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의 대리석
“그 사람이 돌쟁이로서 자기 판단에 최상품 아니면 안 팔았어.(웃음) 내가 “녹대리석을 원한다” 그랬더니 “알겠다. 조금만 기다려라. 수소문해 가지고 자기네가 공급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제안을 하겠다” 그러더라고. 알프스산, 토리노에서 서북쪽으로 프랑스 경계 쪽으로 쭉 올라가다가 이탈리안 알프스 쪽이 녹대리석이 많이 나는 고장이야. 거기에서 나는 녹대리석이 비등하면서도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고 이름이 제각기 달라요. 그런데 여기서 최종으로 쓴 거는 베르데 아첼리오. 녹대리석이 여러 개 있지만 베르데 아첼리오가 그 녹색이 희석이 안 되고 정말 농축된 녹색. 그리고 흰 줄기가 말하자면 회색이 아니고 정말 흰색. 그리고 그 줄기가 굵게 지나가는 게 아니고, 묘한 표현이지만 소고기의 사태처럼 (중략) 마블링이 있는 돌이거든. 그래서 내가 미스터 부팔리니한테 고놈을 찾아달라고 그래 가지고. 베르데 플로리 뭐 해서 여러 개를 가져와서 쫙 보는데 베르데 아첼리오가 제일 멋있더라고. 그래서 부팔리니의 돌을 우리한테 공급을 했고.”
<김종성 구술집> 목천건축아카이브(2018)
이 인용문을 비롯해 앞으로 이 페이지에서 인용한 모든 말은 2018년 발행한 <김종성 구술집>에서 가져왔다. 김종성은 당시 세계적 건축가였던 미스 반데어로에와 11년 동안 일했다. 힐튼의 대리석은 미스 반데어로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카고의 시그램 빌딩에서 쓴 것과 같다. 대리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대리석을 쓰는지는 건물의 인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플랫폼의 정신 산란한 대리석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힐튼이 세계 수준의 대리석을 공수하며 건물을 지을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천1백40달러였다. OECD 평균은 1만3백29달러였다.
힐튼의 구리
“그때까진 내가 브론즈를 쓴 데가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수소문을 하다 보니까 한국의 풍산금속이 대포알을 만들기 위해서 브라스 (중략) 그걸 엄청난 양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 풍산금속이. 아키텍처럴 브론즈라는 게 신쭈(황동의 일본어 발음인 신추(しんちゅう)가 변형된 것) 표면을 얼마나 산화시키느냐 그거거든. 그러면 그게 브론즈야. 물론 시그램에 쓴 거는 금속공학적인 성분이 조금은 다르지만, 이 풍산금속이 포탄 껍질 만드는 그거만으로도 마감만 하면 건축 마감이 되더라고. 그래서 풍산금속에 가서 납품할 수 있는 신쭈판에다가 브론즈 마감할 사람을 수소문을 했더니, 일본에서 오래 작업을 하다 귀국한 산국 사람인데 한국말 자체가 잘 안 되는, 일본말로 주로 얘기를 하는 영감님이 그때 나보다 나이가 한 일고여덟 살은 많은 그런 사람이 소규모로 했다 이거지. 그래서 나한테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보여주더라고. “여기에 소요되는 양이 상당히 많은데 선생이 퀄리티 컨트롤을 하면서 할 수가 있겠소?” 했더니 하겠다고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더라고. 이 사람이 그냥 작은 공방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인데 여기 맡겼다가 이걸 다 망치면 어떡하나 겁은 났는데, 결국은 이 사람이 자기가 데리고 있는 장인들 몇 명을 거느리고 그냥 지켜서 가지고 이걸 했어요. 스펀지에다가 황산이 주가 되는 화학(약품), 그걸 희석시키고 뭘 조금 탄 거, 그걸 스펀지로 신쭈에 발라. 완전히 피막, 보호막을 떼어내서 변색되기 전에 그걸로 이렇게 발라. 이걸 몇 번 바르냐에 따라 빛깔이 엷은 면에서 짙은 걸로 가는 거야. 그리고 조금 짙어진 부분은 그걸 녹여내는 또 다른 용액을 가지고 조금은 씻어내고.”
김종성의 회고는 한국 산업의 묘사이기도 하다. 풍산은 지금도 세계적인 동 생산 기업이다. 일본에서 오래 일해 한국어가 서툴다는 장인도 당시 한국의 산업상을 보여준다. 같은 책에서 김종성은 힐튼의 건축적 완성도를 두고 본인이 본 미스 반데어로에 건물의 98%라 표현했다. 모자란 2%가 사진 속 동관과 동관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는 “브론즈 핸드레일에 부분부분 모서리 돌리는 것 같은 거, 거기가 부드럽게 되지 않았죠”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 만듦새 자체가 당대 한국이다. 40년의 손길이 묻으니 더 애틋해 보인다.
“어딘가 줄눈이 하나 있어요. 1층에, 1, 2층 층고가 7.2m인데 그걸 1.2m에서 구조랑 다 해결을 보고 이게 6m인데 여기는 단숨에 갔네, 6m를, 지금 보니까. 그 아트리움 있는 데 거기에서는 불가피하게 이음새가 나요. 줄눈이 생기는 부분에는 마감이 손으로 한 게 나타나지. 조금 다르게 보이거든. 이제 줄눈이 있을 거야. 여기, 여기 사이에 있을 겁니다, 줄눈이. 여기서 보이네요. 여기 마감이 달라진 게. 이게 그냥 순전히 눈으로 그 공방 주인이 자기 장인들 독려해가면서 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가 달라지는 게 보이네.”
김종성은 시대의 엘리트였다. 경기고와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미해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미스 반데어로에에게 건축을 배웠다. 미스 반데어로에 사무실에 입사해 토론토 도미니언 빌딩 등에 참여하고 베를린에서 열린 미스 반데어로에 회고전을 기획했다. 당시 건축계의 세계 최전선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수학한 건축가 황두진은 그를 두고 “신사”라 표현했다. 그런 면모는 구술집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내내 친절하고 자세하게 말했고, 수십 년 전의 수치와 상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힐튼의 바닥
“바닥은 트래버틴을 생각했는데, 그 빛깔이 뉴트럴, 그러니까 딱히 빛깔이라고 짚을 수가 없는. 마루는 노란 빛깔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베이지 빛깔이라고 하는 게 조금 더 가깝고, 뉴트럴한 빛깔이기 때문에 다른 재료와의 조화가 쉬운 거, 그걸 착안을 해 가지고 트래버틴을 하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트래버틴을 켰을 때 곰보를 채우질 않고 곰보를 그냥 쓰는 걸로 해 가지고 썼고. 그게 중요한 재료 중에 하나였고.”
트래버틴도 고급 건축 자재 중 하나다. 터키산 트래버틴을 최고로 친다. 질 좋은 자연 소재를 시간 들여 관리하면 대체할 수 없는 중후한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반드시 둘 다 있어야 한다. 좋은 원재료, 충분한 시간. 둘 중 하나가 없다면 이 기품은 나오지 않는다.
힐튼의 시간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품위 있게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다. 본관 1층 아트리움 우측에는 힐튼의 역사를 모은 작은 전시 부스가 만들어져 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의 간략한 역사를 담은 연표 사이로 옛날 사진이 보인다. 그 뒤로 당시에 쓰던 접시, 당시 직원 유니폼, 당시 티슈 케이스 등이 놓여 있다. 이때의 공산품이 지금보다 품질 좋은 경우가 많다. 힐튼의 소품들은 지금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원래 호텔은 개념적으로 영생하는 곳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도 주기적으로 리뉴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하 1층부터 2층 사이의 공용 공간 곳곳에서 힐튼이 보내온 시간을 알 수 있는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형 스위치. 당시 보기 힘들었을 수입 스위치, 이제는 쓰지 않는 폰트가 새겨진 안내문과 주요 시설들이 숨듯 놓여 있다. 주요 시설물과 디테일은 시간이 지났을 뿐 어디 하나 먼지 쌓인 곳 없이 관리되고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들의 경륜과 성의를 느낄 수 있었다.
힐튼호텔이 사라지는 데에는 여러 논리가 작용했다. 경제 논리가 컸다. 서울 시내의 일급지에 두기에 지금 힐튼은 용적률이 낮다. 더 밀도를 높여야 건물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이제 누구도 힐튼을 지킬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힐튼은 사라진 한국의 재벌 대우그룹의 소유였다.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은 김종성의 경기고등학교 후배다. 김우중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힐튼호텔 맨 위층은 김우중 재단 사무실로 쓰였다. 다 지난 이야기다.
“(힐튼호텔을 만들던) 당시 한국의 가장 큰 목표는 세계 수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었어요.” 건축가 황두진은 힐튼호텔 철거를 ‘대한민국 정신을 없애는 것’이라 정의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힐튼호텔이 그 상징이죠. 세계 수준의 선진 건축을 배운 건축가가,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서 세계 수준에 아주 근접한 걸 만들어냈어요. 그것이 근대 대한민국의 정신 아닐까요? 그걸 부수는 건 근대 대한민국의 성과를 잊겠다는 것 아닐까요? 이제 대한민국이 이것 하나 보존 못할 정도로 못사는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한국은 뭐가 됐든 다 잊어버리고 새로 리셋한 뒤 그 위에 아무거나 얹어버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힐튼호텔의 건립과 철거는 놀랍도록 한국적인 수미쌍관이다.
상징적인 이야기는 제쳐두고 힐튼호텔에 쓰인 건축 자재가 귀한 건 사실이다. 시간을 들여 숙성된 고급 재료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 재료들이라도 잘 살려서 민간에 팔았으면 좋겠다. 건축 자재로, 아니면 상징적인 기념품으로.
뉴욕은 옛날 지하철역에 쓰던 타일을 부수지 않고 떼어서 인테리어 타일로 고가에 판매한다. 베를린 장벽을 이룬 콘크리트도 일반인이 기념품으로 구입 가능하다. 힐튼을 남겨두지 않을 거라면 힐튼의 조각들이라도 사람들이 품을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40년쯤 된 건축물이면 약간은 시민의 것이기도 하니까. 가능하다면 나는 브론즈 핸드레일의 구간이라도 하나 사고 싶다. 근대 대한민국의 조각을 곁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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