕’뿐만 아니라 ‘발명왕’으로도 유명하시잖아요. 집에 특허증이 몇 개나 있나요?
6개 정도 될 거예요. 사실 처음에는 그냥 특허증이 갖고 싶었어요. 제가 또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웃음) 취미 삼아 하다 보니 특허를 꽤 모았어요.
최근 집중하는 아이디어가 있나요?
캐리어요. 바꿔보고 싶은 게 있는데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웃음)
유노윤호의 캐리어, 기대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헷갈리기도 하잖아요. 윤호 님도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그런 문제로 상담 요청을 많이 받긴 해요. 그럴 때마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저는 이렇게 했어요. 하루 날을 잡고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걸 공책에 적어요. 그럼 분명 교집합이 있거든요. 그걸 우선순위로 놓고 노력합니다. 반대로 내가 못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또 적어요. 거기에도 공통분모가 있거든요.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든, 다른 사정이 있든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그걸 뒤로 미루되 오랜 시간을 두고 보완해나가요. 아주 조금씩. 기회가 올 때까지요.
유노윤호에게 후자에 해당하는 건 무엇이었나요?
프로듀싱 능력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은 ‘제가 프로듀싱했어요’ 하고 당당히 밝힌 적이 없어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앨범 전반에 걸쳐서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프로듀서에 ‘윤호’라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어요. 속으로 ‘내 세계관은 이거야’라고 되뇌면서요.
2004년의 유노윤호와 2023년 유노윤호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생각에 확신이 들면 바로 움직인다는 점.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은 똑같아요.
차이점은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예전의 저는 그냥 적토마 같았어요. 한 번 시작하면 앞만 보고 달리는. 이제는 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길 줄 알게 된 거겠죠.
연예인 생활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공연 끝나면 특히 그렇죠. 좀 전까지 수만 명 앞에서 무대에 오르고 함성을 받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딱 하고 나면 공허해요. 그 간극이 커서 기시감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럴 때는 혼자 감정을 삼키나요, 아니면 뭐라도 하나요?
기록합니다. 저한테는 지금 당장의 기분보다, 몇 년 뒤 오늘의 기분을 바라보는 제 태도가 더 중요해요. 자산이 되더라고요. ‘내가 몇 월 며칠에 이런 기분을 느꼈고 그 기분을 이런 단어로 기록했구나.’ 그렇게 돌아보면 막상 별것 아닐 때가 있더라고요. 그럼 다음에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이게 연륜이구나 싶네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유노윤호가 인정하는 열정왕이 있습니까?
아유, 너무 많죠. 그중에서도 꼽자면 부모님. 희생하시는 거잖아요. 조건 없이 베풀고 기다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분들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팬분들도 열정왕이라고 할 수 있죠.
데뷔 20년을 맞았고 세 번째 미니 앨범이 나옵니다. 우리는 유노윤호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면 좋을까요?
느낌표! 저는 사람들이 ‘이 사람의 다음 행보는 뭘까?’ ‘이 사람은 어떤 걸 좋아할까?’ 질문하기보다 ‘이 사람은 이걸 표현하고 싶었구나!’ 하고 공감받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과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 싶은 때가 있나요?
한 팬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만난 남자 꼬마였는데 아마 초등학생 정도 됐을 겁니다. 팬 사인회에서 편지를 줬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더라고요. ‘저도 형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공연하고 희망을 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아마도 어머니가 대신 써주신 것 같아요. 너무 글을 유창하게 잘 썼거든요.(웃음) 그걸 보고서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구나 실감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20년 뒤 유노윤호는 어떤 가수 혹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절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유노윤호는 유노윤호지’ ‘윤호는 하고 싶은 거 하는 애지’ 하고요. 20년 뒤에도 지금처럼 활동하고 있다면 그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시면 좋겠네요. ‘윤호는 자기가 원할 때 딱 마침표를 찍겠구나’ 하고요.
유노윤호의 인생 노래 5
‘어제처럼’ -제이
‘어제처럼 오늘도 아무 일 없는 듯이’라는 노랫말을 좋아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Smooth Criminal’ -마이클 잭슨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가수가 돼야겠다 생각했다. 지금도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곡.
‘No Man No Cry’ -지미 삭스
운전할 때 들으면 좋은 노래.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이 노래를 틀고 하염없이 도로를 달린다.
‘Martini Blue’ -DPR 라이브
매년 여름 이맘때면 루틴처럼 찾아 듣는 노래. 듣고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다.
‘Spotlight’ -유노윤호
빛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되찾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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