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을 그리는 작가, 오늘
웹툰 작가 오늘의 그림은 수채 파스텔로 슥 그린 뒤 손가락으로 문지른 것 같다. 선은 굵고 채색은 희미하다. 깔끔하고 정교한 화풍은 아니지만 서정을 자아낸다. 2020년 완결된 오늘의 대표작 <하루>는 20대 초반 남녀의 서툰 연애 서사를 담았다. 선의 형태가 희미한 화풍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주인공 ‘진우’의 찌질함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하루>에 담긴 찌질한 로맨스는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유발했다. 오늘 작가의 작화는 보면 볼수록 친근하다.
<하루>의 작화가 독특해요. 재료의 질감이 살아 있어 수작업 느낌이 나네요.
펜선 위주인 다른 웹툰과 차별점을 주고 싶었어요. 굵은 색연필의 선은 살리고 수채화 물감의 채색 방식을 넣었죠. 14학번 복학생 진우의 시점에서 풀어가는 <하루>는 대학교 캠퍼스 커플의 연애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물이에요. 재료의 질감이 잘 보이는 그림체가 장르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전개에 불필요한 컷은 최대한 뺐어요. 내용 정리에 많은 힘을 썼죠. <하루>를 사람들이 여러 번 봤으면 해서, 다시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을 넣었어요. 설명적인 컷이 적어 <하루>가 어렵다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피드백을 받아서 아쉬워요. 그림은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다채롭게 보이기 위해 동적인 자세를 많이 그렸어요.
<하루>의 인물들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만화가 데뷔하려면 도전 만화와 베스트 도전 만화를 통과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본에 갔어요. 첫날 밤, 늦은 시간 방문한 한 가게 직원분이 서툰 한국어로 열심히 응대를 해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캐릭터를 만들어보면 재밌겠다 싶었죠. 그렇게 일본인 교환학생 ‘하루’가 탄생했어요. 하루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일상에서 참고한 캐릭터는 ‘수진’입니다. 수진이는 과하게 오지랖 넓은 성격이에요. 대학에서 가장 많이 봤던 유형이죠. 그 외에는 모두 상상에서 나왔어요.
하루의 대사는 정말 일본인이 말하는 거 같아요.
저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라요. 캐릭터 구현을 위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어려운 단어는 영어로 표현하고 문법적인 순서도 고심해 배치했어요. 원래는 한국어를 더 못하는 설정이었는데 내용 이해가 어려워질까 봐 수정했어요. 덕분에 하루의 한국어 실력이 기존의 설정보다 유창해졌어요. 회차가 거듭될수록 한국인 수준으로 실력이 늘어납니다.
<하루>에서 캐릭터 의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쇼핑몰을 많이 봐요.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사람들 옷을 많이 기억하려고 해요. 그 외에도 아이돌 영상을 많이 참고합니다. 주인공 하루는 달라붙는 옷을 선호하지 않을 것 같아 활동하기 편한 긴 원피스를 입혔습니다. 요즘은 남자 주인공 헤어스타일을 신경 써서 그리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블로그에 꾸준히 스케치를 올리셨네요. 그림체는 조금 바뀌었는데 선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확고한 거 같아요.
연필과 펜의 느낌은 계속 추구하고 싶어요. 지금 저의 그림체에 먹의 느낌까지 추가하는 게 목표예요. 컴퓨터로는 먹 표현이 힘들어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가장 그리고 싶은 건 흑백 만화예요. 연필, 펜, 먹만 써서 <헬퍼> 시즌 1처럼 흑백 만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유의하는 점은요?
자연스러운 걸 좋아해요. 만화를 보면 동작을 효과나 대사로 표현하려는 면이 있어요. 독자가 만화를 볼 때 대사 없이도 이해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움직임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가장 유의해서 그리고 있어요.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장르도 있나요?
판타지 액션이요. 이번에 투고했는데 그림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 됐어요. 그래서 그림체를 좀 바꿔보고 싶어요. 여러 장르를 그릴 수 있는 그림체를 구사하고 싶어요. 계속 연구하고 그려봐야죠.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5억에 팔리고, 인공지능이 그린 만화 <파이돈>이 세상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인공지능 발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알파고 나왔을 때 이세돌 님이 당연히 다 이길 거라고 했는데 겨우 이기셨잖아요. 갈수록 인공지능을 이기기 힘들어질 거 같아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조건 집니다. 영화도 만화도 다 너무 비슷해요. 공부를 안 하고 봐온 걸로만 그리면 작법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OTT가 등장하며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 현상이 반가워요. 저도 많이 보고 연구해야 할 거 같아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시대에 대한 고민과 다양한 현상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AI는 결국 수많은 자료를 집결한 빅데이터죠. 빅데이터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개발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스펙트럼 넓게 모든 장르를 다 아울러야 해요. AI는 모든 작품을 입력해 최종 결과물을 만드는 시스템이잖아요. 이기기 위해서는 번뜩이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그 아이디어를 내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 빠진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리남>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시작해보려고요. 그렇지만 막상 작업을 할 때는 최대한 시대의 유행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나중에 봤을 때 유행이 지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요. 유행하는 건 지양하고 시대상만 잘 담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취미를 업으로 삼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피드백이요. 혼자 그리던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됐는데 막상 되고 나니 반응을 보는 게 무서웠어요. 최근에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는 손만 그리냐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때도 제가 그 손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무섭지만 받아들이고 개선하고 있습니다. 만화가의 삶은 재밌지만, 연재를 못하면 압박감이 심해요. <하루> 연재 기간보다 차기작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백수인지 작가인지 싶거든요. 그 외에 혼자 고뇌하는 시간이 길어서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점을 제외하고는 괜찮습니다. 그 부분은 고양이 키키가 채워주고 있어요.
작화가 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림은 다 잘 그립니다. 이제는 서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내용은 독자들이 금세 알아주거든요. 최근 OTT로 다양한 웹툰이 영상화되는 걸 보고 느꼈습니다. ‘스토리의 힘이 더 크다!’ 그걸 느껴서 차기작 준비가 길어지고 있어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