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감독 전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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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설산에서 백마와 함께 춤을 추는 엑소 카이의 구찌 아리아 캠페인, 꽃으로 뒤덮인 언덕에 누워 있는 블랙핑크 제니의 젠틀몬스터 캠페인 등 최근 화제가 된 광고를 기획한 전민규 미술감독을 만났다.
뮤직비디오와 광고, 매거진 화보 세트는 모두 미술감독의 손에서 탄생한다. 장면 속 인물을 제외하고 공간의 모든 것을 담당한다. 그가 구현한 공간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 속 서사가 느껴졌다.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 위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전민규 미술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는 무엇일까. 촬영 오브제와 공구들이 널브러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작업실은 그만의 감도와 취향이 배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에 어둑한 조명, 스틸과 가죽 가구가 조화롭게 배치된 공간 곳곳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를 거쳐간 노트북만 무려 7개다. 손재주가 요구될 줄 알았던 미술팀 작업은 알고 보니 디지털로 이루어졌다. “손으로 만지기 전 모든 과정을 노트북으로 처리하니까요. 디지털 작업이 90%, 나머지가 10%입니다.” 노트북은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도구다. 하지만 전민규 감독에게 노트북의 비중은 남다르다. 그의 모든 작업 과정에 필요하기 때문. 말 그대로 업을 위한 무기인 것이다.
빈 공간을 몇 시간 내 생경한 세상으로 탄생시키는 미술팀은 현장보다 준비 과정에 더 꼼꼼하게 임해야 한다. 창작은 기획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의 노트북에는 사진이 19만 장 있다. 오로지 영감만을 위한 이미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없는 이미지를 찾는다. “옷을 좋아해서 패션쇼 런웨이 무대를 자주 봐요. 옷뿐만 아니라 무대 공간에 더 집중합니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골든구스예요. 미술팀 일을 하면 옷이 쉽게 망가지는데 처음부터 빈티지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착용하기 편했거든요.” 전민규 감독은 패션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작업뿐 아닌 생활 곳곳에 녹아 있다.
이미지 아카이빙을 마치면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스케치업과 일러스트, 포토샵에 익숙하거든요. 학교에서 툴을 이용해 영감을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촬영 직전까지도 노트북은 많은 역할을 한다.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모든 것을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꼼꼼하게 검열한다. “촬영 후에 리터칭하자! 이런 건 용납하기 힘들어요. 현장에서 확인하고 직접 수정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합니다. 대충 하는 걸 싫어해요.” 그는 촬영 전 의식처럼 페인트 색상을 직접 조제한다. 미세한 색감 차이는 문제되지 않지만 이런 작은 과정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꼼꼼한 감독 밑에서 일하는 팀원의 노고를 알고 있다. 팀원들의 덕을 본 작업물로는 엑소 카이의 구찌 아리아 캠페인을 골랐다. “실제 나무 밑동을 잘라 현장으로 옮기고 벽면은 LED로 구성했습니다. 나무로 세트 형태를 잡아놓고 특수 눈을 뿌려 마무리했어요. 나무가 너무 무거워 한 번씩 위치 바꾸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촬영에 사용된 3.5톤 트럭만 5대였습니다.” 전민규 감독은 스펙트럼이 넓다. 광고, 매거진, 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등 모든 분야에서 활동한다. 시작은 어땠을까? “우연히 생일 파티에서 만난 아트팀 팀장님이 저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했어요. 그렇게 투입된 첫 현장이 뮤직비디오였습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세트에 매료되어 일을 시작하게 됐죠. 후에 광고팀으로 이직해 일을 배우다 패션 필름에 대한 갈망이 커져 광고팀을 나와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민규 감독에게 노트북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해주는 도구다. 복잡한 과정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전민규 감독에게는 문제되지 않는다.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스쳐 가는 지금, 대중의 눈에 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중성만 추구하다가 독창성을 놓칠 수 있고,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려다 섬세함을 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전민규 감독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애쓴다. 이런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팀원의 색을 찾아 개개인을 아티스트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그 친구들의 기반이 됐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제 취향으로 꾸민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요.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흔들림 없이 유쾌한 상상력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시대다. 기존의 관점을 비틀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전민규 감독은 현시대에 걸맞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그의 세트는 현장에서 하나의 배역이자 캐릭터로 존재한다. 인물과 음악 없이 장면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 전민규 감독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내놓기 위해 또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게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이미 눈에 보이는 순간, 그건 새로운 게 아니거든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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