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캡
머리의 일부처럼 매일 쓰고 다니는 니트 비니가 볼 캡으로 바뀌면 여름이 온 거다. 그렇게 내 한 해는 비니, 볼 캡 시즌으로 구분된다. 그 와중에 볼 캡의 피팅감에 대한 나름 엄격한 기준이 있다. 대신 한 번 꽂히면 시즌 내내 티셔츠, 셔츠, 원피스 구분 없이 아무데나 쓰는데, 내 보기엔 모자 하나면 밋밋한 티셔츠도 그럴듯해 보이고, 진지한 원피스도 쿨하게 비틀어주는 느낌이라서. 올해는 이거. 친한 선배가 선물해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오리지널 굿즈. 짙은 네이비였는데 어느새 흐릿하게 워싱된 손때묻은 바이브까지 느긋하고 좋다. Editor 최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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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디 ‘Recto Verso’
계절마다 아침에 듣는 음악이 다르다. 여름의 아침엔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파라디의 ‘Recto Verso’. 그리고 저물녘엔 쿨 앤드 더 갱(Kool And The Gang)의 ‘Summer Madness’를 틀어놓는다. 유난히 화창한 여름날 당장 바다로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마다 ‘Recto Verso’ 뮤직비디오 인트로의 파도가 휘몰아치는 시원한 영상미를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며. Words 채대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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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츠와 양말
여름엔 주로 블랙 쇼츠에 블랙 양말을 올려 신는다. 특히 통이 약간 넓은 버뮤다 쇼츠 스타일과 불필요한 디테일 없는 단정한 양말의 조합이면 아주 좋다. 편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블랙은 적절히 시크하고, 허술한 법이 없으니까. Words 김영진(스타일리스트)
아일랜드 슬리퍼
시작은 직장을 관두면서부터다. 양말을 잘 신지 않게 됐다. 불가피하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사계절 맨발에 크록스만 신었다. 점점 스타일보다는 편의성을 찾게 됐다. 여름은 좀 더 참기 힘들었다. 몇 년을 하바이아나스로 지내다 이번에 하와이 여행을 다녀오며 아일랜드 슬리퍼로 정착했다. 편안한 티셔츠 차림에는 당연하고, 재킷을 걸치는 날에도 주야장천 신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은 아일랜드 슬리퍼만 고수할 것 같다. 그러면 안 되는데 오늘 미팅에도 아일랜드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Words 이영표(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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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밴 선글라스
선글라스를 달고 산다. 겨울에도 그렇지만, 여름이면 가방에 항상 선글라스 2~3개는 꼭 넣어 다닌다. 그날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건 일단 쓰고, 여분으로 더 챙겨야 마음이 놓인다. “혹시 몰라서”라는 스타일리스트 특유의 직업병이 있는데, 그런 거다. 혹시 모르니까. 이건 샘플로 보던 선글라스였는데, 한국에서 구할 수 없어서 레이밴 코리아에 직접 부탁하여 올해 초 해외 배송으로 구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챙긴다. Words 이민규(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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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여름을 파란색으로 기억하는 건 너무 뻔한가? 하지만 밤을 지새웠던 계절은 유달리 여름이었고, 하필이면 해변이었다. 그때는 안개조차 푸르렀다. 또 나는 여름 공연을 싫어한다. 사람들의 환희는 소음이고, 열기는 습기다. 조용한 곳에서 차가운 에어컨 바람 맞으며 책이나 읽는 편이 낫다. 하염없이. 그때마다 누군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틀어놓곤 했었다. 누구였지 그 사람? Editor 조진혁
듀페의 플립플롭
브라질 브랜드 듀페를 한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면, 아무도 다른 플립플롭은 신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주 예전에 도쿄에 여행 갔을 때다. 여름이었고, 하염없이 걷느라 너무 덥고 힘들었다. 우연히 들어간 편집숍에서 듀페를 처음 발견했다. 잘 보면 뒤 발바닥 부분에 도톰한 쿠션이 있는데, 쿠셔닝이 최고다. 하루 종일 걸어도 발바닥이 안 아프다. 그 뒤로 매해 여름, 일본에 살고 있는 누나를 통해 듀페를 구했는데, 올해는 일본에서도 못 찾았다고⋯ 브라질에 가야 할까? Words 김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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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 평양냉면과 제육, 그리고 소주
하루가 고되고 지치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 1순위로 떠올리는 것은 평양냉면. 처음 맛본 평양냉면 맛에 길들여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에겐 진미가 그런 곳이다. 물냉면 한 그릇에 제육 반, 소주 한 병 시켜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다 보면 금세 냉면 그릇이 바닥을 드러낸다. 슴슴하고 시원한 냉면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다 보면 무더위도 힘든 일도 모두 가시는 기분이다. Editor 하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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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스커 10년
유독 정신적·육체적 노동이 고된 날, 거기에 여름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나는 뜨거운 위스키를 찾게 된다. 이왕 몸도 정신도 타들어갈 거라면 내 목구멍도 세게 타들어가 보자는 핑계와 함께. 피트 위스키 중에서도 가장 건조하고 매웠던 탈리스커 10년은 나의 여름 버팀목이다. 세 잔을 니트로 들이켜고 나면, 정신이 되살아나고 피가 힘차게 흐르며 언제 더웠냐는 듯 육체는 차게 식어버린다. 생각해보니 탈리스커 10년으로 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곤 했네. Editor 정소진
남해 은모래 비치
여름이 싫은 이유는 열 손가락이 부족할 만큼 차고 넘치지만 좋은 이유는 딱 하나, 남해의 손님이 되는 거다. 그곳 해변은 부산처럼 드넓거나 현란하진 않지만 아늑하고 정겹다. 단돈 1만5천원에 선베드와 파라솔을 빌린 후, 뙤약볕과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흘러내리는 더위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나에게 남해는 여름, 여름은 곧 남해인 셈. Editor 이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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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브리스 톱
여름엔 특히 볼드한 주얼리를 많이 하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옷은 미니멀하게. 그래서인지 슬리브리스가 정말 많다. 브랜드마다 소재와 핏이 굉장히 다르다. 너무 얇은 소재보다는 조금 도톰한 원단, 몸을 착 감싸는 슬림한 핏을 선호한다. 편하게 입고, 세탁도 자주 해야 하다 보니 접근성 좋은 브랜드를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 코스가 가격도 합리적이고, 핏, 소재감 모두 훌륭한 편이라 매 시즌 눈여겨본다. 그 외에도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찾을 때마다 구비해놓는다. 다만 최근에 옷장을 보니 너무 슬리브리스만 가득이라, 이번 여름은 자제해야 할 거 같은데... Words 이우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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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쿨라임 피지오
무더운 날씨엔 영 맥을 못 춘다. 입안이 마르고 텁텁해 씹는 것도 귀찮아진다. 이런 더위엔 길을 걷다 스타벅스가 보이면 이끌리 듯 들어가 주문처럼 외운다. “쿨라임 피지오 벤티 사이즈로 탄산 세게, 얼음 적게요” 어떤 맛이냐 하면, 체감온도와 불쾌지수를 조금이나마 낮춰주는 청량한 맛. 탄산 음료 마니아들에게 권하기엔 좀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평양냉면, 코코넛 워터 취향의 나는 여름에 밥보다 쿨라임 피지오를 많이 마시는 날이 더러 있다. Editor 이상
CHS 바다 프린트 시폰 사롱
“저 사람은 여름을 제대로 이해한 걸까?” 우리끼리 되뇌는 말이다. 여름이 뭐라고. 이 계절이 뭐라고. 우리는 이 푹푹 찌고 축축한 계절을 무슨 삶의 방식처럼 따른다. 나와 내 친구 CHS에게 여름이란 정서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아 시폰 사롱은 얇고, 가볍고, 예쁘기까지 해서 어디든 들고 다닌다. 해변에서는 비치타 월로, 집에서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어디서든 사랑스럽게 꺼내둔다. 사진가 이원걸의 아름다운 바다 사진을 프린트한 이 시폰이야말로 우리의 여름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여름이 온다.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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