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확률
한화 이글스 팬의 마음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팀이 승리하는 상상을 하며 야구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한화 팬에게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정규 시즌 한화 이글스의 승률은 0.324였다. 확률상 열 번 경기를 치르면 세 번 이긴다는 뜻이다.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확률 이야기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는 열 경기를 내리 진 적이 있다. 2020년 한화 이글스의 승률은 0.326이었고 연속 열여덟 경기를 패한 적도 있다. 지난해 은퇴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는 마지막 시즌 타율 0.331을 기록했다.
야구 경기가 끝나면 팬은 둘로 나뉜다. 이긴 팀 팬, 진 팀 팬. 중간은 없다. 지난 십수 년간 한화 이글스 팬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진 팀 팬으로 보내야 했다.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합니까? 한화 이글스에게 무엇을 기대합니까? 숫자로는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듣기 위해 야구장으로 향했다.
5월 2일 화요일은 날씨가 화창했다. 이날은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9번 출구로 나오면 유니크스포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어웨이팀 유니폼을 판다. 유니크스포츠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주는 팬은 기아 타이거즈다. 그다음으로 롯데 팬이 많고,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 팬이 뒤를 잇는다. 유니크스포츠 매니저는 이날 한화 유니폼을 구입한 팬들 중 90%가 문동주 선수의 이름을 새겼다고 말했다. 그다음은 노시환, 정우람이 많았다. 매장 밖에는 긴 행렬이 늘어섰다. 그중 어딘가 닮은 듯한 두 남자가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매장 밖으로 나올 때 주황색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OB가 서울로 가면서 빙그레를 응원했습니다. 고향은 대전이고 지금은 서울에 살아요.” 49세 아빠 이승병 씨는 아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네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그중 바꿀 수 없는 것이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 색깔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이하준 군은 반에서 유일한 한화 팬이다. 같은 반 친구 대부분은 LG 트윈스를 응원한다. 나머지는 두산 베어스 팬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알지 못하는 한화 이글스를 기억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1999년이죠.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 구대성, 데이비스.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오겠죠.” 그들의 유니폼 뒤편에는 ‘김태균’ ‘문동주’가 적혀 있었다.
노마킹 유니폼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는 대전이다. 타 지역 야구팬이 그렇듯 충청도 야구팬도 대부분 연고지를 따라 한화를 응원한다. 예외도 있다. 충청도 출신 두산 팬이다. 두산 베어스의 전신 OB 베어스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대전을 연고지로 삼았고 3년 뒤 서울로 옮겼다. 그 공석을 메운 것이 한화 이글스의 전신 빙그레 이글스다. “이해가 안 되죠.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삶이 있는데, 그걸 따라가는 건 말이 안 되죠.” 종합운동장역 9번 출구 앞 간이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먹던 24세 박치후 씨가 말했다. 맞은편에는 고향 충주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고 아버지가 OB 베어스 팬이었다고 했다.
박치후 씨가 차분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꼴찌 팀이어도 내 팀이잖아요. 져도 털어내면 돼요. 팀을 바꾸는 일은 없어요.” 박치후 씨도 오늘 유니폼을 구입했다. 마킹은 없다. “아직 이름 박을 만한 선수가 없어요. 김서현, 문동주 선수도 첫인상이 강력했지만 류현진의 임팩트는 따라가기 힘들죠. 언젠가 류현진 선수가 한화로 복귀하면 그때 마킹하려고요. 혹시 모르죠. 올해 가을 야구 하면 그전에 새길 수도 있고요.”
이날 우리가 만난 한화 팬 중 절반 이상은 유니폼에 이름이 없었다. 10년 넘게 유니폼에 이름을 새기지 않은 팬도 있었다. “누구 한 명만 응원하는 느낌이라서 좀 그래요.” 천안 출신의 42세 안준도 씨는 한화 이글스와 학연 지연으로 엮여 있다. 그가 천안 남산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졸업식에는 한화 이글스의 네 번째 영구결번 선수 김태균이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안준도 씨는 이날 싱가포르에서 온 사업 파트너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싱가포르에는 프로야구리그가 없다. 함께 자리한 동갑내기 고향 친구 정기영 씨는 1999년 우승보다 더욱 마음속 깊이 간직한 시절이 있다. “김성근 감독님 시절에 혹사 논란이 있었어요. 그때 권혁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금 마운드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분이 김성근 감독이다. 그것에 감사할 뿐이지 불평하지 않는다.’ 끈기 있는 야구를 하던 시절이죠.” 그가 바라는 한화 이글스는 1위 팀이 아니라 쉽게 지지 않는 팀이다.
서래마을 서울프랑스학교에 재학 중인 16세 성시현 학생도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었다. “정은원 선수를 제일 좋아해요. 그래도 마킹은 안 했어요. 선수도 선수지만 한화를 더 좋아해요.” 대전 출신의 아버지 영향을 받은 그는 올해로 7년 차 한화 팬이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특별한 순간들이 있어요. 저한테는 작년 NC전이 가장 강렬했죠.” 어린 성시현 학생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경기는 작년 7월 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상대는 리그 9위의 NC 다이노스. 10위의 한화 이글스는 6회 초까지 10-1로 뒤졌지만, 김태연과 마이크 터크먼의 적시타로 추격을 시작한 끝에 12-11로 승리를 거뒀다. KBO 역대 최다 점수 차 역전승 2위다. 야구를 통해 이성과 인내심을 배운 16세 소년의 바람은 무엇일까? “꼴찌만 안 하면 좋겠습니다. 아, 타격코치도 바꾸면 좋겠어요.”
한화 이글스 역대 최고 최다승 투수 및 타율 타자
<투수>
1992년 송진우 19승 8패(빙그레)
1996년 구대성 18승 3패
2006년 류현진 18승 6패
<타자>
1989년 고원부 타율 0.327(빙그레)
1991년 이정훈 타율 0.348(빙그레)
1992년 이정훈 타율 0.360(빙그레)
2012년 김태균 타율 0.363
비충청 출신
우리가 만난 한화 팬의 십중팔구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거나 가족 혹은 연인을 통해 충청도와 간접적으로 연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그럼 십중일이는 어쩌다 한화 팬이 되었을까?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후배랑 치맥 먹으면서 한화 첫 우승을 봤어요. 그게 시작입니다.”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 홍창화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현재 안양 KGC인삼공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대전 하나 시티즌 응원단장도 맡고 있다. “한화 팬만의 특별함이라면 의리죠. 지금의 한화 팬들은 20년 넘는 암흑기에도 팀을 떠나지 않은 겁니다. 의리로는 10개 구단 최고라 자부합니다.” 치맥을 함께 먹던 ‘한화 골수 팬’ 후배는 훗날 수원으로 터전을 옮겼고 KT 위즈 팬이 되었다고 한다.
늘 밝은 모습의 홍창화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저도 팬이고 사람인지라 열불 날 때가 있죠. 한 번은 잠실에서 경기가 있었어요. 이미 패색이 짙었습니다. 도저히 분위기가 나아지질 않길래 ‘오늘 지면 야구공 머리 하고 오겠습니다!’ 했어요. 그날 졌거든요. 머리가 야구공이 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머리를 따라 하고 온 팬이 한 분 계셨어요. 대단한 열정이죠.”
홍창화는 한화 팬들 사이에서 ‘창화신’으로 통한다. “처음 응원단장 맡은 2006년부터 불리는 별명입니다. 당시 타 팀 응원단장들은 기존 우승 횟수에 1을 더해서 ‘V2’ ‘V3’ 식으로 마킹했어요. 저도 처음에는 ‘V2’를 썼어요. 특색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김인식 감독님이 사령탑이었는데 그때 슬로건이 ‘믿음의 야구’ 아니었습니까?” 그의 유니폼 뒤에는 숫자 대신 ‘信(믿을 신)’이 새겨져 있다. 홍창화는 한화 이글스의 두 번째 우승을 확신했다. “제가 은퇴하기 전에 두 번 정도는 우승할 겁니다. 아래에 오랫동안 있었으니까 위에도 오래 있어봐야죠. 야구에 100% 지기만 하는 팀은 없습니다.”
39세 이종원 씨가 한화 팬이 된 것은 배영수 때문이다. 그는 인천 출신으로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 팬이었어요. 구단 해체 이후로 응원하는 팀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배영수 선수 경기는 봤어요. 상대팀 선수였지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 선수가 보여준 플레이는 감동적이었어요. 배영수가 2013년 한화 이글스로 오면서부터 팬이 됐죠.” 이종원 씨는 건실한 직장인답게 불만도 이성적으로 토로했다. “사실 프런트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반 회사였으면 이건 태업이죠. 그들도 평가받는 직장인이잖아요. 이렇게 저조한 성적이 오랫동안 이어지는데 어떤 조치도 없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그에게 올해의 희망을 물었다. “5위 안에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야구장 밖에서 만난 25세 권나현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기아 팬 어머니와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남동생을 데리고 경기장에 왔다. 한화 이글스 팬이 된 건 19세 때의 일이다. “야구 좋아하는 친구들이 ‘너도 야구 좋아해라’ 했어요. 대신 팀이 겹치면 안 된대요. 삼성, NC, 한화가 남았는데 주황색이 눈에 띄었어요.”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6년 차 한화 팬에게 후회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있죠. 그런데 이것도 몇 년 하다 보니까 인내심이 길러지더라고요.” 권나현 씨의 말을 듣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어록이 떠올랐다.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 본능을 배워라.’
홍창화가 선정한 역대 최고 한화 응원가 7
• 사랑한다 최강 한화
• 나는 행복합니다
• 라인업송
• 사랑한다 이글스
• 정근우 응원가(원곡: 영화 <인디아나 존스> OST ‘Raiders March’)
• 최진행 응원가(원곡: 브루노 마스의 ‘Marry You’)
• 이진영 응원가(원곡: 트랜스픽션의 ‘불의 전차’)
100% 지기만 하는 야구팀은 없다
한국 프로야구팀은 매주 6번의 경기를 치른다. 화-수-목, 금-토-일에 걸쳐 각각 다른 두 상대를 만난다. 이 중 경기 절반은 홈구장에서 열린다. 나는 두 번째 취재를 진행한 5월 4일에는 외야석으로 향했다. 전날 한화는 두산에 승리하며 6연패를 끊어냈다. 홈런을 기대하는 한화 팬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외야석에 들어섰을 때는 5회 초 시작 직후였다. 외야석에는 사람이 적었다. 한화 이글스 팬을 찾아 계단을 오르내리던 중 반대편 내야석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전광판을 보니 어느새 만루였다. 노수광, 정은원, 노시환이 진루에 성공했고 채은성의 차례가 되었다. 무사 만루 상황. 볼을 하나 걸러낸 채은성은 두산 투수 김유성이 던진 공을 받아 쳤다. 홈런이었다. 우리는 채은성이 쏘아 올린 공이 착륙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못 넘어올 줄 알았어요. 잡히겠구나 했는데 기어이 넘기더라고요. 제 의자 앞에 똑 떨어졌어요.” 채은성의 만루홈런 볼을 잡은 이는 홍성호, 홍동기 부자다. 아들 홍동기 군은 우리에게 KBO 마크가 새겨진 공인구를 보여주었다. 부천에서 태어난 아들 홍동기 군은 아버지를 따라 한화 이글스 팬이 되었다. 50세 홍성호 씨의 고향은 충북 괴산이다. 한화 이글스의 세 번째 영구결번 선수 송진우가 괴산 출신이다. “오늘은 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왔어요. 어제 이겼지만 한화가 연승하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홍동기 군은 휘문고에 재학 중이다. 휘문고는 우리나라 야구 명문고 중 하나로 손꼽힌다. 휘문고 학생 대부분은 두산과 LG 팬이다. 홍동기 군 역시 반에서 유일한 한화 팬이다.
최고의 영업직원은 아버지
한화 이글스 팬클럽에서 가장 성실하고 영향력 있는 영업직원은 ‘아빠들’이다. 서대문구에서 온 40세 박찬수 씨는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외야에 앉아 홈런을 기다렸다. 그는 왼손에 검은색 아톰즈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아내 진소희 씨는 전북 군산이 고향이다. “야구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야구장은 연애할 때 처음 가봤어요. 지금은 가족 전부가 한화 팬입니다.” 남편 박찬수 씨의 고향은 충남 조치원이다. 12세 딸 박영은 양과 9세 아들 박상윤 군은 채은성과 문동주를 가장 좋아한다. 두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을 잘 치고 멋있게 던져서. 두 어린이는 아빠가 ‘한화 팬이 되어야 한다’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전 출신의 24세 유진환 씨는 4세 때부터 한화 이글스를 응원했다. 그는 빨간색 한화 이글스 모자와 유니폼을 입었다. “이 모자요? 아버지께 물려받았어요. 2006년 딱 1년만 나온 거예요. 징크스가 있어요. 제가 직관 가면 무조건 한화가 이깁니다. 오늘도 이길걸요?” 그에게 2018년은 한화 팬이 된 이후 가장 중요한 해였다. 그해 한화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당시 유진환 씨는 19세였다. “저 재수했어요.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근데 한화 팬 아니었어도 재수는 했을 거예요.” 그는 지금 경기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을 이끌고 잠실로 왔다. 웃음이 많은 청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번 시즌 예상 순위를 물었다. “8위요.”
충북 제천 출신 27세 백승호 씨와 두 친구는 삼색기 같았다. 세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야구를 볼 때만 모인다. 남색 유니폼을 입은 김민석 씨의 유니폼은 2018년 시즌 한정판 밀리터리 유니폼이다. “한창 잘할 때 유니폼이에요. 저는 유니폼을 사면 당시 가장 잘한 선수의 이름을 새깁니다. 강경학(뒤를 가리키며) 트레이드됐어요.” 그는 한화 이글스의 밝은 미래를 점쳤다. “저희 팀에는 어린데 잘하는 선수가 많잖아요. 1~2년 뒤에는 훨씬 강한 팀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코치진 보완이 필요해요.”
마음이 향하는 곳과 발 딛고 선 곳
외야석 317 구역에 홀로 앉아 있던 21세 김진호 씨는 비충청 출신 한화 팬이다. 그는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났다. 한화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TV를 돌려 보는데 야구가 나오더라고요.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어딘가 끌렸어요.” 세상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만남과 이별이 있다. 그는 차분함이 고루 밴 말투로 이야기를 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야구장에 가야겠다 싶었죠. 학교 마치고 바로 온 거예요.”
김진호 씨는 기다림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저희 팀에 슬로 스타터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간만 쌓이면 지금 전력으로 5등까지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호 씨의 유니폼에도 이름이 없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언젠가 선수들 사인으로 채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유니폼에는 박종훈 사인이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남겼다. “주변에 한화 팬이 없어요. 야구 좋아하는 친구들은 있는데 같이 야구장에 가자고는 못했거든요.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하고. 다음에도 직관 오게 되면 그때는 친한 친구들이랑 오고 싶네요.” 유진환 씨와 김진호 씨를 만난 5월 4일 한화는 10-3 승리를 거뒀다. 한화는 다음 경기에서 만난 KT 위즈를 꺾으며 3연승을 기록했고, 그 후 삼성 라이온즈에 패했지만 또다시 3연승을 올렸다.
이 원고를 쓰는 동안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경질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수베로 감독의 경질 이유에 대해 “수베로 감독이 계속 실험적인 야구를 해서 내부적으로 교체 논의를 했다. 지금은 팀이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후임자는 한화 이글스 2군을 이끌고 있는 최원호 감독이다. 그는 감독 취임 직후 선수단 미팅에서 “자신이 부정적인 핑곗거리를 찾는 게 아닌지 돌아보고, 그렇다면 바꿔보라” 주문했다고 한다. 수베로 감독이 경질된 다음 날. 9회 말 등판한 한화의 신인 투수 김서현은 손으로 마운드 위에 ‘3’과 ‘70’을 썼다. ‘3’은 수베로 감독, ‘70’은 함께 한화를 떠난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의 등번호다. 한화 이글스 프런트의 결정이 옳았는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현재 10개 구단 중 한화 이글스의 순위는 9위다. 33경기를 치렀고 앞으로 111 경기가 남았다. 마음이 향하는 곳과 발 디딘 곳 사이에 놓인 아득한 거리. 그 중간 어딘가에 한화 이글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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