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th A-AWARDS-
UNIQUE + JOO JONGHYUK
필모그래피에 따르면 독립 영화부터 시작했으니 꽤 오래 연기했더라.
8년 차지만 매번 작품과 캐릭터가 새로워 아직 연기가 익진 않았다. 간혹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연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기운은 느껴진다.
어떤 시나리오가 그 기운을 만들어주나?
서사가 예상대로 흘러가다 방향이 꺾이거나 극중 캐릭터가 상황에 새롭게 접근하는 장면이 보이면 재미를 느낀다. 또 술술 읽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캐릭터의 매력이 명확할 때 참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그런 작품이었나?
맞다. 개별 에피소드로 구성되지만, 극 중 ‘한바다’팀이 계속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권민우’ 역은 나쁘지만 마냥 밉지 않다는 점도 신선했다. 인터뷰할 때 자주 받았던 질문이 ‘권민우를 연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냐’는 것인데, 어렵지 않았다. 그 자체로 매력 있는 캐릭터니까.
유독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나 장면이 궁금하다.
권민우가 ‘최수연’ 변호사에게 ‘우영우가 강자예요!’ 하고 소리 지르는 건 리허설 중에 나온 애드리브다. 그 문장이 좋아 현장에서 살리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를 던지는 모습이 새롭게 느껴지더라.
리허설 후에 감독님과 논의해도 풀리지 않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나?
그냥 해보자는 마음이 크다. 집에서 연습하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생기면 친구들에게 묻는다. 제3자와 공유하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나 신선한 의견을 얻을 수 있고, 아이디어가 풍성해진다.
<우영우>가 이토록 큰 관심을 받을 줄 알았나?
초반에는 체감 못 했다. <우영우>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막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미국 에이전시와 화상 미팅을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더라. “<우영우>가 정말 잘됐다. 미국인의 기억에 남는 건 어려운 일인데 <우영우>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더라. 영어 공부해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하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K’의 힘을 체감했고 <우영우>의 인기를 정말 실감했다.
지금이 정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때 아닌가?
맞다. 근데 나는 항상 재미있게 일해왔다. 매 작품이 즐거웠고 그래서 스스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도 동료들과 어긋난 적이 없고 늘 배려받아왔고 배운 것도 많다.
설렘과 기대가 크면 부담도 따라 커질 법한데.
부담감은 없다. 내가 흥미 느끼는 걸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욕심만 있다. 부담감을 갖고 더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직 작품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쓸 수 있는 능력이 무궁무진할 테니까.
“매 작품이 즐거웠고 그래서 스스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영우>가 끝난 후 포상 휴가로 발리를 다녀왔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기억하나?
생각해보니 기대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없었다. 그냥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수영장에서 배구 하고 맛있는 요리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마냥 좋더라. <우영우>에서 함께한 동료와 감독님 모두 다 좋은 분이셨다.
권민우 역할을 통해 어떤 점이 성장했을까?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 연기를 더 잘했다는 생각은 아직 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 열심히 하면 더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과 함께 꿈도 커졌다. 또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이 권민우를 나쁘다고 욕하는 건 나의 연기를 이해하신 거라는 사실이다. 인정받은 기분을 처음 느꼈다.
초창기 주종혁 배우는 무얼 꿈꿨나?
그때는 꿈이 정말 소박했다.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고, 프로필 돌려서 한 군데 연락받아 단역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성취였다. 그 일련의 성취가 재미있었고, 단편 촬영 현장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것들을 해나가는 게 즐거웠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본격적으로 상업 작품에 뛰어든 후 꿈은 커졌을까?
현 소속 회사에 들어간 후 1년간은 보답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그래야 회사가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질 테니까.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내가 좋고 잘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나가고 있더라. 그래서 점점 더 큰 꿈을 품게 되었는데, 그 꿈은 ‘오랫동안 연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칭찬받고 싶다.
연기하면서 육체 혹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딱 한 번 있다. 독립 영화에서 시체 역할을 했을 때다. 목 잘린 연출을 위해 캐리어에 구멍 내어 머리를 넣고, 양옆엔 석고로 만든 팔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실제 돼지 창자와 내장을 내 얼굴에 얹고, 그 위엔 피를 흩뿌렸다. 몸은 깊게 판 땅에 묻혀 캐리어가 열리면 내 얼굴과 창자들만 보이도록 연출했다. 촬영날 정말 추웠는데 숨이 안 쉬어지더라. 냄새도 이상했고 흙이 얼어 동상 걸릴 뻔했다. 캐리어가 닫히면 얼마나 무섭던지. 심지어 동료들은 나를 묻어놓고 촬영 안 하고 길게 회의하더라. 하하. 당시 연출했던 친구에게 요즘도 말한다. 그때는 진짜 너무했다고.
연기 영역에서 어떤 고민이 가장 힘에 부치나?
촬영 현장마다 고민이 달라진다. 현장 분위기에 맞추려는 성향이 강해서 그런가 보다. 분위기 좋은 현장 가면 연기가 편하다. 안 그런 현장에선 나만의 편안함을 찾는다. 그 점이 매 순간 숙제다. 낯을 가리는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분위기에따라 오락가락하더라.
오늘은 어땠나?
약간 낯가렸다. 촬영장 분위기가 차분해서 내가 잘 못하고 있나, 아니면 원래 이렇게 조용한 건가 고민했다. 하하. 그래서 연기할 때 딜레마는 늘 초반이 어렵다는 거다. 초반을 잘 견디면 정말 편해진다.
불편함을 극복하는 주종혁만의 노하우가 궁금하다.
여유 있게 행동하자고 자기 암시한다. 선배님이 많은 촬영장에서 긴장하면 대사의 호흡이 어긋나고 말만 빠르게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 상황이 수정되지 않고 그냥 흘러갈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과 행동에 여유를 갖고 임하면 연기가 더 풍부해지더라.
2022년은 주종혁에게 남다른 해였나?
여러 변화가 있었다. 혼란스럽고 신기하고 걱정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의연해졌다. 결국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차분한 상태다.
어떤 걱정인가?
주목받는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기다려온 순간이라 꽉 쥐고 싶을 때가 있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2022년은 32년 살아오면서 제일 신기한 해다. 연기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늘 낙천적이었던 내가 하루는 혼자 집에서 울고 있더라.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 힘든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힘듦을 느낀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닐까?
그런가? 아직은 한참 미숙하다. 이제 33세니까 또 다른 재미가 나타나길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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