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로렌
가장 랄프 로렌다운 컬렉션을 선보이기에 뉴욕 현대미술관은 더없이 완벽한 무대였다. 모던하고 우아한 양식의 공간과 고귀한 예술품들, 그 사이에 한껏 정중하고 호화로운 랄프 로렌의 의상들은 고혹적인 장면을 그려냈다. 이번 컬렉션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날렵한 테일러드 실루엣의 시대를 초월하는 블랙&화이트 스타일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남성복 패턴인 글렌 플레이드와 핀 스트라이프가 컬렉션 전반을 이뤘다. 빈틈없는 정중함,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무드, 모델들의 느긋한 워킹과 옅은 미소까지 그야말로 이상적인 랄프 로렌식 서사로 가득 채워진 화려한 뉴욕의 밤이었다.
발렌시아가
현실적인 미래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발렌시아가 겨울 컬렉션의 주제는 ‘360도’. 보호 유리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360도 전망의 광대한 무대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거대한 기념품 스노볼같이. 발렌시아가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런 계절의 자연적인 풍경이 희귀해지고 날씨를 기계로 조작하거나 디지털로 렌더링될 거라고 예상했다. 인공적으로 연출한 눈보라 속을 모델들은 힘겹게 지나갔다. 스트레치 드레스나 보디수트는 글러브, 슈즈, 팬츠, 레깅스 등과 제각각 결합되어 새로운 실루엣을 그려냈다. 터틀넥, 팬츠, 저지 후디 같은 웨어러블한 의상들은 부분적으로 파괴되거나, 오버사이즈로 재탄생되었다. 아우터웨어는 전면이 막힌 가먼트로 재해석됐다. 청바지를 활용해 톱을 만들었고, 수트와 트렌치코트는 쉽게 뭉쳐서 포장할 수 있도록 마구 구겨진 주름이 잡혀 있었다. 특히 검정 쓰레기봉투에서 영감을 받은 트래시 파우치가 눈보라 치는 상황을 왠지 리얼하게 느껴지게 했다.
지방시
매튜 M. 윌리엄스는 아메리칸과 파리지앵의 감성이 상호작용을 이루는 파워풀하면서도 세련된 여성미, 그런 여성 옆에 무심한 듯 시크한 본능을 타고난 동시대적인 남성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시즌 지방시는 일상복을 기본적인 요소들로 활용해 평범해 보이는 것들을 평범하지 않게 승격시키고, 일상 속에서의 포멀함을 연출했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흐르는 넉넉한 실루엣을 바탕으로 길이가 다른 티셔츠를 겹겹이 레이어링하는 방식이 줄곧 등장했는데, 검은색으로 통일한다거나, 베이지색 오버사이즈 코트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온통 검은색으로 컬렉션이 진행되는 중에 디테일 하나 없이 슬림한 흰색 톱, 통 넓은 워싱 데님 팬츠로만 이뤄진 간결한 룩이 불현듯 등장했는데, 순간 묵직한 흐름을 산뜻하게 환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버버리
런웨이 쇼 직후, 가슴에 닿을 듯 과장된 하이웨이스트 팬츠가 SNS에서 엄청난 이슈였지만, 그보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버버리만의 풍부한 역사에 바탕을 둔 하우스 코드였다. 명확히 말하자면 영국의 정체성을 이루는 다채로운 요소와 브랜드의 하우스 코드인 ‘양면성’의 결합. 도시와 시골, 화려함과 펑크함, 왕실이 떠오르는 근엄한 요소와 하위문화의 요소를 대비시키면서 클래식한 영국 관습과 버버리만의 정체성을 색다른 반복, 제작 기법,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이를테면 영국 하위문화의 유니폼이라 할 수 있는 항공 재킷, 카 코트, 보머 재킷에 골지 니트, 시어링, 인조 퍼 소재의 오프숄더 패널을 더해서 새로운 구조로 변신시키는 식. 럭비 스트라이프 폴로 셔츠나 코튼 포플린 셔츠에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매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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