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디자인만을 위한 축제, 3 days of Design
기나긴 코로나19의 암흑기를 뚫고, 드디어 코펜하겐이 세상을 향해 활짝 문을 열었다. 물론 디자인에 있어서 밀라노, 런던, 뉴욕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코펜하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띤다. 조명, 가구 등 인테리어 분야에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의 핵심이자, 여전히 가장 컨템퍼러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핵심 도시이기 때문이다.
매년 초여름에 열리는 디자인 축제 ‘3 days of Design’은 밀라노 등 다른 도시의 페어와는 성격이 꽤 많이 다르다. 큰 규모의 기업화된 브랜드 중심으로 페어를 위한 거대한 공간, 이벤트 등을 만드는 여타의 페어들과는 달리, 코펜하겐 도심의 쇼룸, 거리, 뒷마당 등에서 작지만 활기찬 무대를 곳곳에서 펼친다. 바이어라기보다 ‘디자인 애호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창의성을 발견하고 축하하는 공동체적인 축제에 가깝다.
‘3 days of Design’은 매년 축제를 열기 전에 새로운 시각적 주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비주얼과 포스터 형태로 발표한다. 올해는 이탈리아 출신의 가구, 산업,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루카 니케토(Luca Nichetto)가 그 작업을 맡았다. 니케토는 무라노섬 출신의, 유리 제조업의 대가였던 가족으로부터 창의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3명의 캐릭터, 3개의 주제 등 트리오를 작품의 특징으로 보여주는데, 3일 동안 디자인 축제를 여는 이번 행사와 딱 맞아떨어지는 작가일 수밖에 없다. 오렌지빛을 배경으로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디자인, 요리, 건축 랜드마크 등을 ‘놀이’라는 테마로 위트 있으면서도 멋지게 표현하였다. 니케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자이너로서, 놀이는 제 사고 과정의 핵심 부분입니다. 디자인 작업 과정에서 딜레마에 직면할 때마다 놀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것은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제 프로젝트와 협력 파트너들에게 재미의 요소를 더해줍니다.”
코펜하겐, 디자인의 도시
코펜하겐 도심을 돌아다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3 days of Design’의 깃발이나 포스터가 부착된 장소가 보이면,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누구나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다. 누구나 환영받으며, 누구나 샴페인을 즐기며 기꺼이 디자인을 테마로 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북유럽 디자인 수도’ 코펜하겐의 위상은 올해 ‘3 days of Design’에 참여한 브랜드들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노만 코펜하겐(Normann Copenhagen), 무토(Muuto), 헤이(Hay), 크리스티나 담 스튜디오(Kristina Dam Studio),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브란트 컬렉티브(Brandt Collective) 등등.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디자인, 조명, 가구 브랜드 2백여 곳이 이 번 축제에 참가했다. 코펜하겐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실제로 매장과 사무실을 운영하는 디자인 브랜드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축제에 녹아들어 하나의 오렌지빛으로 빛난다는 것이, 세계에서 오직 코펜하겐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장관이다.
크리스티안보르 궁전과 맞닿아 있는 코펜하겐의 구도심은 유명한 관광지이자, 다양한 브랜드들의 숍이 모여 있는 핵심 지역이다. 여왕이 거주하는 로젠보르크 성까지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이 지역 안에 코펜하겐의 대표 브랜드들은 다 모여 있다. 그 한복판에 깃발을 세운 헤이의 친환경적인 나무 계단과 위트 있는 디자인 요소들이 층별로 장식된 매장에서 출발해 하루 종일 코펜하겐 도심 곳곳에 휘날리는 ‘3 days of Design’의 깃발을 따라서 걷다 보면,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
물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선호하는 코펜하겐의 특성에 따라, 어디서나 쉽게 빌릴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도심 곳곳을 다니며 디자인 축제를 마음껏 즐겨도 좋다.
코펜하겐의 대표 브랜드, 루이스 폴센
구도심에서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유명한 크리스티안스하운(Christianshavn) 운하가 나온다. 1년 내내 작은 요트를 띄운 채 여유와 담소를 나누는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코펜하겐을 넘어 덴마크를 대표하는 조명 브랜드인 루이스 폴센의 본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루이스 폴센 본사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자,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바이어와 디자인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감동을 주는 쇼룸이기도 하다. 최근 리뉴얼을 마친 (한편에서는 아직도 일부 공사가 진행 중인) 이 건물은 1800년대 초반 해군의 병참 창고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국가 소유였던 건물을 사옥으로 쓸 정도로 루이스 폴센이 덴마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유서 깊은 오랜 건물의 자취를 잘 남기면서도, 컨템퍼러리한 감각으로 새롭게 리뉴얼한 사옥 1층에 들어서면 폴 헤닝센, 아르네 야콥센, 베르너 판톤 등 루이스 폴센의 헤리티지를 구축했던 디자이너들의 작품, 그리고 최신 방식으로 해석한 그들의 유산이 반영된 신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뱅앤올룹슨의 A9과 루이스 폴센의 파테라를 디자인한 오이빈드 슬라토 등 최근 세계의 디자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현재적 디자이너들의 작품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실제로 오이빈드 슬라토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행사 기간 내내 자유롭게 드나들며, 관람객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코펜하겐을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방문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맞다. 올해의 축제는 끝났지만, 저절로 내년 항공권을 검색해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도시 코펜하겐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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