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바다
새벽 3시쯤 김귀봉 선장(62)은 일어난다. 문어를 잡으러 나가려면 새벽에 배를 타야 한다. 그가 사는 곳은 묵호항과 차로 10분쯤 떨어져 있다. 그가 출근할 때는 거리에 차가 없다. 묵호항 여객터미널 문도 닫혀 있다. 김귀봉은 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두운 포구를 걷는다. 방파제 안 호수 같은 바다에 그의 배 ‘길영호’가 있다. 그의 사무실이자 그의 창고이자 그의 생계 수단이자 그의 꿈이다. 배에 시동을 걸면 디젤 엔진이 진동한다. 선박용 디젤 엔진 소리는 육지의 디젤 엔진 소리보다는 거칠지만 새벽 바다를 깨울 만큼 시끄럽지는 않다. 그는 익숙하게 선실의 각종 계측기를 켠다. 포구 쇠기둥에 묶여 있던 팔뚝만 한 밧줄을 푼다. 배가 바다를 미끄러진다. 하늘은 아직 어두워서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동해 파도는 겨울에 높고 여름에 잔잔하다. 그래서 사실 동해 서핑은 겨울에 하는 게 좋다. 우리가 김귀봉을 따라간 날은 파고가 1m나 됐다. 그 계절에는 그 정도가 평균이다. 김귀봉은 키를 잡고 방파제를 빠져나왔다. 호수 같던 바다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GPS 기술이 발달한 이상 이 속담은 옛날이야기다. 김귀봉의 소형 어선에도 각종 전자장비가 빼곡하다. 그가 속한 묵호연승어업조합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무전기가 있다. 수심 등고선과 현 위치를 보여주는 해도 GPS도 있다. 파도를 헤치는 소리와 배 뒤에서 진동하는 디젤 엔진 소리 사이로 오늘의 출동 상황을 공유하는 무전 인사가 울린다. 21세기의 어부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다.
전자적 연결과 실질적 연결은 다르다. 전자적 편의와 실질적 편의도 다르다.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어도 김귀봉을 포함한 문어 어부들은 혼자 나가 홀로 문어를 잡는다. 해도가 열 길 물 속을 보여줘도 크기 1m짜리 파도 위에서 접시처럼 출렁이는 배의 진동까지 막아주지는 않는다. 작은 어선도 크루즈 보트가 아니다. 김귀봉의 배에는 고정된 의자가 하나도 없다. 그는 키 옆에 설치된 파이프에 오른팔을 끼워 몸을 고정하고 왼팔로 키를 돌려가며 배를 몬다. 목적지는 확실하면서도 막연하다. 문어가 있을 법한 곳. 문어는 수심 50m에서 200m 사이에 산다. 그곳 어딘가 문어가 있을 만한 곳을 예상해 미끼를 던져야 한다.
미끼를 던지는 게 문어 어업의 특징이다. 문어 낚시만의 쾌감이자 편리이자 고충이며, 문어가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문어는 양식이 안 된다. 사람이 낚아야 한다. 한국에서 문어잡이 방법은 세 가지다. 그물 치기, 낚시, 직접 잠수. 맨 마지막은 조합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한다. 그물은 영덕 이남의 남쪽 바다에서 잡는다. 강원도가 낚시다. 김귀봉은 낚시하는 문어 어부를 ‘바다의 신사’라 칭했다.
바다의 신사
문어 낚시를 보면 바다의 신사라는 속설이 말이 된다. 일단 배 안에 생선 비린내가 없다. 부패 해산물의 냄새를 풍길 요소가 없다. 문어 낚시는 살아 있는 미끼를 안 쓴다. 문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데다 모든 문어는 살아 있는 채로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배 안에 남아 있는 그물도 없다. 실제 배 위에서 비린내를 느낄 수 없었다.
미끼 없이 문어를 어떻게 잡을까. 문어는 빛에 반응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제기처럼 하늘거리는 은색 셀로판을 매달아둔 게 문어 낚시찌다. 그 찌가 빨랫줄로 쓰는 오렌지색 줄에 매달려 있고, 반대쪽에는 줄을 감아두는 실패가 있다. 그게 문어 낚싯대다. 줄을 적당한 길이로 푼다. 풀린 줄을 바다로 던진다. 그게 문어 낚싯대 설치다. 문어 낚시는 문어 낚싯대를 바다 위에 수십 개 던져두고 몇 시간 뒤 회수하는 일이다.
“문어 낚싯대를 던졌는데 뭔가 물렸으면 바다 위에 가로로 떠 있던 낚싯대가 서요.” 김귀봉은 여기에도 손맛이 있다고 했다. “바다 밑에서 뭔가 당기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들어보면 둘 중 하나예요. 찌가 바위에 걸렸거나, 아니면 문어거나. 문어를 당겼을 때 손맛이 있어요. 재미있는 일이에요.” 김귀봉은 두 번째 만났을 때 문어 낚시의 매력을 이렇게 말해주었다.
바다의 신사가 되어 문어 낚시를 하는 재미를 누리려면 준비할 게 많다. 김귀봉도 준비했다. 그는 미리 항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배를 사고 어업 허가권를 샀다. 이걸 다 갖춰도 문어 어업은 허들이 높다. 김귀봉이 덤덤하게 말했을 뿐 바다는 위험하다. 어선끼리 충돌하는 사고도 있고 사람이 빠질 때도 있다. 1m씩 솟아오르는 파도 위에서 계속 배를 돌려가며 덫을 놓듯 문어 낚싯대를 던져야 한다. 그냥 던지는 게 아니라 해도를 보면서 어디에 문어가 있을지 예측해야 한다. 바람을 읽고 골프 스윙을 조절하는 골퍼처럼 날마다 조류의 흐름과 세기를 보며 낚싯대를 던져야 한다. 타고난 투수처럼 타고난 어부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어 낚시의 난이도는 이런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겠다. 인터넷에서 ‘낭만어부’로 유명해진 문어 어부가 있다. 석양을 바라보며 이형기의 ‘낙화’와 조지훈의 ‘사모’를 읊던 분이다. 그는 아침 해가 뜨는 바다에서 이 구절을 읊었다.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이 시를 읊은 분이 김귀봉이 속한 묵호연승어업조합 조합원이었다. 이 선장님은 2023년 현재 문어 낚시를 접고 일반 어선을 탄다. 신화의 뒷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김귀봉 옆에서 배를 타본 입장에서 문어 낚시는 꽤 고통스러웠다. 정도를 매긴다면 상당히와 아주 사이. 취재를 간 날은 날씨가 맑았고 파고가 최대 1.5m였다. 에디터와 사진가 모두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수였다. 우리는 채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배 위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김귀봉은 우리를 내려주기 위해 문어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채로 낚시 도구를 챙겨 육지로 돌아왔다.
왜 동해 문어가 맛있을까. 김귀봉의 말을 옮긴다. “ 남해 문어는 짠내가 난다고 해요. 그물을 며칠 쳐놓고 잡아서 그 안에 문어가 있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인 것 같아요(이건 김귀봉 측의 주장이니 혹시 남해 문어 관계자께서 이 기사를 보신다면 편히 연락해주시길 바란다).” 그 말과는 별개로 방금 잡은 문어의 맛은 각별했다. 묵호 어시장 안에는 그날 잡아온 동해 문어를 취급하는 가게가 둘 있다. 그 집들은 파텍필립 시계만 파는 보석상처럼 다른 생선은 없이 문어만 판다.
겨울 문어는 실제로 비싸다. 우리가 취재하기 위해 김귀봉을 두 번째 찾아간 1월 초순에는 수협 매매가가 kg당 4만원대가 넘었다. 이러면 적정 마진이 붙은 문어의 가격은 묵호 어시장에서 5만원을 넘어간다. 문어는 최소 600g 이상부터 어획할 수 있고 사실상 1kg은 넘어야 소문어 취급을 한다. 2kg짜리 문어는 삶았을 때 핸드볼 공보다 조금 커지는데, 가격이 동해 현지에서도 11만원쯤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급 수산물이다. 16kg이 넘으면 대문어로 분류되어 kg당 단가가 조금 낮아지지만 무게 자체가 크니 한 마리에 수십만원씩 한다. 영동 지방에서는 잔치나 상을 입었을 때 대문어를 잡아 손님맞이를 한다고 한다.
실제로 김귀봉과 묵호연승어업조합이 잡는 문어는 동해 특산 대문어다. 피문어, 물문어 등으로도 부른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는 ‘외투’ 부분의 무늬가 검붉은 종이 피문어다. 맛 역시 고급스럽다. 입에 물었을 때 잡다한 맛 없이 그저 조금 짭짤하다. 턱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기분 좋을 정도로만 질기다. 이탈리아의 웬만한 문어보다 맛있었다.
다시 만난 바다의 신사
겨울은 문어철이 아니다. 우리의 두 번 만남 중에서 김귀봉은 문어를 한 번 잡았다. 우리를 바다에 내려준 날은 문어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출항했을 때도. 우리를 두 번째 만난 날 그는 “친구의 낚싯대를 주워 오느라 조금 늦겠다”고 전화로 이야기했다(연안에서는 바다 위에서도 휴대전화가 된다).
우리는 포구에 서서 김귀봉을 기다렸다.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는 오전 11시 , 햇빛이 호수 같은 방파제 앞에 비치며 번개 같은 반사광을 내고 있을 때 김귀봉의 배 ‘길영호’가 물살을 가르며 들어왔다. 포구의 배들은 모두 지정석이 있다. 김귀봉은 후면주차하듯 뱃머리를 바다 쪽으로 돌리고 배를 후진해 댔다. 나는 물었다.
“오늘 잡으셨어요?”
“네, 잡았어요. 한 마리요.”
김귀봉은 큰 실망도 큰 기쁨도 없는 듯 평온하게 배 앞에서 양파를 담는 색깔 빨간 그물망을 꺼냈다. 그 안에 문어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요즘은 별로 안 잡혀요.” 김귀봉은 이 말을 남긴 채 묵호연승어업조합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조합 어부들의 문어는 수협이 전매한다. 사무실 앞에서 무게를 잰다. 무게에 이날 문어의 kg당 단가를 곱한 게 어부들이 받는 문어의 가격이다. 그날의 문어 시세는 매일 새벽 열리는 경매장에서 물건이 확보되지 않은 채 정해진다. 김귀봉이 이날 잡은 문어는 한 마리, 무게는 1.63kg. 그게 김귀봉의 하루 수입이다. 이날 잡힌 가장 큰 문어는 16kg이었다.
김귀봉은 문어 무게를 듣고 현장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리와 이동했다. 시간은 정오 즈음, 그의 오늘 일은 이걸로 끝이다.
그와 함께 묵호항 어판장 사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건어물 가게 뒷골목에 있는 행복식당. 그는 이 동네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장치조림 대자를 하나 시켰다. 술은 곁들이지 않았다. 그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모로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속 어부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사진가와 나는 김귀봉과 마주 앉아 그가 바다의 신사가 되기 전의 삶을 들었다.
우리도 다들 멀리서 보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시대의 초상 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과 시대의 화음
김귀봉 역시 낭만 어부였다. 그는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축구선수를 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자 현 인도네시아 축구팀 감독 신태용이 그의 중학교 후배다. 김귀봉은 수산고를 거쳐 원양 상선을 타는 선원 생활을 잠시 하다 육지에 정착했다. 수도권에 올라와 몇 가지 직업을 거쳤다. 자리 잡고 자식이 장성할 때쯤 그는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졌다. 자신의 배를 갖는 것. 김귀봉은 자신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 준비했다. 동네를 알아봤다. 자격증을 땄다. 배를 사고 면허를 구했다. 5년 전 일이다. 그는 귀어 5년 차 어부다.
그의 삶을 들으며 개인의 삶과 시대가 밀접한 연결이 있음을 실감했다. 그는 어릴 때 빵을 주니까 축구를 했다고 했다. 그때 많은 어린이들이 그런 계기로 운동선수가 되었다. 그가 원양 무역선을 타던 1980년대는 한국의 수출도 무르익던 시기다. 그는 육지로 돌아와 1990년대 초반 부천에서 수입 소고기 대리점을 열었다.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며 수입산 소고기가 들어오던 때다. 그는 사업을 몇 년 하다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IMF가 와서 크게 고생하고 2000년대부터는 노래방을 운영했다. 그다음 이야기는 앞서 쓴 대로 어린 시절 꿈을 따라 어부가 되었다. 그의 꿈 역시 2020년대 트렌드인 귀어인 증가와 맞닿아 있다. <현대해양> 2022년 6월 기사에 따르면 2021년 귀어인은 2020년 대비 25.7%나 증가했다. 우리도 다들 멀리서 보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시대의 초상 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귀봉은 성실히 살아왔다. 그는 명함을 수백 장씩 돌리며 부천에서 고기 영업망을 구축했다. 술은 안 마시고 담배도 끊고 꾸준히 축구와 헬스를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자신의 일상이라며 동해에서 가장 큰 헬스장에 데려갔다. 그는 익숙한 자세로 기구를 쓰며 다리 운동을 했다. 그의 다리는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단단해 보였다. 나보다는 확실히 단단할 것이다.
김귀봉의 삶을 듣고 있으면 우리 모두 나뭇잎처럼 사는 것 같다. 그의 삶 역시 늘 시대의 영향을 조금씩은 받았다. 우리의 모든 삶도 그렇듯이.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삶을 잘 사는 방법은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성실하고, 친절하고, 자기 일에 집중하고, 그러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묵호에는 문어를 40년째 잡은 사람도 있고 3대가 모두 문어를 잡는 사람들도 있다. 김귀봉은 그 안에서도 상위 10%의 문어잡이다. 그의 지론을 들어보니 그는 상당히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해요. 포인트를 찾고요. 문어는 늘 있는 데 있거든.” 말이 ‘있는 데’지 망망대해에서 그 ‘있는 데’를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조류도 잘 보고 낚싯대도 잘 던져야 할 테니까. 김귀봉은 그쪽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어 제철인 봄에는 하루에 50kg 이상의 문어를 낚아본 적도 있다고 했다.
문어 어업 역시 세상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 동해 문어 조업이 느는 이유 중에는 지역 특산물을 만들려는 동해시의 노력도 있다. 동해시청에 담당 공무원이 있어서 문어 어업 육성을 지원한다. 문어 종자를 키운 뒤 바다에 방생한다. 문어는 상선들의 항로 아래로 방생되기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클 수 있다. 세상에 그냥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서울 어디서나 문어를 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세상 뒤에는 매일 새벽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있다. 김귀봉은 일요일 빼고 매일 새벽 바다에 나간다. 일요일에는 수협이 쉰다.
동해 문어를 즐기는 방법
문어 조리법이 다양하지는 않다. 김귀봉은 숙회나 문엇국, 라면에 넣어 먹는 방법 등을 추천했다. 동해 문어를 사는 방법은 쉽다. 묵호어시장의 문어 전문 취급점에 전화로 주문하면 된다. 그날의 시세와 보유 문어의 무게를 바로 알려준다. 약간의 삶는 비용과 택배비와 상자 값을 더해 주문하면 빠른 경우 다음 날 스티로폼 상자 속 삶은 문어가 도착한다. 파슬리, 레몬, 올리브유 등을 넣어 이탈리아식 샐러드를 해 먹어도 좋다. 한국식으로 데치듯 익히면 문어가 쫄깃하고, 약한 불에 오래 익히면 이탈리아식으로 문어 살이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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