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CENE
NFT 거래소에서는 8비트 고양이 픽셀 그림이 고가에 거래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림이나 사진이 조회수에 비례한 값어치를 얻는다.
그것의 미술사적 의미와는 상관없다. 재밌어야 인기 있고, 인기가 있어야 가치도 생긴다. 이 흐름에서 주목할 점은 생략된 과정이다.
과거에는 작가로 인정받기까지 거쳐야 했던 과정이 있었다. 의무는 아니지만 작품이 가치를 얻으려면 작가의 입지가 중요했다.
문학계에 문단이 있듯, 미술계도 권위를 가진 집단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작가로 인정받았고, 그러한 작가의 작품에 미술사적 의미가 부여됐다. 작품의 가치는 그 이후에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다르다.
누구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지금, 값비싼 작품 중에는 기존 미술계의 평가를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작품 그 자체가 지닌 목소리가 새롭거나 울림이 없어도 된다. 그래도 높은 가치를 얻는다. 그럼 이것을 유효한 흐름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일시적 현상일까? 기존과는 가치를 얻는 기준이 다른 ‘NFT 아트 열풍’은 허상에 불과할까? 이 물음에 미술 저널리스트 이가진이 답했다.
‘00 아트 열풍’을 믿지 마세요
1982년 <타임>지 12월호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올해의 인물’을 발표했다. 1920년대부터 이어진 이 매체의 연례행사에서 그해에는 사상 최초로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올해의 머신’으로 뽑혔다. 바야흐로 2021년 12월, 영국의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2021 파워 100’의 1위는 ‘ERC-721’에게 돌아갔다. 전 세계의 문화예술계 인물 중 ‘지난 12개월 동안 활발히 활동했는지’ ‘그 활동이 동시대 예술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지역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두루 살펴 선정했다고 한다. 이 낯선 이름은 예술가도, 큐레이터 콜렉티브나 예술 기관도 아닌 NFT(대체 불가 토큰)의 발행 표준안을 뜻한다. 1982년의 컴퓨터와 그로부터 20년 후의 ERC-721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뒤흔들었고, 흔적을 남겼다. 컴퓨터는 아직 건재하고, 그 후손의 장기적인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다.
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언론에서는 연말이면 과거를 결산하고 새해의 전망을 내놓는다. 마치 1년 단위로 삶이 완전히 갱신되기라도 하는 양 3백65일 동안 무엇이 흥했고, 무엇을 잃었는지 셈한 후 앞으로 얻을 것을 점친다. 지난해 뉴스에서 ‘예술’을 주제로 일부 솎아보았다. 우선, 역병을 뚫고 봄에는 ‘광주비엔날레’, 가을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열렸다. 평소처럼 시끌벅적할 여건은 아니었다. 대중적으로 가장 흥행한 전시는 모르긴 몰라도 불꽃 튀는 티케팅 전쟁을 촉발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아닐까. 시장의 움직임은 소란했다. 쾨닉 서울, 타데우스 로팍 등 국제적인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서울에 체인을 냈거나, 낼 예정이다. 국내 최대 아트 페어인 ‘키아프’는 20년 역사상 최대 매출인 6백50억원어치를 거래했다고 밝혔다. 부산, 대구, 제주, 울산 등에서도 아트 페어가 줄줄이 열렸다. 한편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가상 자산의 일종인 NFT가 미술 경매, 페어 등에 등장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더니 콜린스 영어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까지 올랐다. 아, 쓰다 보니 이런 사실만 기억해야 한다면 좀 별로다.
공간의 크기나 명성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좋은 전시를 보여준 작가들이 많았다.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거나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작법을 보여준 이들, 당당하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퀴어 작가들, 신작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원로들이 있었다. 대부분 자신만의 보폭으로, 걸음을 좁히든 넓히든 그 폭 안에서 자신의 예술을 했다. 이처럼 동시대 작가들은 의연하게 발 디딘 자리에서 예술과 고군분투했다. 그들의 작업에 천진한 관심과 건강한 비평, 무한한 애정을 건네며 함께 문화라고 불릴 만한 것을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더 크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유의미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그런 기억이니까.
예술이 단지 나 좋자고 하는 일을 넘어 ‘예술계’라는 생태계를 일구고 평가, 이론, 틀과 기준이 있는 제도의 영역에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백 년 전쯤이다. 그동안 예술의 상업주의는 타락으로 치부되었지만, 오늘날 미술 시장의 힘은 타락마저 도저한 매력으로 만들 만큼 강력해졌다. 자본이 시대의 첨병이 된 이상 각종 수치와 통계, 무엇보다 ‘투자’나 ‘자산’이라는 표현이 예술 근처를 맴도는 것이 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실물자산에 대한 선호나 과시성 소비 측면에서는 지금이 예술에 접근할 더없는 기회처럼 보일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신호, 대박, 성장세, 열풍’이나 ‘빨간불, 위기, 불안, 거품’ 등의 단어들이 순서 없이 예술을 수식하며 이런저런 소식을 실어 나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대로 예술품이라는 말은 아름다움과 정신적 풍요뿐 아니라 은연중에 물질적 부유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정작 예술은 어떤 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지만,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망에는 묘한 기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다름 아닌 스스로의 허영심이란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를 앞서간 댄디이자 예술과 아름다움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예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열풍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술은 영원히 살아남아 그 영향을 퍼트리고, 그 유익함으로 인해 오래도록 지속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열풍과는 거리가 먼 겁니다.” 정말로 예술은 열풍 없이 잘 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WORDS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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