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개막을 앞두고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유니폼이 주목받았다. 기존과 달라진 점은 두 가지. 색상과 제조사다. 국가대표 브랜드 최초로 프로스펙스가 제작한 야구 대표팀 유니폼을 조명하며, WBC에서 활약할 우리나라 선수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보고 싶었다. 초고는 WBC 개막을 하루 앞둔 3월 7일 완성됐다. 해당 원고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6년 3월 5일 일본 도쿄 돔. 당시 일본 나루히토 황태자 부부를 비롯해 4만 명 넘는 관객의 함성 속에 치러진 2006 WBC 본선 1라운드 한일전은 지금까지 ‘도쿄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다. ‘도쿄 대첩’은 단순한 한일전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이날 이승엽의 투런 홈런을 지켜본 모든 이들은 예감했다. 이 경기가 한국 야구의 새 황금기를 알리는 신호탄임을. 이듬해 한국 프로야구 1년 누적 관중 수는 11년 만에 4백만 명을 돌파했고, 2008년과 2009년 한국 야구 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과 제2회 WBC 준우승을 달성했다.’
3월 9일 한국과 호주의 1라운드 B조 경기가 열렸다. 7:8 한국 패. 경기가 끝나고 디렉터에게 원고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3월 10일. 도쿄 돔에서 모두가 기대하던 한일전. 경기 결과는 4:13 한국 패. 온라인상에서는 ‘참사’라는 단어까지 나돌았다. 양의지의 땅볼 아웃으로 경기가 끝나자마자 디렉터에게 다시 카카오톡을 보냈다. ‘저희 유니폼 기사 나갈 수 있을까요?’ 실시간으로 답이 왔다. ‘체코전까지만 지켜봅시다.’ 이 원고를 쓰는 3월 15일, 한국은 체코와 중국에 승리를 거뒀지만 1라운드 탈락을 확정 짓고 귀국했다.
이번 WBC 성적과 별개로 프로스펙스의 유니폼 제작기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 프로스펙스 이전까지 한국 야구 대표팀 유니폼은 데상트에서 담당해왔다. 데상트는 일본 브랜드다. 보통 유니폼 제작사는 공개 입찰로 정해지는데, 이번에는 KBO 측에서 여러 조건을 따져 한국의 프로스펙스를 선정했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건 데상트가 이번 한국 야구 유니폼 제작을 꺼렸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프로스펙스 스포츠마케팅팀 팀장이 말을 보탰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죠. 첫째는 데상트도 국내의 반일 감정을 인식한 것이고, 둘째는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야구가 제외되면서 새 유니폼의 화제성이 떨어진 거예요. 세 번째는 야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국민에게 가장 익숙한 야구 대표팀 유니폼은 파란색 바탕에 필기체로 ‘KOREA’가 쓰인 나이키 유니폼일 것이다. 그 이유는 해당 유니폼을 입던 시기 한국 대표팀이 국제 무대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이번 유니폼 디자인 과정에서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 바로 ‘초심’이었습니다.” 초심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착용한 유니폼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김재박 선수가 ‘개구리 번트’로 범국민적인 열광을 모을 때 입었던 그 유니폼이요. 한국 야구의 새로운 원년이 되길 기원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프로스펙스가 한국 야구에 품은 열정은 그 누구보다 오래됐다. 프로스펙스는 1981년 설립된 브랜드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국 프로야구가 정식 출범했고, 프로스펙스는 MBC 청룡,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제작했다. 선동열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의 ‘검빨’ 유니폼도 프로스펙스가 만들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또 다른 원년 멤버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로스펙스는 야구 외 다양한 종목의 국가대표 유니폼도 만든다. 레슬링, 럭비, 사이클 국가대표 유니폼이 대표적이다. 매출과 직결되지 않는 비인기 종목에 프로스펙스가 투자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브랜드로서 수행해야 할 사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1라운드 탈락 소식을 나누며 프로스펙스 스포츠마케팅팀 팀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저희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스포츠에는 성적보다 진정성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잖아요.” 마운드 위에서든 밖에서든 국가대표라면 이 정도 마음가짐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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