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 밸리에서 온 초대장
“나파 밸리로 갈 겁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미국 와인 브랜드 홍보 담당자가 아닌 아우디 코리아 홍보 담당자였다. 그는 하루 동안 아우디의 신형 RS를 탈 거라고 했다. 의문이 앞섰다. 왜 나파 밸리일까? 기왕이면 본사와 가까운 독일이 좋지 않나? 게다가 RS인데? 아우토반에서 달리는 게 홍보 차원에서도 좋지 않을까? 보통 해외 시승 행사는 신차나 완전 세대 변경 모델이 나올 때 열린다. 이번에 탈 차는 RS 6 아반트 퍼포먼스와 RS 7 스포트백 퍼포먼스였다. 두 차는 앞서 말한 두 경우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엔진도 차체도 기존 출시된 것 그대로다. 당장 눈에 띄는 유의미한 차이는 두 가지. 최대출력이 30마력 높아졌고 제로백이 0.2초 빨라졌다는 것.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태평양으로 향했고 10시간 30분 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국은 미국이구나. 공항에는 각양각색의 여권을 손에 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저 멀리 입국심사관이 보였다. 미국 입국 심사장에서 시원찮게 대답했다 몇 시간을 대기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리고 내 차례.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되어 보이는 흑인 남자가 어디로 갔다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물었다. “나파 밸리. 투모로.”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리얼리?” 거기까지 갔는데 왜 하루만 있냐, 더 놀다 가지 하는 눈치였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한 남자가 아우디 엠블럼이 새겨진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아파트 1.5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밴에 피곤한 한국인들을 싣고 출발했다. 우리는 시내를 통과해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 브리지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금문교와 알카트라즈가 보였다. 다리 건너편에 도착하기 전 잠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은 온통 키 작은 초록색 나무뿐이었다. 와인의 고장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다르다
숙소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독일인과 독일 차였다. 아우디 로고가 적힌 셔츠를 입은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웰컴. 하우 워즈 유어 플라이트?” 인사를 나누던 차에 어깨너머로 엔진 시동음이 들렸다. RS 7이구나. 차는 우리가 올라온 길을 반대로 따라 내려갔다. 뒷모습을 보고서야 그 차가 RS 7이 아닌 RS 6임을 알았다. RS 6와 RS 7은 이란성 쌍둥이다. 같은 엔진이 들어가고 앞모습도 별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은 뒤에 있다. 현행 RS 6는 아반트로만 출시된다. 아반트는 아우디가 자사 왜건 모델에 붙이는 이름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다. 고성능 자동차를 굳이 왜건으로 만든다고? 왜건은 트렁크 공간을 부풀린 세단이다. 세단보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고, SUV보다는 차체가 낮아 승차감이 안정적이다. 한국은 ‘왜건의 무덤’으로 통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인은 예나 지금이나 왜건을 선호한다.
아우디에 따르면 RS 6 아반트 4세대 출시를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건 미국인이다. 이번 시승 행사를 본사가 있는 독일 잉골슈타트가 아닌 미국 나파 밸리에서 연 이유다. 실제로 나파 밸리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왜건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많은 건 트럭이었지만 왜건도 눈에 띄게 많았다. 한국에서 트럭과 왜건은 ‘짐차’로 통하는 분위기다. ‘왜건은 못생긴 차’라는 편견도 있다. 그 탓에 서울 테헤란로에서 왜건은 페라리나 롤스로이스보다 보기 힘들다. 나는 RS 6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우디 코리아 담당자가 말했다. “내일 시승 때 RS 6 먼저 타세요. 사실 RS는 6가 근본입니다.” 시승까지는 18시간이 남아 있었다.
빠르고 점잖게 달린다
다음 날 첫 일정은 아우디 스포트 기술자들의 브리핑으로 시작했다. 올해는 아우디 스포트 창립 40주년이다. 신형 RS 6와 RS 7은 이를 기념해 출시한 차다. 그들은 영어로 자신들의 RS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탁월하고 빠른 차인지 설명했다. 설명은 짧고 간결했다. 자, 코스를 짜뒀으니 이제 나가서 타보고 느껴라. 문 쪽에 있던 나는 남들보다 주차장에 일찍 도착했다. 막상 RS 6와 RS 7을 나란히 놓고 보니 고민이 앞섰다. 그새 유럽 기자들은 RS 6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나는 RS 7 운전석에 앉아 내비게이션을 켰다. 아우디가 준비한 코스는 A, B, C 총 3가지. 그중 가장 멀리까지 다녀오는 A 코스를 눌렀다. 화살표는 서쪽을 향했다.
내가 탄 차의 이름은 RS 7 스포트백 퍼포먼스다. 기존 출시된 2세대 RS 7에 ‘퍼포먼스’가 추가됐다. 이름 그대로 더 높은 퍼포먼스를 낸다. 기존 V8 4.0리터 트윈터보 엔진에 더 큰 터보차저를 달았고 부스트 압력을 높였다. 그 결과 같은 폭스바겐 그룹의 V8 람보르기니 우루스보다 제로백이 0.2초 빠른 3.4초를 기록한다. 수치상 성능은 RS 6 아반트 퍼포먼스와 동일하다.
A 코스는 나파 밸리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 서쪽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찍고 돌아온다. 도로 대부분 왕복 2차선이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늘 속도 제한 마크가 떠올랐다. 3.4초 제로백을 테스트해볼 순 없었다. 대신 코너가 많아 와인딩하기에 좋았다. RS 7은 코너에서 ‘이게 되나?’ 할 때 ‘더 해봐’ 하는 차였다. 아우디가 자랑하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를 얹었다. 기본 엔진 출력은 40:60의 비율로 뒷바퀴에 조금 더 실리지만, 차가 미끄러지면 전륜과 후륜에 각각 최대 70%, 85% 출력을 몰아 견인력을 높인다. 한 시간 넘게 S자를 그리며 달리니 절벽이 내려다보이는 해변 도로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주행 모드를 ‘RS’에서 ‘컴포트’로 바꿨다. RS 7은 600마력이 넘는 스포츠카치고 상당히 점잖았다. 차에는 RS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 적용된다. 요철을 밟을 때 올라오는 충격을 상당 수준 걸러낸다. 곳곳에 깔려 있는 자갈과 방지턱을 지날 때도 편안함은 이어졌다. 돌아갈 때는 기어를 5단까지 올리고 100km/h 언저리로 느긋하게 달렸다. 옆에 탄 자동차 기자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사막에서 모래밭 달리는 것 같네요.” 그는 모로코의 사막에서 운전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쥬라기 월드의 자동차
출발지로 돌아오자 독일인들이 후기를 물었다. “엔조이?” 그들 사이에는 아우디 스포트 사장 세바스찬 그램도 있었다. RS에 만족한 기자들은 그에게 되려 전기차 관련 질문을 던졌다. 아우디가 2026년부터 내연기관 엔진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건 계속 만들어야 해’ 하는 원망도 섞여 있었다. 세바스찬 그램은 단호했다. “아우디 스포트도 동일한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RS 모델도 마찬가지고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전기차도 매우 감성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RS e-트론 GT를 운전해보신 분이 있습니까? 타보니 어떠셨나요, 별로였나요?” 나는 RS e-트론 GT를 몰아본 적이 있고 그때도 지금처럼 좋았다. “RS e-트론 GT를 운전해보신 분들은 스스로 답을 찾으셨을 겁니다. 우리는 미래의 전기자동차도 똑같이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RS 전기차에 사운드 엔지니어링 기술을 투입했어요. 내연기관 같은 연소음은 없지만 고객이 원하는 감성을 확실히 제공할 겁니다. 그만의 특별한 감성이 있죠.”
전기차와 AI 시대에도 누군가는 무동력 요트로 속도를 겨루고 걸어서 남극을 횡단한다. 인간의 욕망은 알 수 없다. RS 6와 RS 7은 사라질 것과 생겨날 것 사이에 탄생한 차다. 이 차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 테지만 동시에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차이기도 하다. 세바스찬 그램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래의 RS 고객이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사용하는 고객이 주를 이루지만, 미래에는 디지털 시대에서 자라난 고객을 맞이해야 하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두고 볼 일이다. 지금도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60년쯤 RS도 쥬라기 월드의 티렉스처럼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티렉스는 영화 속 이야기지만.
아우디 스포트 사장의 말
탄소중립 시대에 아우디 RS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아우디는 완전한 전동화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포트폴리오에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전동화 자동차만 보유할 것입니다. 고성능 포트폴리오의 일관된 전동화 전략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죠. 따라서 RS의 완전한 전동화가 목표입니다.
2027년부터는 순수 전기차나 PHEV만 생산한다고 했는데 그때도 V8 엔진을 사용할 계획입니까?
아우디의 전반적인 전략은 2026년 이후 새로운 내연기관 엔진을 개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우디 스포트도 동일한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RS 모델에도 이 전략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개발할 마지막, 그리고 최고의 내연기관 엔진은 2026년이나 2027년 이전에 나올 것입니다. 2027년에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전기차 시대에 고성능 전기차가 아닌 고성능 내연기관차를 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타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여전히 RS의 스페셜 모델과 한정판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전 세계에 이 아름다운 자동차를 원하는 고객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아우디 스포트의 전동화 전략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성능 내연기관차와 고성능 전기차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운드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전기차에는 그에 맞게 변형된 소리가 얹어질 겁니다. 내연기관 엔진 사운드의 흉내 내기가 아닌 사운드 엔지니어가 차량에 맞게 개발한 사운드 말이죠.
그렇다면 성능 면에서 두 차는 동일할까요?
물론입니다. 독일과 유럽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는 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독일에는 부분적으로 속도를 아주 높일 수 있는 지역이 있어요. 그 점에서 저는 행운아죠. 하지만 경주용 트랙이 아니라면 항상 250km/h 이상으로 운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속도를 내는 것에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트랙에서도 모든 종류의 차를 테스트하기 때문에 내연차와 동일한 성능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무겁습니다. 전기차에 무게로 인한 주행 성능의 약점은 없습니까?
문제없습니다. 10년 전 모터 기술의 발전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완벽한 냉각 시스템을 구축하고, 새로운 소재와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덕분에 배터리 패키지를 경량화하고 더욱 좋은 컨디션으로 충전할 수 있게 됐죠. 내연기관 엔진의 역사를 보면, 엔진 성능을 획기적으로 빠른 시간에 향상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주 조금씩 개선되어왔어요. 전기차 기술은 기록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진 일이죠.
아우디 스포트 창립 40주년입니다. 앞으로의 4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성공적인 변환은 디지털 기술과의 결합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자동차의 연결성이 완벽해지도록 신경 써야 하죠. 향후 20년간 RS 고객이 될 젊은 세대를 위한 상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개발할 마지막, 그리고 최고의 내연기관 엔진은
2026년이나 2027년 이전에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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