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블라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이후 보테가 베네타의 변화는 유수와 같다. 마티유 블라지는 브랜드의 로고나 컬러를 바꿔놓거나, 디지털 플랫폼의 소통 방식을 재정비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대신 데뷔 컬렉션부터 2023 겨울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에 대한 헌사 3부작을 이어왔다. 그의 컬렉션은 회화적인 요소와 조각의 선과 형태를 조화롭게 드러내는데, 이건 런웨이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로마시대의 청동 조각상과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1913년 작품이 공존하는 공간에 의자들이 정연하게 놓인 쇼장은 삶과 이탈리아에서 예술을 떼놓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쇼가 시작하면서 마티유 블라지가 구현해낸 캐릭터들의 확장된 서사가 펼쳐졌다. 시스루 드레스와 가죽으로 된 줄무늬 파자마 룩, 푸근한 가운 코트를 입은 모델들은 하나같이 얇은 가죽 끈을 양말처럼 짜서 만든 부츠를 신었다
또한 가죽 트렌치코트나 롱 니트 슈미즈, 셔츠처럼 다듬은 재킷에도 가죽 타이를 매치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다분히 일상적인 코드를 비틀어 시작부터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으로 이끈 것. 면밀한 소재의 조합, 탁월한 색채, 초기 컬렉션부터 나타난 ‘보치오니 작품’의 실루엣을 재해석한 강인하고 우아한 테일러링은 이번 시즌에 더 뚜렷해졌다. 컬렉션 후반부에는 고대 신화와 미래의 사물 형태에서 이끌어낸 룩들이 이어졌다. 인어의 피부 같은 비늘 디테일과 흐늘거리는 깃털 장식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톱과 스커트 셋업, 드레스와 슈즈는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섬세한 실크 자수는 마치 보티첼리 작품의 여인처럼 여리고 화사했다. 마티유 블라지의 세계를 구체화하는 하우스 장인정신의 숭고함 또한 상기시켰다. 문학에서 문장의 일부를 이어 짓는 연상 기법을 ‘우아한 시체(Exquisite Corpse)’라고 한다. 여기에 착안해 불투명한 무라노 글라스 핸들을 탑재한 사르딘 핸드백, 레더 굿즈의 다채로운 재구성은 미학적 위트까지 선사했다. 생각할 틈 없이 황홀하게 펼쳐진 마티유 블라지의 견고한 상상력. 첫 번째 퍼레이드 여정을 마치며 긴 박수갈채 속에서 후련하게 뛰어나오는 마티유 블라지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다시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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