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Hennessy
“부직포 가방에서 꺼내면 케이스에 열쇠가 두 개 들어 있어요. 두 개를 구멍에 넣고 동시에 돌려야 열리죠.” 르챔버의 바텐더 김지현이 말했다. 병을 꺼내는 방법도 심상치 않고 열쇠를 잃어버리면 마실 수조차 없다. 이름은 리차드 헤네시. 2021년 기준 가격은 1천3백만원이었지만 2022년에는 1천6백만원으로 올랐다. 심지어 2년 전, 김지현이 리차드 헤네시를 처음 마셨을 때의 가격은 9백90만원이었다. “만화 <바텐더>에 가부키초의 술집에서 한 남자가 술을 마구 붓는 장면이 나와요. 어떤 술인가 봤더니 리차드 헤네시였죠. 너무 높은 가격 때문에 마셔본 적이 없었고, 르챔버가 오픈하고 7년간 한 번도 열지 않은 리차드 헤네시를 제 고객님이 함께 마셔보자 제안하셨어요.”
증류액 한 방울을 형상화한 둥근 병의 겉면을 각진 크리스털이 감싸고 있다. 예전에 출시된 제품은 겉면이 둥근 형태인데, 날카롭게 각진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숙성도에 따라 코냑의 맛과 향이 모두 달라요. 리차드 헤네시는 가장 오래 숙성된 원주들만 섞어 담았어요. 처음 마셨을 때, 엄청 찐득한 연유에 절인 호두를 씹는 맛이 났죠. 코냑은 우디한 느낌이 강한데, 리차드 헤네시의 우디함은 깊이가 달라요. 캐러멜 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숙성 과정만으로 붉고 어두운 색감과 연유의 끈적한 단맛을 이루어내죠.”
THE BALVENIE THE TALE OF THE DOG
“잔에 따른 직후의 향이 다 마신 후에도 지속돼요. 잔을 비운 후에도 안 치우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향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거든요, 와인처럼.” 앨리스 청담 바텐더 박용우는 발베니 42년 더 테일 오브 더 도그가 담겨 있던 잔의 향을 맡으며 말했다. 발베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남은 플로어 몰팅을 고수하는 위스키다. 플로어 몰팅은 보리를 바닥에 펼쳐서 말리는 작업이다. “케이스 안쪽에 디퍼가 압착되어 있죠? 디퍼는 오크통에 담긴 술을 꺼낼 때 사용하는 전통 도구예요. 증류기를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들을 코퍼스미스라고 부르는데, 60년 이상 일하신 장인이거든요. 압착된 디퍼가 발베니 42년의 향과 깊은 맛을 상징하고, 발베니 42년 자체가 코퍼스미스를 기리는 위스키이기도 해요.”
발매가는 2천만원을 호가한다. 한 병당 20잔가량 따를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한 잔당 1백만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말. “맛있어요. 갈색 꿀맛이 나고, 나무 냄새가 강하죠. 나이테 많은 나무를 쪼개면 속껍질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이 나요. 맛이 다층적이어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거예요.”
REMY MARTIN 1724 1974
“이 코냑은 구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바인하우스 김병건 마스터는 녹색 빛깔 무광 유리병을 들며 말했다. “레미 마틴의 최고급 원액들만 담은 ‘레미 마틴 1724 1974’예요. 1724가 레미 마틴의 창업 연도고, 1974년에 2백50주년 에디션으로 출시된 코냑입니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다 되어가죠. 레미 마틴에서 다양한 술을 만들지만, 제가 알기로는 현존하는 레미 마틴의 술 중 가장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레미 마틴은 현존하는 유명 코냑 회사 중에 가장 오래됐다. 레미 마틴 1724 1974의 목 부분은 거친 질감의 무언가로 두껍게 감싸여 있다. “마개는 왁스에 담근 디자인이었어요. 40년 넘는 시간 동안 그 왁스가 쪼그라들어서 칼로 힘들게 뜯어냈죠. 오래된 술인 만큼 알코올, 꿀 향이 날아갈 법한데도 향이 정말 강하죠. 길게 이어지는 향은 시간의 힘이에요. 원액 자체는 이미 전성기가 지났겠죠. 하지만 몰아치는 여운이 혀가 따라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처럼 대단하죠. 조금만 맛봐요. 그리고 직접 느껴봐요.” 김병건이 잔을 건네며 말했다. 달짝지근한 맛이 혀를 감쌌고 오래된 가옥에서 날 것 같은 향기가 코를 짙게 파고들었다. 그 향기는 약 5분간 이어져 물을 마시고서야 잠잠해졌다.
PAPPY VAN WINKLE’S
‘국내에는 정보가 너무 없다.’ ‘제일 낮은 등급이어도 좋으니 구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한 병이라도 마셔보고 싶다.’ 온갖 추측과 환상을 품은 버번위스키, 패피 밴 윙클스. 한국에서는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으며 미국에서도 1년에 극소량만 생산되기 때문에 신비로운 존재가 될 만하다. 미국에는 파는 위치를 찾아주는 앱까지 있을 정도다. 바인 하우스의 김병건 마스터에게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패피 밴 윙클스라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마시고 보면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김병건이 말했다.
패피 밴 윙클스 20년은 월드 스피리츠 챔피언십에서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아 세계 1위를 한 버번이다. 하지만 환상이 과하면 실망도 커서일까. 향과 맛은 강렬하고 여운도 길며, 생각보다 아주 부드럽고 시트러스한 향을 품었지만 여느 버번보다 특출하게 맛있는 부분을 발견하진 못했다. 김병건도 동의했다. “이 술이 귀해진 이유는 마셔본 사람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에요. 버팔로 트레이스에서 증류하는 버번위스키고, 출시량이 늘어날 일은 없을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유니콘 같은 위스키 맛을 상상하는 만큼 기대치도 올라가죠. 하지만 막상 마셔보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