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김성주 시대다.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전현무나 오상진보다 존재감이 뚜렷하다. 김성주는 김성주다. 김성주는 진행자이니, 어떤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라고 할 순 없다. <미스터트롯>의 주인공은 트로트 가수들일 것이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주인공은 셰프나 초대 손님일 것이고, <뭉쳐야 찬다>의 주인공은 선수들일 것이다. 그러나 거듭, 김성주는 존재감이 뚜렷하다. 주인공의 권위를 훼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돋보이게 하지. 사람들은 왜 김성주를 좋아할까? 질문이 명확하지 않다. 사람들은 왜 혹은 어떤 면에서 김성주가 진행을 잘한다고 생각할까? 김성주는 어떻게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혹은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걸까? 여러 뻔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뭉쳐야 찬다> 시즌1, 2의 팬이고, 이 프로그램에서 김성주가 축구를 아주 못한다는 게 좋다. 잘할 필요도 없지. 김성주의 역할은 경기를 뛰는 게 아니라, 중계하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니까. 다만 김성주가 축구를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볼 때 내 마음은 아주 편하다. 나는 물론 축구를 꽤 하는 우리 동네 호날두지만, 그래봤자 동네 수준이고, 뭐 아무튼 축구는 김성주보다 잘한다.
굳이 이딴 자부심이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안 중요하지도 않은데,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미스터트롯>이나 <내일은 국민가수>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전부 나보다 노래를 잘한다. 하지만 진행자인 김성주는 나보다 못하거나 아주 조금 잘할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 김성주가 나처럼 평범해서 좋다. 평범해서 좋은 거, 아무래도 좀 찌질한 거 같다.
그리고 김성주는 출연자들의 친구, 형, 오빠, 동생 같다. 김성주 말고도 그런 진행자는 많을 것이다. 어지간하면 다 친해 보인다. 촌스러운 말이지만 김성주는 ‘찐’ 친해 보인다. 다들 김성주를 편하게 생각한다. 여자 연예인이건 남자 연예인이건 김성주가 있는 것만으로 마음을 놓는다. 일반인 출연자도 그렇다. <내일은 국민가수>에 출연하는 어린 학생 지원자도 김성주가 한두 마디 건네면 조금 웃고 평정심을 찾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무리한 예측이지만, 김성주가 정말 사람이 좋은가 보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벼는 익을수록… 같은 진부한 표현을 적어 미안하지만, 김성주는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평범한 동네 이웃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에게 지적당하고 상심한 가게 사장님은 예고 없이 방문한 김성주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 프로그램 포맷 자체가 그런 것이긴 한데, 핵심은 김성주여서 그 포맷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진행’은 언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김성주를 보면 그것은 표정이기도 하고, 그냥 그 사람 자체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느끼듯, 다른 사람들도 김성주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걸까? 평범한 거 참 좋구나.
진행자에게 중요한 능력은 뭘까? 카리스마? 절대 아닌 것 같다. 존재감? 저 앞에 내가 ‘김성주는 존재감이 뚜렷하다’고 적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김성주는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아서 역설적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는 경우니까. 말 잘하는 거?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진행자는 생각보다 많…은 건 아니지만 꽤 있다. 아마도. 제작진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적시에 적합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거? 물론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하지? 이런 배경을 거론할 순 있을 것 같다. 포털에서 나무위키를 보면, 김성주가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하기 전에 한국스포츠TV에 3년 동안 재직했으며, 하루에 4경기씩 종목을 가리지 않고 중계했다고 한다. 3년 동안 무려 1천 경기가 넘는다고.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선 준비할 게 많다. 외울 게 많지! 당연히 흐름도 잘 읽어야 한다. 경기는 시시각각 변하니까. 하루에 4경기를 중계했다? 저 만만해 보이는 미소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저 어설픔, 약간의 지적인 모습, 썰렁하지도 과하게 웃기지도 않은 멘트가, 저 느긋한 말투가 그냥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거듭, 김성주의 기능적인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고백하면, 나는 열성 좌파다. TV조선은 보지 않는다.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내일은 국민가수> 역시 챙겨서 보진 않았다. 채널을 돌리다가 김성주가 보이면 잠깐 본다. 저들의 노래도 듣는다. 김성주여서 거부감이 잠시 누그러진 것일 텐데, 그렇다면 나는 김성주의 이미지에 속아 판단력을 상실한 것이다. 나는 그의 정치 성향은 모르고, 관심도 없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가 기회주의자인지, 이기적인지, 앞뒤가 다른지 역시 모르고 관심 없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끔 어떤 프로그램은, 내가 이걸 봐도 되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이건 어린 친구들이 봐야 할 것 같고 이건 나이 든 분들이 봐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가끔은 음, 이건 여자들이 보는 프로그램인가 보네, 혹은 그 반대를 생각한다. 김성주가 진행하면 봐도 될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 없이 봐도 될 것 같다. TV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대부분 굉장한 사람들이다. 일반인 출연자조차 압도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출연자는 출연자대로,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어떤 이질감 같은 게 존재할 법한데, 김성주는 그걸 허문다. 허문다기보다 허물어진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상의 기적으로 만드는 능력, 그리하여 그것 하나하나가 소중한 우리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드는 능력은 지금 김성주가 보여주는 신비다.
또한 사족이겠으나 MZ와 기득권, 세대와 계층을 나누고 분석하는 것이 당연한 의제인 듯 느껴지는 나날 속에서, 저 신비함은 좀 귀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확장하는 건 억지스러운가? 김성주가 스포츠 중계를 할 때, 이탈리아 축구 선수 지안프랑코 졸라 때문에 오해를 산 적이 있다. 하필 이름이 ‘졸라’여서. 물론 그 중계를 다시 보면 김성주가 의도적으로 ‘졸라’를 ‘졸라’ ‘졸라’ 부른 것 같기도 하다. ‘졸라’가 축구를 잘하니 ‘졸라’ 이름을 부를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이 글을 이렇게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앞뒤 자르고 말하자면, 김성주는 진행을 잘한다. 저 선수 이름만큼 잘한다. 그리고 나처럼 굳이 여러 번 강조하며 ‘졸라’를 외치고 싶은, 그런 사람 같아서 나는 김성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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