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럭셔리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먹고 마시는 경험의 장을 연다. 이유가 뭘까? 옷이나 물건이 아닌 음식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란 뭘까?
패션 브랜드가 F&B라는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확장하는 이유
피에르 상 at 루이 비통
패션을 너머 라이프스타일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
“새로운 차원의 다이닝 경험.” 루이 비통이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at 루이 비통(이하 피에르 상)’을 열며 배포한 보도자료의 첫 문장이다. 피에르 상은 팝업 레스토랑이며 청담동에 위치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에서 6월 10일까지 열리는 행사다. 세계적인 셰프이자, 파리에서도 최고급 요리를 창의적으로 담아내는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 열풍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한 한국계 프랑스인 피에르 상 보이에가 직접 개발한 메뉴로 이뤄졌다. 예약 오픈 5분 만에 한 달 치 예약이 모두 마감될 만큼 엄청난 인기를 호령한다. 인기의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한 물음에 이선영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는 “루이 비통의 가방 혹은 의류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브랜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라는 대안을 이야기했다.
음식은 패션보다 우리 삶에 더 가까운 필수 요소이자 라이프스타일에 속한다. 그런 음식을 기반으로, 부쩍 저렴한 금액으로 루이 비통을 경험할 수 있는 팝업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피에르 상은 루이 비통이 패션을 너머 라이프스타일까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이선영 에디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루이 비통과의 협업은) 확장(expansion)이다. 내 세계관은 물론, 루이 비통도 나를 만나며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피에르 상은 단순히 멋지고 비싼 음식을 파는 팝업이 아니다. 메뉴에도 브랜드의 철학과 지향점이 담겨 있다. 먼저 비빔밥 메뉴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김치를 만드는 방식에서 착안한, 6시간 소금물에 절였다가 구워낸 아스파라거스를 전채 요리로 활용했고, 한우 등심 스테이크 옆엔 쌈장 소스와 명이나물을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재료를 쓴다는 건,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안착시키는 데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수입이 아닌 국내 식자재의 사용은 현시대 가장 큰 화두인 지속가능성을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패션 브랜드 루이 비통이 F&B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비싸고 새로운 시도를 한 이유는 뭘까? “소비자가 공간을 방문하는 건 해당 브랜드의 역사나 이야기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소비자는 먹고 마시며 루이 비통을 소비하고, 나아가 브랜드의 다른 제품을 구매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선영 에디터의 설명이다.
구찌 오스테리아
비싼 물건을 사는 것만이 럭셔리가 아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진정한 럭셔리다.
구찌가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이하 오스테리아)를 열었다. 위치는 이태원동의 구찌 가옥 6층. 아시아에서 서울이 세 번째로 ‘구찌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도시가 됐다. 내부는 밝은 초록색이 돋보인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상징적인 색깔이기도 하다. 구찌의 기반이 되는 도시인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인테리어 미학을 서울에 맞게 표현한 셈. “그야말로 SNS에 포스팅하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오스테리아에 다녀온 이선영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가 설명을 보탰다.
오스테리아는 구찌라는 패션 브랜드의 미학만 가져온 게 아니다.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선정된 미쉐린 3스타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의 오너 셰프 마시모 보투라를 필두로 전형규 셰프가 총괄을 맡으며 서울다운 메뉴를 창작했다. 먼저 ‘서울 가든’과 ‘아드리아해의 여름’이 그 예시다. 그리고 이 모든 음식의 식재료는 대부분 국내 재료를 활용했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메뉴는 여러 번 감각해야 하는 음식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적당한 유머를 주고받으며 예민한 감각으로 음식을 즐기길 권한다”라는 조진혁 <아레나> 피처 디렉터의 경험담은 오스테리아의 분위기와 미식 부분을 잘 설명한다. 음식만큼 놀라운 건 그릇과 식기를 비롯한 모든 용품이 구찌의 제품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먹기 위한 도구로도 소비자에게 구찌를 경험시키는 셈이다. 오스테리아는 이런 경험을 통해 소비자에게 구찌의 DNA를 전달한다.
소비자는 기다렸다는 듯, 오픈 전 온라인 예약이 4분 만에 종료될 만큼 예약 전쟁을 벌였다. “구찌 오스테리아는 모든 면에서 팬시하고 구찌스럽다. 음식과 별개인 비주얼적 요소만으로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라는 이선영 에디터의 말과 “물건을 사는 것만이 럭셔리가 아니다. 삶의 관점에서 보자면 잘 먹고, 잘 자는 게 진정한 럭셔리라고 볼 수 있는데, 오스테리아는 브랜드로서 의류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영역의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라는 김민지 푸드 칼럼니스트의 설명은 구찌가 나아갈 방향을 설명하는 듯했다. 구찌 오스테리아는 “더 이상 명품은 고귀하고 품격 있는 것이기보다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힙하게’ 받아들여지는, 그래서 더 가지고 싶은 로망을 담아내고 있다”라는 이주영 <아레나> 편집장의 말처럼 MZ세대를 겨냥한 럭셔리 브랜드의 동시대적인 시도다.
랄프 로렌 랄프스 커피
커피는 일상의 어떤 영역에서든 활용도가 높다는 걸 아는 랄프 로렌은 감각 있는 젊은 세대를 그들만의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로잡는다.
랄프스 커피는 랄프 로렌이 운영하는 커피숍이다. 2015년 뉴욕에 처음 문을 열었고, 다른 도시의 매장에서도 랄프 로렌의 커피 메뉴와 클래식 칵테일, 시그너처 바 스낵을 즐길 수 있다. 이미 해외 몇몇 도시에서는 카페 복합형 매장 ‘랄프스 커피’가 자리 잡았다. 뉴욕·시카고·런던·파리 등 서구 지역뿐만 아니라, 홍콩·베이징·도쿄·교토에도 매장이 영업 중이다. 매장 분위기는 모두 우아하고 세련된 승마 클럽 분위기를 재현했다.
패션 브랜드가 카페를 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의류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을 포괄해 더 많은 소비자와 만나기 위함이다.” 김민지 푸드 칼럼니스트가 설명했다. “옷을 비롯한 패션 브랜드는 어쩌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활용해 우리 생활과 밀접한 F&B 장르까지 펼치고, 랄프 로렌을 경험하게 하며, 브랜드의 힘을 더욱 끌어올리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라는 설명도 더했다. 먹고 마시는 일이야말로 삶의 필수 요소다. 더불어 커피는 현대인에게 당연한 음료가 됐으며, 무엇보다 접근이 쉽다. 랄프스 커피 또한 이러한 지점을 파고든 게 아닐까?
“어떤 도시에서 먹고 마시는 일은 지역의 로컬 문화와 직결된다. 니즈에 부합한 지역에 매장을 열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한껏 표현해 사람을 모으고 무엇보다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판다는 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장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민지 푸드 칼럼니스트가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커피는 대체로 옷보다 싸고, 훨씬 자주 소비할 수 있다. 카페 복합형 매장은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커졌다. 젊은 패션 소비자들이 단순히 의류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 자체를 향유하는 소비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이선영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는 “패션 시장에서 잘 팔리는 옷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브랜드 팬덤을 견고하게 다지면, 브랜드의 히스토리가 생기고, 수명이 연장되기도 하며, 더 큰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카페는 거의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특히 MZ세대에게 커피와 카페는 일과 일상 어떤 영역에서든 활용도가 높다. 랄프 로렌은 감각 있는 젊은 세대를 그들만의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로잡으려는 시도로써 랄프스 커피를 론칭했고, 세계 곳곳에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는 서울점 오픈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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