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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 없는 힙스터의 성지

“서울에서 새로운 힙한 지역을 찾고 싶다”는 문장에서 시작됐다. 성수동, 해방촌, 연희동 등 포화 상태인 곳 말고 또 새로운 곳 어디 없을까. 힙스터들이 발굴한 지역으로 가야 하나. 일단, 그래서 힙스터들은 어떤 걸 좋아하는데?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딘데? 결국 질문은 꼬리를 물고 ‘요즘 힙스터는 어떤 사람들’에 도착했다.

UpdatedOn April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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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한 일간지 기자가 메신저로 브런치 링크를 보내왔다. 제목은 ‘서울에 서식하는 K-힙스터의 생태와 정의’. 생태 연구학자라고 밝힌 저자는 “지난 10년간 서울 이태원, 홍대, 연남동, 성수동 등에 서식하는 다양한 힙스터들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깊은 영감을 받은 침팬지 생태 연구학자 제인 구달 박사의 연구 방식을 적용해 그들의 생태와 문화, 개체에 대한 특징을 기술한 이 논문을 공유하려고 한다”라며 글을 시작한다. 저자는 K-힙스터들을 “예술을 하는 멋진 무언가”가 되어 스스로 자존감도 높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있는데 재능은 없고 노력하기도 싫고 무척이나 게으른 종족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주요 서식처는 성수동, 홍대, 연남동, 이태원, 해방촌 등지인데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예술적 허영을 과시하면서, 타인이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낸 작품에 대해 무분별하고 거침없는 비판을 일삼는 것으로 자존감을 끌어올리려 한다고. 끝으로 이런 질 낮은 K-힙스터 지망생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며 비장하게 글을 마무리한다.

평균 하루 조회수 100 언저리였던 저자의 글을 5만 명 이상이 공유했다. 하지만 이 글을 향한 공감과 함께 또 다른 격한 분노는 저자의 속을 꽤나 타게 했나 보다. 이후 엄연한 직업을 가지고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며, 더 이상 퍼나르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후속 글까지 올라온 걸 보니. 사실 그가 진짜 박사인지 이 글이 논문인지는 확인 전이다. 다만 ‘힙스터들의 성지’로 가득 찬 지금 서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하지만 이들을 끝까지 ‘힙스터’라고 명명한 것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힙스터’라는 용어가 국내 주류 언론에 간간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2015년 즈음이다. 그 당시에는 친절히도 그들이 출현하게 된 시대상도 함께 소개된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최근에 오픈하는 신생 공간을 소개하는 보도자료엔 ‘힙스터들의 성지’를 붙이는 게 필수 가이드라인인가 싶을 정도로 낯뜨거울 지경이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힙스터고 이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N+1>은 ‘이제는 말할 시간이다’라는 모토 아래 21세기 미국 지성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교육 및 예술, 정치의 혁신을 주장하는 저널이다. 그들이 2011년 발행한 책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힙스터’ 현상의 역사와, 그것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미를 다루는 최초의 보고서다. 하지만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은 ‘힙스터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뉴욕 뉴스쿨에서 사회인류학적 연구 심포지엄까지 열리고 이후 작성된 에세이들로 구성된 책까지 나왔다는 것 자체였다. 사실 이미 서구권에서 힙스터는 부정적인 의미와 함께 힙스터로 불리는 것을 거부한 지 오래다.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 <N+1>을 “일부 언론으로부터 ‘힙스터 저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표현을 적어놓은 것도 이와 같은 양가적 입장에서 한 자기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힙스터’란 단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물질주의, 군국주의 등 기성 가치관에 반대하며 하위문화를 받아들이고 생산했던 당시의 중산층과 지식층, 젊은 예술가 즉 ‘비트 세대’가 확산되던 시기다. 이들은 흑인이 권력에 의해 정보와 지식을 차단당하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끼며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 흑인이 가장 먼저 아는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20~40년대 재즈, 스윙 음악을 즐겨 들으며 흑인 문화를 수용했던 일명 ‘하얀 흑인’들을 ‘힙(사정에 밝은, 정통한)스터’라 부르게 된다. 이런 흐름은 1960년대 히피(Hip-pie)로 이어진다. 초기 히피문화는 틀에 박힌 가치보다 개성 표현을 추구하고, 기성사회의 낡은 규범을 해체함으로써 그들만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정신은 1999년 반세계화 운동을 기점으로 응집되며 다시 출현한 ‘현대 힙스터’로 재탄생된다.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미국 젊은이들이 가세한 후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미디어 등의 기술에 힘입어 순식간에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산업의 추세를 바꾸는 독립 문화와 스몰 비즈니스, 하이퍼 로컬리즘과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부모 세대와 달리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어진 밀레니얼 세대가 자아와 동시에 자기다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익숙했던 것들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이 기존의 관습이나 유행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적 다양성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반문화’이지 외연이 아니다.

최근 가장 ‘핫’한 공간으로 떠오른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한편에는 멍 때리기를 주제로 한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탈사회적 행동 양식인 ‘히피 무브먼트에서 기인한 멘털 헬스’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꼭 필요했던 마음챙김의 명상이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울의 힙스터들도 점차 힙스터의 성지로 소개된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피해 마음챙김을 하려 하지 않을까. 동네 아지트 혹은 지인의 작업실이나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말이다. 혹은 서울의 근대화가 시작된 정동길이나 창덕궁, 20년째 그대로인 양재천 카페거리와 같이 한적하면서도 걷고 사유할 수 있는 거리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유행이 된 시대에는 ‘자기다움’을 소비하는 삶의 방식이 결국 비슷해져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혹은 자신들의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우월감을 갖는 일종의 ‘스노비즘(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주관 없이 남의 취향을 따라 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두드러진다. 게다가 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이들이 초기 소비하는 브랜드나 공간, 지역의 생애주기는 빛의 속도로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유명세를 타지 않고 오래 지속 가능하기를 원하는 소위 힙스터 생산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힙스터에 주의하라>에서도 그래서 ‘힙스터가 누구인가’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서울에는 힙스터란 없다. 다양성을 열망하는 ‘힙스터주의’로 계승될 뿐이다. 힙스터 생산자들도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지역을 발굴하고 점차 세포화되고 있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에 진심이 된다면 서울 도시 풍경도 조금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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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남윤주(에딧시티프로젝트 대표)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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