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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빛나는 곳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의 작업실을 찾았다. 요리를 스타일리시하게 만들어주는 비장의 장비들도 발견했다.

UpdatedOn March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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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페퍼

스튜디오 페퍼는 기획, 촬영, 레서피 개발, 디자인, 스타일링부터 콘텐츠의 완성까지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콘텐츠 스튜디오다. 사진 속 인물은 페퍼 홍서우 실장의 든든한 오른팔, 밍키와 대니다.

대리석 타일로 마감한 주방. 아일랜드 조리대 위에는 요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대리석 타일로 마감한 주방. 아일랜드 조리대 위에는 요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대리석 타일로 마감한 주방. 아일랜드 조리대 위에는 요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아치형 공간을 넘어서면 펼쳐지는 은밀한 식재료 창고.

아치형 공간을 넘어서면 펼쳐지는 은밀한 식재료 창고.

아치형 공간을 넘어서면 펼쳐지는 은밀한 식재료 창고.

결실을 이루는 장

서로를 부르는 명칭은 ‘밍키’ ‘클레어’ ‘대니’ 나무 식탁에선 레서피를 연구하고, 창가를 바라보며 사과를 씻는다. 아일랜드 식탁에선 체리와 직접 디자인한 그릇이 나뒹군다. ‘스튜디오 페퍼’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다채로운 요리 콘텐츠가 탄생하는 작업 공간에도 묻어 있다. 분주한 주방을 마주본 곳엔 격자무늬로 몰딩한 통 유리, 그 너머에는 아이맥들이 옹기종기 놓인 풍경. 작업실이자 주방이자 사무실인 이곳은 온통 새하얗다. 주방을 설계할 당시 화이트와 우드 톤의 모던 유러피언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원했고, 그대로 구현해냈다. 원색적인 과일, 형형색색의 요리와 잘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새하얀 가운데 포인트는 은은하게 빛나는 대리석 타일이다.

“스튜디오 페퍼의 주방은 메인 키친과 서브 키친으로 나뉘어요. 메인 키친은 대리석 소재 아일랜드형 주방으로, 공간감 있으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겨요. 주로 쿡웨어나 주방 가전제품 촬영을 위한 스폿으로 활용하죠.” 푸드 스타일리스트 홍서우가 말했다.

그의 의도는 서브 키친에도 담겼다. 서브 키친은 화이트와 그레이 톤의 깔끔한 공간이다. 국자 같은 조리 도구들이 촘촘히 걸려 있는 여느 주방과 달리 필요한 도구만 보이는 곳에 두었다. 나머지 조리 도구들과 다양한 식재료나 향신료도 아치형 벽 뒤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의외의 물건이 주방 곳곳에서 발견됐다. 두툼한 책이다. 펼쳐져 있거나 쌓여 있는 책들은 스튜디오 페퍼 주방의 ‘히어로’라고 한다.

“정갈한 플레이트를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차만별로 갈리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핵심은 플레이트의 높낮이예요. 주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라고 하면 칼이나 접시를 생각하겠죠. 하지만 이곳에선 책과 도마가 많고, 자주 쓰여요. 책이나 도마를 여러 개 적층하여 높이감을 만들고, 위아래에 밸런스를 맞춰 식재료나 접시를 배치하면 조화로운 구도가 만들어지거든요.”

스튜디오 페퍼의 두 개의 주방은 화이트 무드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양한 연출을 하기에는 하나의 콘셉트가 주는 한계도 있을 터. 하지만 주방을 벗어난 공간으로 연출되는 기능도 톡톡히 한다. 과감하게 벽지를 도배하고, TV 선반과 좌식 테이블을 활용하면 거실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어떤 소품, 가구, 장비를 놓아도 원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스튜디오 페퍼라는 주방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기능적 측면의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페퍼의 멤버들은 이곳을 새로움을 위한 기획과 연구가 하나의 멋진 콘텐츠라는 가시적인 결실을 이루는 장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소통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이자 신선함을 멤버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애정과 가능성이 무한한 공간이에요.” 홍서우는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일종의 항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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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선

오랜 시간 푸드스타일리스트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에디터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현재 주방 용품을 활용한 레서피를 개발하고 브랜드와 커뮤니케이션한다.

김보선이 애정하는 튼튼한 선반과 실용적인 개수대.

김보선이 애정하는 튼튼한 선반과 실용적인 개수대.

김보선이 애정하는 튼튼한 선반과 실용적인 개수대.

따로 모아둔 스테인리스 조리 기구.

따로 모아둔 스테인리스 조리 기구.

따로 모아둔 스테인리스 조리 기구.

단독주택을 개조하여

김보선의 작업실은 연희동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작은 마당에는 새빨간 그릴이 놓여 있고 봄이 오면 그곳에서 요리한다. 실내 1층에는 소박한 거실과 책 가지와 노트로 가득 채워진 작은 방, 가장 안쪽에는 도기와 그릇, 각종 주방 소품이 잔뜩 쌓여 있다. 그중 가장 넓은 공간인 안방을 주방으로 개조했다. 여느 스튜디오와 비교하면 크기가 협소하고 탁 트이지 않았다. 그래서 김보선의 주방은 이리 돌고 저리 돌아도 요리할 수 있다.

단독주택을 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널찍한 공간이 주는 공허함을 없애고 싶어서, 주택가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싶어서, 집과 다를 바 없는 역할을 주고 싶어서다. 모든 일이 주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움직이기 편한 동선에 맞춰 직접 디자인했다. 중심에는 인덕션과 수납장으로 구성된 아일랜드 조리대를 두고, 두 변을 주방이 둘러싸고 있다. 이 주방의 핵심은 ‘장비의 가짓수’와 ‘환기구’다. 개수대와 가스레인지는 두 대, 냉장고는 세 대나 자리했다. 소박한 공간이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다. 또한 주방의 히어로 역할을 하는 환기구는 가정용이 아닌 업소용을 두 대 설치했다. 창이 크지 않고 안방으로 쓰던 공간이라 원활하지 못한 환기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요리할 땐 주방이 연기로 가득해요. 업소용은 가정용 환기구보다 몇 배는 더 강해요.” 김보선이 가장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김보선은 주방의 실용성에 가장 큰 가치를 뒀다. 벽에 붙어 있는 선반은 식재료로 가득하지만 어떤 것이든 툭 놓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제작했다. 개수대도 보편적인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로 골랐다. 개수대 소재로는 도기의 선호도가 가장 높지만, 그릇이 깨지기 쉽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한쪽 구석에는 길고 날카로운 젓가락이 한가득 쌓여 있다. 이는 이 주방의 또 다른 히어로다. 다시 말해 김보선의 무기다. 푸드 스타일링을 위해 깨 하나를 옮기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젓가락의 모양과 소재, 각도 등에 맞춰 다양하게 구비해뒀다. 어디서든 젓가락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김보선 집의 주방은 소박하다. 정확히 말하면 주방이 아닐 수도 있다. 싱크대는 책과 짐으로 쌓여 있고, 집에서 하는 식사는 샐러드나 빵이 전부다. 작업실 근처에 위치한 집은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달리 말해 작업실은 그저 작업실에 그치는 게 아닌 개인 주방과 생활 공간의 역할도 한다는 의미다. “제 주방을 정의하면 사람과 함께하는 곳이에요. 일만 하는 곳이 아니죠. 사람들을 모아 맛있는 요리를 내어주는 아지트가 될 수도 있어요. 일을 하며 다양한 관계도 형성돼요. 공통의 식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는 공적으로 만나도 사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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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리다 스튜디오

김은아 실장과 심승규 디렉터를 포함, 여러 명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이미지, 영상 촬영 및 대관이 이루어진다.

화이트 타일과 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주방.

화이트 타일과 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주방.

화이트 타일과 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주방.

빛이 잘 드는 스폿이자 수납공간.

빛이 잘 드는 스폿이자 수납공간.

빛이 잘 드는 스폿이자 수납공간.

목가적인 콘셉트의 주방.

목가적인 콘셉트의 주방.

목가적인 콘셉트의 주방.

고운 상차림을 위하여

차리다 스튜디오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기 편리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의도가 스튜디오 내부에 담겨 있다. 또한 이미지나 영상으로 연출했을 때 튀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차리다 스튜디오는 한남동을 제외하면 두 곳이 더 있다. 한남동 스튜디오는 실내 공간을 실용적으로 활용했다. 두 개 주방의 양옆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 있는데, 주방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이자 해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 대비한 조명 창고 역할을 한다. 김은아가 스튜디오를 만들 때 가장 섬세하게 고려한 점은 ‘햇빛이 잘 드는 것’이다. 자연광이 감도는 주방에 대한 로망을 가졌던 김은아는 날씨가 좋으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을 택한 건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차리다 스튜디오의 아일랜드 조리대는 바퀴가 달렸다. 어떤 위치, 방향으로든 옮겨 다니며 사용할 수 있도록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서로 마주 보는 주방은 전혀 다른 콘셉트로 설계했다. 하얀 벽에 하얀 타일, 하얀 아일랜드 조리대가 덩그러니 놓인 주방과, 목가적 색감의 주방으로 나뉜다. 목가적인 주방에 설치한 원목 수납장의 색감을 고르는 데 자그마치 두 달 넘는 기간을 투자했다. 이질감이 없고, 누렇거나 붉은 빛을 띠지 않는 원목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문을 기점으로 왼쪽 편에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다양한 소재와 색감의 천, 도자기 그릇, 커틀러리, 빈티지한 소품들이 높게 쌓여 있다. 없는 게 없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길을 걸으며 지금껏 사고 모은 것들로, 남대문, 백화점, 공예 페어, 유럽 등 출신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주방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조리 기구는 오직 칼과 도마다. 김은아는 차리다 스튜디오 주방의 히어로는 ‘칼’과 ‘도마’라고 했다. “특별한 칼을 사지 않아요. 칼은 관리하기가 아주 어렵거든요. 날을 매일 직접 갈아줘야 하고, 50개가량의 칼을 갈아야 할 때는 전문가가 직접 와서 하루 종일 관리해줘요. 그럼에도 손상이 잦아 칼을 가장 자주 교체해야 하고요.”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주방은 목가적인 콘셉트의 주방이다. “유럽 소품을 갖다놓으면 유럽 주방이 되고, 한국 소품을 놓으면 한국적인 주방이 되죠. 어떤 소품을 놓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실용적이죠.” 주방에 서 있는 모습을 꿈꿔온 김은아에게 차리다 스튜디오는 집보다 가까운 곳이자 직업의 꿈을 펼치게 만들어준 공간이다. 차리다 스튜디오의 꿈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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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요리책, 화보, 지면 및 영상 광고, SNS 콘텐츠에 사용되는 음식을 더 맛있어 보이도록,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한다. 갖가지 칼이 그의 대표적인 무기다.

여행하며 얻어온 푸른 접시들.

여행하며 얻어온 푸른 접시들.

여행하며 얻어온 푸른 접시들.

원목으로 만든 수납장, 조리 도구, 선반.

원목으로 만든 수납장, 조리 도구, 선반.

원목으로 만든 수납장, 조리 도구, 선반.

밀리의 주방

밀리의 주방은 독특하다. 방대한 크기의 스튜디오로, 목가적인 감성과 유러피언 감성이 공존한다. 대개 밝은 가정집 형태의 주방을 설계하지만, 그의 주방은 그렇지 않다. 회색과 원목 중심의 구조물 및 수납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 주방을 연출하지 않은 이유는 일터의 성격을 살리기 위함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에게 가장 주된 공간이기에 직업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는 의도다. 이곳으로 오기 전, 밀리의 작업실은 아주 작았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도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다음 작업실을 마련하기 위한 고려 사항 중 가장 중요한 점이 크기였고, 현재 넓은 스튜디오를 구석구석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 벽 한쪽에는 러그와 소파를 두어 작은 방의 느낌을 구현했고, 한쪽은 식물로 빼곡히 채웠으며, 커다란 대리석 기둥 옆에는 아치형 창문 모형이 우두커니 서 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요리를 촬영해도 순조로울 수 있도록.

원목 수납장과 회색 조리대로 구성된 이 주방의 히어로는 ‘그릇’과 ‘칼’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주방 옆의 그릇장은 빼곡하고 높다. 다채로운 색의 그릇들은 모두 여행에서 얻은 것이다. 다른 소품은 소박하지만 그릇, 냄비, 잔은 화려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많은 그릇이 한가득 쌓여 있어 복잡하지만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그만큼 자주 쓰고 소중하니까요. 다양한 쓰임새의 칼도 많이 구비해뒀어요. 물론 매일 요리하는 직업이기에 칼이 중요하지만, 식칼을 포함해 과일칼, 작은 나이프 등 종류별로 갖춘 게 특징이에요.”

팬트리 공간을 최소화하고 닫히는 수납장을 활용하는 다른 스튜디오와 달리, 밀리의 주방에는 팬트리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공간에서 주된 조리 도구는 냄비라고 여겨도 손색없다. 그릇장 한쪽에 두툼하게 쌓여 있는 냄비는 밀리가 지금까지 요리한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요리했고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던 그녀는 현재 전문가로서 자리 잡았다. 그는 주방을 ‘치유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요리로 극복했다는 그의 주방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됐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특성상 선 채로 요리와 일을 하며, 제법 큰 키의 그는 키에 맞춰 조리대를 주문 제작했다. 홀로 주방들을 꾸려온 그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10대 때부터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요리를 했어요. 그래서 주방은 제게 치유와 극복의 공간이에요. 그런 공간을 이젠 혼자가 아닌, 곁에 머무는 직원들과 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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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정철환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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