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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박미진 <지금 우리 학교는>
박미진. 효산고등학교 3학년.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여학생 ‘통’으로 추정. 교내에서 흡연하는 배짱과 동급생 학우가 좀비가 되자 망설임 없이 단번에 사살시키는 두둑한 담력을 보유. 공격적인 성향과 다소 부족한 언어 소통 능력을 ‘씨X’로 해소하는 효율적인 자기절제 능력도 보유. 운동부도 아니고, 친구나 무리도 없고, 배경 설명도 없는 ‘갑툭튀’ 캐릭터. 설정만 두고 보면 일찍 죽거나, 서사에서 ‘트롤’ 역할을 해야 마땅한 캐릭터다. 하지만 박미진의 존재는 학교 탈출 서사를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끈다.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만 그녀는 제 몫을 하고, 동료들도 구한다. 다른 일행과 조우한 이후 갈등을 일으키지만 말다툼에 불과하다. 전장에서 그녀는 나무랄 곳 없는 전사다. 학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대학입시에 집착하는 캐릭터라는 것도 반전. 꾸준히 자기 분량을 챙기며 결말에 이를수록 비중이 커진다. 주인공 무리를 제외하고, 심심해질 수 있는 주변 학생들의 서사에 입체감을 만든 캐릭터다. 원작에서 박미진의 역할은 더 크고, 중요하다. 원작에선 ‘먼치킨’ 캐릭터에 가까웠으나, 드라마에선 힘을 다소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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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강새벽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의 히로인이다. 설정이 독특하다. 돈을 벌어 어린 남동생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이다. 돈을 모아 보육원에 있는 동생을 데려오고, 북한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한국에 데려오는 게 목표다. 직업은 사양 산업이 된 지 오래인 소매치기. 전망이 어두운 분야인지라 돈벌이가 시원찮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에 어머니가 있는 그녀의 상황을 이용해 돈을 떼먹으려는 자들도 있다. 강새벽의 공격적인 성향과 경계적인 태도는 그녀가 험난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살의로 가득한 모습과 달리 이야기 후반부에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 따뜻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진다. ‘겉은 박삭하고 속은 촉촉한’ 캐릭터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상처 있는 캐릭터 중에는 냉철한 태도가 사실은 자기방어 기제였다는 것으로 반전을 꾀하는 경우는 흔하다. 강새벽도 같은 맥락의 캐릭터이지만 탈북자라는 설정이 더 해지며 신비감을 갖는다. 북한이라는, 폭력이 난무하는 미지의 세계와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탈북 과정의 아찔한 이야기가 강새벽의 캐릭터에 덮여진다. 그녀는 탈북자라는 설정만으로 우리가 잘 모르는, 몰라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갖는다. 또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탈북자 캐릭터들은 넘사벽 ‘전투능력’(<공조> <의형제> <베를린>)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강새벽의 전투력이 강할 것이라 의식하게 만든다. 뻔할 수 있는 캐릭터에 탈북이라는 키워드를 더해 변주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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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동욱 <지옥>
입에 착착 감기는 멘트 “화살촉, 화살촉, 화살초옥!”을 창시한 인물이다. 새진리회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가리켜화 ‘화살촉’이라고 하는데, 이동욱은 <지옥> 세계관의 인터넷 방송 BJ로 나온다. 소위 ‘사이버렉카’인 셈. 신의 뜻을 대신한다는 자부심으로 새진리회의 교리를 전하고, 무고한 사람을 저격하고, 신상털이를 하는 인물이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BJ들이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의 비중이 크진 않았다. 해당 사건이 세상에 화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강조하는 역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이버렉카의 영향력은 크다. 정보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유튜브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수많은 고발성 영상이 생산되고, 자극적인 사이버렉카의 영상들은 많게는 수십만 조회수에 달한다. 이동욱은 그런 현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지옥>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 드라마다.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 정진수가 제시한 관점, 이후 새진리회가 현상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진경훈 형사의 관점, 배영재 PD의 관점, 민혜진 변호사의 관점 모두 다르다. 새진리회는 사회 구성원이 가진 다양한 관점을 무시하고, ‘신의 뜻’으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이 동욱 같은 맹목적인 추종자들이 새진리회의 정의를 세상에 뿌린다. 즉, 이동욱은 사이버렉카로 대표되는 2020년대 프로파간다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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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조석봉 <D.P.>
한국 드라마에서 약자는 대체로 선하게 다뤄진다. 선한 인물이 약자로 그려질 때 사건의 충격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D.P.>에서 조석봉은 가장 큰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장 선한 인물로 표현된다. 유순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황장수 병장 같은 인물들로 채워진 폭력적인 세계에서 온순한 오타쿠는 생존하기 어렵다. 조석봉은 군 조직에서 여린 심성의 인물이 어떻게 악인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식은 군대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측면을 묘사하기 위해 이전부터 활용되어왔다. 내무 생활의부 조리를 고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창> <폭력의 씨앗>, 웹툰 <노병가> 등 많다. 하지만 피해자가 복수를 감행하고그, 복수를 밀도 있게 쫓아간 경우는 많지 않다. 후반부에서 조석봉은 유약하고 심성 착한 오타쿠이지만, 전국체전 금메달의 유도 유망주라는 영웅서 사 설정이 더해진다. 결말의 복수극을 위한 밑간 작업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야기는 조석봉의 복수를 막기 위한 액션활 극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스릴러와 액션 활극의 끝은 허무한 결말이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된 상태로 끝난다. 그럼에도 국방부 시계는돌 아가고, 조석봉 같은 사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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