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대 한국 힙합의 중심엔 <쇼미더머니>가 있다. 사실상 ‘<쇼미더머니>=한국 힙합 신’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지 오래다. 매년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현실 부정 혹은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엠넷의 간판으로 거듭났던 시즌3(2014) 이후, 한국 힙합은 단 한 번도 <쇼미더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난 적 없다. <쇼미더머니>가 래퍼들의 살림을 불려줬고, 십대들의 장래 희망 난에 래퍼를 추가시켰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 힙합은 매우 성공적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왜 아니겠는가? 아티스트, 산업 관계자, 팬 모두가 행복해하는 중인데. 하지만 번지르르한 겉과 달리 안은 곳곳이 곪아 있다. 현재의 한국 힙합을 보는 시선은 세 부류다. 첫째, 대중화에 성공하고 발전했다. 둘째, 시장은 커졌지만 문화적 부분에서의 성장은 아쉽다. 셋째, 탄탄하지 못했던 밑바탕과 거듭된 왜곡 탓에 바닥을 드러냈다. 첫째나 둘째의 주장을 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정작 실상은 세 번째에 가깝다. 엠넷이 아무리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표 음악 채널이라 해도 프로그램 하나에 신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은 몹시 기괴하다. 어느 힙합 신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프로그램이 온갖 허위 정보와 뒤틀린 가치관을 살포해왔다. 래퍼들마저 기꺼이 동참했다. 제작진과 아티스트가 합심하여 지속적으로 뿌린 왜곡이란 균은 신을 완전히 잠식하여 각종 혐오와 거짓이 난무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에만 근거하여 예시를 몇 개 들어보자.
그들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행위인 디스(Diss)를 힙합 문화의 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디스가 힙합계에서 유독 빈번하게 일어나는 건 맞지만, 문화 요소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힙합 문화의 일부로 취급되는 건 랩 배틀이다. 더 뜨악한 건 그 다음이다. 그들은 작위적으로 판을 깐 다음 원하든 원치 않든 래퍼들이 서로를 향해 명분 없는 디스를 날리도록 강권한다. 심지어 같은 크루, 혹은 레이블 식구끼리 붙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힙합에서의 일명 ‘패거리 문화’를 몰랐거나 무시한 처사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애초에 ‘돈 좀 내놔 봐’란 프로그램의 제목부터 거짓말 아래 지어졌다. <쇼미더머니>를 탄생시킨 한동철 PD는 2014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Show Me The Money’라는 문장에 관해 “먹고사는 문제가 고민이었던, 돈에 한이 맺혔던 그들(*주: 흑인 래퍼들)의 심정이 반영된 말이 관용구처럼 힙합에 정착하게 된 셈”이라고 밝혔다. 이 말 전체가 실소를 자아내는 거짓말이다. 익히 알려진 힙합 관련 원서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아티스트의 인터뷰 어디에도 이런 설명은 없다. 가사에서조차 ‘Show Me The Money’란 라인을 보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매번 이런 식이다. 제작진이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는 정보와 머릿속에서 내키는 대로 재조합한 지식을 아무 말이나 뱉으면, 무지한 언론은 그대로 받아써서 퍼트리고, 오로지 돈과 인기에만 혈안이 된 래퍼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알면서도 침묵한다. 절반 이상이 래퍼의 꿈을 키우는 자칭 힙합 팬들 역시 외면하기 일쑤다. 인종과 계급 이슈가 중요하게 결부된 특수한 사회환경 속에서 탄생한 힙합을 문화적으로 접근하여 한국에서 대중화시키겠다는 이들이 무려 10여 년 동안 해온 짓이다.
래퍼들의 계급화는 또 얼마나 심각한가! <쇼미더머니>에서는 PD와 소수의 스타 래퍼가 권력을 쥔 가운데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번호표를 단 피권력 래퍼들의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그 과정과 결과는 고스란히 신에 이식되어 보이진 않지만 실재하는 힙합 카스트 제도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수많은 래퍼와 팬들은 이를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누군가는 먹고사는 문제를 꺼내 들기도 한다. 살기 위해 부당한 제도로 기꺼이 뛰어드는 건 오히려 용기 있고 멋진 행보라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래서 그러한 선택을 한 개개인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를 힙합의 대중화, 혹은 발전과 결부시키려 하니 모순이란 비판이 나온다.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 신에 끼친 유일하게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실력 있는 신인 래퍼와 무명 래퍼들을 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도 큰 가치를 부여하긴 어렵다.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이들 중 대부분이 한국 힙합의 질적 성장과는 별 관련 없는 실망스러운 행보로 일관한 탓이다. 음악 창작보다 예능 활동에 치중하거나 시대착오적이고 혐오감을 유발하는 내용이 담긴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쇼미더머니> 최대 수혜자 중 한 명인 ‘수퍼비(SUPERBEE)’와 그가 발굴한 그룹 ‘호미들’이 있다. 그들은 여러 곡에 걸쳐서 저급한 수준의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 표현을 사용해왔다. 올해 9월에 나온 수퍼비의 싱글 ‘Real Hard’에서 호미들의 루이(Louie)가 뱉은 ‘Pussy rapper 확인해 봐 팬티에 케첩, 트랜스젠더보다 테스토스테론이 없나 봐’ 같은 라인은 관대하기로 유명한 힙합 팬들 사이에서조차 거세게 비판받았을 정도다.
지면 관계상 문제의 극히 일부분만 거론했지만, 이상의 모든 상황을 결합하면 한국 힙합의 민낯이 된다. 어떤 평론가들은 <쇼미더머니> 덕에 어쨌든 래퍼들이 스타덤에 올랐고 힙합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쨌든’으로 퉁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과정에서의 문제를 모조리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가 열 번째 시즌에 이르는 동안 아티스트, 산업 관계자, 장르 팬 할 것 없이 보인 결과 지향적 태도가 힙합의 왜곡에 한몫했다는 사실을 곱씹어봐야 한다.
한편에선 <쇼미더머니>를 음악 프로로서 진지하게 볼 것이 아니라 가벼운 예능으로 보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핵심은 그것이 한국 힙합 신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더구나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초창기부터 ‘한국 힙합을 위해’ 막중한 임무를 맡은 진지한 프로임을 내비쳐왔다. 그러니 이 같은 소리를 하는 건 결코 쿨하지 않다. 그저 현실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오늘날 어떠한 장르와 문화든 거대 미디어나 프로그램 하나에 의존하여 제대로 싹을 틔우고 괜찮은 방향으로 발전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눈에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미 그러한 현실 자체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다. 한국 힙합도 마찬가지다. 왜곡, 거짓, 혐오로 점철된 상업화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엇보다 대중이 하나둘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대중화를 논한다는 건 얼마나 쓴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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