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창문 앞에 서면, 왼편에 남산타워, 가운데에 용산 그랜드 하얏트 호텔, 오른편에 롯데타워가 보인다. 층이 높아 하늘과도 맞닿아 있다. 침대에 누우면 하늘만 보이는데, 어쩐지 뿌옇다 느낄 때면 앞서 말한 세 곳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럴 때마다 나의 ‘시골살이’에 대한 꿈은 커져간다. 한국에선 찾기 힘든 황량한 사막이나 울창한 숲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살고 싶다. 미세먼지가 경관을 삼켜버릴 걱정 없고, 무엇보다 적막하니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법하다. 서울, 넓게는 한국에 살지 않더라도.
이달 취재한 건축가 세 명은 숲속에 주거공간을 지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의뢰인이 요구한 건 생태계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건물을 짓는 거였어요. 그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굴착을 최소화했어요.” 세 건물은 땅을 거의 파내지 않고, 나무가 울창한 숲을 훼손하지 않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숲에 의지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한다. 피톤치드가 풍부한 숲은 좋은 요양지이기도 하다. 이 요양지에서 살고픈 의뢰인을 위해 각각 캐나다, 멕시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달려간 세 건축가의 건축물이다.
Casa Las Olas
백사장에서 정글 숲까지
도미니카공화국에 위치한 ‘카사 라스 올라스’는 뉴욕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 ‘영 프로젝트’가 설계했다. 카사 라스 올라스는 무성한 열대 정글과 백사장을 그대로 살린 주거형 공간으로,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부지 중심에 위치한 ‘리트리트 하우스’는 2만 제곱피트에 이르는 주택이며 넓은 중정이 특징이다. 태양의 방향과 통풍을 고려하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중정의 역할은 상당하다. 중정을 둘러싸고 건물이 이어져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중정을 향한 벽면은 야자나무 거푸집에 흰색 콘크리트를 부어넣어 완성해 넓어 보이는 효과까지 준다. 중정의 나무와 거의 맞닿은 지붕은 기하학적인 물결 모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영감받아 설계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바다와 인접해 기후 현상에 취약할 수 있다. 그래서 영 프로젝트는 건물이 취약점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생활 공간의 구조에 변주를 줬다. “1층은 외부와 내부가 이어지는 반면, 생활 공간은 2층에 두어 파노라마 디자인을 구현했습니다. 동시에 해일로부터의 위험을 없앴어요.” 영 프로젝트 관계자 대니얼이 말했다.
리트리트 하우스에서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오직 수풀 속에 세워졌다. 건물 표면이 매끈하고 각진 형태로, 전면 유리창을 통해 피톤치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해안에 인접한 하얀 ‘록 하우스’와 ‘요가 파빌리온’은 명상에 최적화된 건물이다. 록 하우스의 디자인은 자연적으로 침식된 암석이나 기이한 폐허에서 영감받았으며, 지붕은 유연한 곡선 형태다. 의뢰인의 지향점인 ‘도시 생활의 피난처’를 완성시켰다 .
Atelier C
단조로운 생태
“의뢰인은 사무실을 마련하고 싶어 했어요. 숲속에요.” 건축가 ‘니콜라 프랑쾨르’가 말했다. 의뢰인 부부의 직업은 작가와 사진가 겸 음악가라고 했다. 부부는 창작 활동을 위한 작업실을 캐나다 이스트먼의 작은 숲에 짓기로 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주변 숲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 ‘아틀리에 C’는 일본 고대의 기술인 숯을 입힌 나무(일본어로 슈기반)로 건축했다. 다른 말로 그을린 삼나무라고 한다. 햇빛에 표면이 퇴색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이다.
천장과 벽은 흰색 사시나무로 지었다. 외부는 어두운 색감으로 덮인 반면, 실내 인테리어는 밝은 톤을 유지했다. 창은 액자형 대신 직사각형으로 내어 고전주의 건축에서 많이 보이는 주랑을 떠올리도록 했다. 건물 돌출부는 남쪽에 위치하도록 설계했다. 여름에 햇빛의 실내 유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북쪽은 층고가 낮은 구조다.
이 집의 북쪽에는 의뢰인의 사진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를 마련했고, 남쪽에는 음악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니콜라 프랑쾨르는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아틀리에 C의 특징은 ‘야생’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숲 한가운데 위치한 만큼 야생동물을 마주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의뢰인의 취지에 꼭 들어맞는 아틀리에 C다.
Paradero Hotel
사막과 선인장
멕시코 토도스 산토스에 위치한 ‘파라데로 호텔’이 위치한 곳은 나무는 울창하지만 숲은 아니다.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사막이다. “사막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땅입니다. 바람과 계절이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재형성하죠. 바람이 불면 지형이 깎이고 변형돼요. 그러한 바람에서 영감을 받아 유연한 곡선 형태로 건물을 설계했어요.” 건축가 ‘야샤르 옉타호’가 말했다.
사막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건 바람만이 아니다. 건조한 기후를 버티며 자라난 식물들의 형태와 색이 사막을 미적으로 변형시킨다. 따라서 호텔 조경 디자인을 맡은 ‘폴렌’ 스튜디오는 온실에서 1년 이상 식물 고유종을 재배해 호텔 중심과 주변에 심었고 광활한 선인장 숲을 이루었다. 이곳은 농경지로 사용되던 부지로 유네스코 생물권보호구역이기도 하다. 호텔 설계가 생태계를 보존하는 건축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것.
파라데로 호텔의 크기는 1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외벽은 일정한 스트라이프가 음각된 디자인이다. 건물 중앙에는 중정이 있고 사막을 바라보는 형태로 다이닝 공간을 마련했다. 호텔 스위트룸에는 완벽하게 트인 테라스가 있어 사막 뒤편의 산과 목초지를 조망할 수 있다. 화장실 바닥은 자재랄 것 없이 사막 모래 지형이 그대로 이어졌으며, 문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방이 뚫려 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람들이 장기간 머물러도 좋단다. 사막의 건조함을 살리고 싶었다는 야샤르의 안목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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