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중앙 수비수는 강하고 튼튼하고 상황 판단이 좋은 대신 발이 느린 경우가 있죠. 그런데 김민재 선수는 작년 나폴리에서 스프린트 속도가 빅터 오시멘 선수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영상을 보니 공격수와 달리기 대결이 되니 공격수를 뒤따라가면서도 공격수보다 빠르게 달려 공을 뺏는 장면도 많았고요.
발이 빠르면 여러 상황에서 도움이 되죠. 아무래도 공을 갖고 있는 선수가 느릴 수밖에 없고요.
‘빠른 판단’은 어떻게 하세요? 내 앞으로 선수가 올 때 슬라이딩을 할지, 몸싸움으로 공을 걷을지, 이런 건요?
순간적으로 판단하죠. 많은 전문가가 저에 대해 ‘예측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분들은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저는 패스하는 선수의 눈과 자세를 봅니다. 그 자세를 보면 이 선수가 무엇을 할지 어느 정도 예측됩니다.
패스를 주는 선수의 자세인가요, 받는 선수의 자세인가요?
주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패스 동작이나 킥 동작이 선수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걸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스를 주는 선수를 먼저 봐야죠.
패스를 받는 선수의 공을 뺏어야 할 텐데, 패스를 주는 단계부터 관찰하시는군요. 이런 건 영업 비밀 아닙니까?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루카 모드리치 같은 선수는 아웃프런트킥을 되게 잘 차요. 그런데 그 비결을 말해준다고 남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도 많이 연구했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도 막기 힘든 선수도 있겠죠? 패스를 하는 사람의 동작을 봐도?
그렇죠. 빠른 선수도 있고, 패스를 잘하는 선수도 있고, 몸싸움이 좋은 선수도 있고요. 모두 자기 분야에서 잘하는 선수들입니다. 모든 선수가 만만치 않게 힘든데 특기가 다르죠. 올리비에 지루는 몸싸움을 잘하고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는 기술이 좋고.
이탈리아 세리에A나 챔피언스리그 경기라면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압박감도 많이 느끼는 성격인가요?
안 느낀다면 거짓말이죠. 그냥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해요. 저희 팀 동료들도 잘하니까요. 챔피언스리그는 8강에서 떨어졌지만 이탈리아 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고요.
그저 ‘좋은 성적’ 수준이 아니죠. 33년 만에 우승을 하셨는데요.
제가 세리에A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리그에서든 단기와 장기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고 했어요. 1개월, 6개월, 한 시즌. 하나의 목표를 설정해 달성할 때마다 새 목표를 정하려고 해요.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요. 이번에는 목표 이상을 해낸 좋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나폴리에 가셨을 때 1개월 목표와 6개월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1개월은 주전으로 경기에 나가는 것, 그리고 제가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안 다치는 것이었죠. 장기적으로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거기에 포함됐고, 수비상도 받았고, 리그 우승까지 했으니 사실 목표를 초과했습니다. 그래서 되게 좋은 시즌이었고요.
나폴리는 전통 강호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시즌 베스트 일레븐의 한 선수로서, 올 시즌 나폴리의 우승 비결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수들이 잘한 것도 있고 감독의 영향도 컸고 운도 따랐습니다. 저희도 우승권 승점이었지만 다른 팀들이 많이 못 따라왔어요.
너무 겸손하신 말씀 아닐까요?
저희 나폴리도 우승권이었지만 우승을 못한 지가 좀 됐으니까요. 사실 그런 팀은 운이 필요하죠.
전술적으로 포백과 스리백이 다 가능하시죠. 더 편한 건 어느 쪽입니까? 포백의 왼쪽, 오른쪽 중에선 어디가 더 편하세요?
저는 포백이 더 편해요. 위치는 상관없고요.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오른쪽에 있으면 오른발을 잘 쓸 수 있고, 왼쪽에서는 공을 안으로 잡아놓고 할 수 있는 플레이도 있으니까요. 저는 한 시즌 동안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면서 많이 서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별 상관없어요.
패스를 주는 선수의 습관 같은 것도 경기 영상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건 힘들어요. 현장에서 관찰합니다. 이 선수가 어떻게 할지는 정확히 모르니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죠. 예를 들어 킥 자세와 패스 자세는 아예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자세를 참고해 결정하고 실행할 뿐입니다. 제가 예측하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요. 제가 선수를 많이 관찰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닿았습니다. ‘내 예측이 왜 빠른지’ 같은 생각을 한 겁니다.
지금 해주신 말씀 같은 경우는 축구선수가 되려는 학생이나 유망주에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그런 건 옆에서 바로바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알려줘야 효과가 있을 거예요. 못 쓰는 걸 알려줘봐야 소용없으니까, 선수가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게 쉽게 해석해서 알려주면 좋겠죠.
저는 항상 국가대표팀의 호흡이 궁금했습니다. 늘 함께하는 리그의 동료들과 손발이 더 잘 맞는 게 당연하잖아요.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아무리 국가를 대표해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였다지만 가끔 만나는데 동료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춥니까?
소통을 많이 합니다. 연습할 때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죠.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피드백을 하고 고치려 합니다. 대표팀 선수들은 수준이 높기 때문에 바로바로 받아들입니다. 큰 차이는 없어요. 종이 한 장 차이죠. 한국 선수도 수준이 높아서 전술 이해도나 흡수가 빨라요.
경기 전후에 빼놓지 않고 하는 루틴이 혹시 있습니까?
몸 풀기, 경기 들어가기 전에 ‘항상 쉽게 하고 집중하자’는 다짐을 한 10번씩 말하고 머리에 새기는 정도입니다. 한때는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었어요. 올 시즌처럼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다쳐서 제가 오른쪽 왼쪽 자리를 번갈아가면서 출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경기 수가 많아지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져 안 하던 실수를 몇 번 했어요. 그때 이후로 이런 습관이 시작됐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리커버리 능력. 역습이나 넓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게 저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커버한다는 건 팀 동료를 돕는다는 겁니다. 옆 동료가 못 잡아주는 걸 내가 대신해주는 거니까요. 그런 건 자신 있어요. 구멍이 났을 때 채워주는 역할. 그걸 제가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논리가 있고 말씀이 명쾌하시네요. 목표 해결 능력이나 판단력도 그렇고요. 평소에 책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걸 많이 보십니까?
축구 공부를 계속하죠. 제 경기를 보면서 그때는 왜 실수를 했고 저 때 어떤 생각을 했고,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이제는.
축구 공부라, 멋진 말입니다.
남들 게 아니라 제 플레이를 보고 공부합니다. 저 때는 왜 그렇게 했는지,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든지. 제 경기를 돌려 보다 보면 ‘저 때 내가 왜 저랬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이건 내가 하는 실수가 아닌데. 그리고 몸이 힘들면 게을러져요. 그래서 힘들어지기 전에 미리 움직입니다. 어떤 선수가 측면으로 움직이면 그 사이 안쪽으로 패스가 들어올 텐데, 미리 예측하고 그쪽으로 가는, 그런 걸 집중해서 연구합니다. 축구 공부를 매일 하는 건 아니고 경기 끝날 때마다 합니다. 경기 끝나면 잠을 잘 못 자요. 몸에 열이 많이 나서. 그때 보는 거죠. 잠도 안 오고 그러니까.
왜 열이 많이 나나요? 몸이 아파서요?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
긴장도 풀리고, 경기에 90분 동안 다 쏟아내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다리나 이런 곳에서 열이 계속 나요. 모든 선수들이 다 똑같아요.
세리에A에서 가장 까다로운 선수가 누구였습니까?
AC 밀란의 올리비에 지루요.
제가 아스널을 좋아해서 지루가 나온 경기를 오래 봤습니다. 그렇게 까다로워 보이는 선수가 아니던데.
지루가 제공권이 좋은데 정말 영리해요. 공중으로 공이 날아올 때 어떤 자리가 좋은지 저도 알죠. 근데 지루는 그걸 저보다 빨리 파악하고 그 자리에 미리 서 있어요. 연계도 잘하고요. 팀도 강한 AC 밀란인데 거기 지루까지 있으니까 힘들었습니다.
충격적입니다. 저와 친구들은 늘 지루를 ‘부지런하지만 덜 똑똑한 선수’라 생각했어요.
지루 진짜 똑똑해요.
선수가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게 완전히 다르군요.
팬분들이 볼 때 ‘저 선수가 왜 저러지’ 싶을 때가 있잖아요.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실수를 계속하면 실력인 거고, 가끔 하는 실수는 경기장 안에서 집중력이 떨어진 거예요. 힘들고 호흡이 머리 끝까지 차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경기를 관람하면서 가끔 실수하는 선수들을 보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만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실수한 적이 많으니까요.
고향이 통영이고 나폴리도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 있잖아요. 통영과 나폴리,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끼셨습니까?
어딜 가든 바다가 있으니까요. 왜 통영이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지 알게 됐어요.
한국 센터백으로는 최초로 빅리그 강팀의 주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비결은 뭐라고 보십니까?
그냥 계속했던 것입니다. 안주하지 않고 포기도 안 하고 그냥 꾸준히 하려 했어요. 경기를 게을리하거나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시즌 중에는 내가 해왔던 것, 운동 전에 했던 것들을 잘 지키려고 했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떳떳합니다.
자기 안에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습니까?
매년 있었죠. ‘다른 팀으로 옮기자’가 아니라 ‘일단 더 잘하자’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했어요. 제 옆 아미르 라흐마니 선수, 저희 팀 주장 조반니 디 로렌초 선수, 그런 선수들에게 배워 나갔습니다. 라흐마니는 다 잘해요. 위치 선정 등을 많이 배웠어요. 디 로렌초는 저희 팀에서 가장 많이 뛰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선수가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저도 흐트러질 때가 있었는데 디 로렌초 선수 보면서 힘들다고 한 게 부끄럽더라고요. 그 선수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하고, 운동장 안에서 모든 걸 보여주고, 왜 주장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동감합니다. 일을 많이 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고, 계속 친절하고, 그런 점이 높은 ‘클래스’ 같아요. 저도 제 분야에서 일을 하죠. 저도 그 안에서 열심히 하고, 일 많이 하더라도 핑계 대지 않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많이 뛰는 건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그걸 극복해야 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자기 몫은 하는 선수. 김민재 하면 ‘쟤는 자기 몫은 했었지’라는 선수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