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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의 시대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의 시대다. 확장되는 디즈니 제국에 ‘디즈니 플러스’가 더해졌다. 영화계를 독점한 디즈니가 OTT 시장도 접수할 수 있을까?

UpdatedOn October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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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를 ‘빌런’에 비유한 이유는 영화 콘텐츠 사업을 휘어잡고 있는 디즈니의 장악력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디즈니는 업계를 독점하고 있다. 영화 산업을 넘어 미디어 산업 자체를 말이다. 어떻게 거물이 되었나. 지금까지 디즈니가 걸어온 길은 험악하기도 했고, 구름처럼 부드럽기도 했다. 애니메이터 월트 디즈니는 1923년 단편영화 <앨리스의 원더랜드>를 제작했다. 이후 배급사를 찾아 <앨리스의 원더랜드> 시리즈가 이어졌다. 1928년에는 디즈니의 마스코트 ‘미키마우스’가 탄생했고, 몇 해 지난 후 첫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세상에 나왔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디즈니는 1940년대에 들어서며 주식을 발행했다. 1950년 TV 채널을 만들었으며, 1955년에는 글로벌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몇 년 사이 훌쩍 커버린 디즈니는 ABC 방송국 인수, 크루즈 사업 진출 등 굵직한 사업들을 연이어 성사시켰다. 영화 산업에서 단단한 축을 형성한 디즈니는 2000년대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미국 문화계 주요 아이콘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21세기 폭스 등 대형 스튜디오들을 인수한 것. <라푼젤> <겨울왕국> 등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연이어 흥행했다. 거물이 된 후에도 디즈니는 여전히 몸집 부풀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로 OTT 산업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 기존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왓챠 등이 제공했던 소위 ‘디즈니 출신’ 작품들은 디즈니 플러스로 모조리 옮겨졌다. 영화 콘텐츠 산업을 뛰어넘어 미디어 시장을 뒤흔들려는 디즈니의 야욕은 미디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디즈니의 독점 과정을 미래미디어연구소 노창희 센터장이 짚어본다.

드디어 국내에 상륙하는 디즈니 플러스

코로나19 이전이라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지만, 2019년 11월 두 사업자의 OTT 진출을 두고 많은 말과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디즈니와 애플이 각각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라는 OTT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단연 디즈니였다. 콘텐츠 산업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는 영화, 테마파크뿐 아니라 스포츠 채널 ESPN까지 가지고 있는 미디어 제국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디즈니 플러스가 미국에 출시되었을 즈음 OTT와 관련된 책 출간을 제안받았고, 디즈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왔다. 디즈니 플러스는 예상한 대로 가파른 속도로 가입자를 늘렸다. 디즈니 플러스는 출시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글로벌 가입자 1억 명을 넘어서며 진출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미디어 분야 관련자들이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디즈니이기 때문이다(디즈니가 왜 제국이며, 어떻게 제국이 되었는지는 다음 챕터에서 살펴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디즈니에 앞서 국내에 진출한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미친 영향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OTT 시장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콘텐츠 제작 시장과 유료방송 시장, 그리고 인터넷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제작비 확보와 제작 시장 체질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반면, IP 확보가 어려워지고 제작비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부정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글로벌 사업자와의 제휴라는 시장 행위를 촉발했다. 인터넷 시장에서는 넷플릭스로 인해 망 이용 대가를 둘러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가 월정액 가입료를 지불하는 OTT 생태계의 상징적인 사업자라면, 디즈니는 전체 미디어 산업을 대표하는 사업자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진출을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디즈니는 어떻게 제국이 되었나

1923년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한 디즈니의 역사는 1세기에 이를 만큼 장구하다. 1980년대 디즈니 채널을 론칭하면서 방송에 뛰어든 디즈니는 1995년 ABC 채널을 인수하면서 지상파 방송에도 진출한다. 21세기에 접어든 디즈니의 역사는 관련 분야를 M&A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확장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디즈니의 전 CEO 밥 아이거는 2006년 픽사 인수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M&A를 단행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마블 인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으로 개봉이 미뤄진 <블랙 위도우>를 둘러싼 디즈니와 스칼릿 조핸슨의 갈등은 디즈니가 미디어 생태계에서 가진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연 배우이면서 제작자로 참여한 스칼릿 조핸슨은 디즈니가 <블랙 위도우>를 극장과 동시에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녀가 반감 을 표명한 것은 개인적인 손해도 중요하게 작용했겠지만 전통적인 영화 산업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 영역에 제국을 형성한 디즈니가 자사가 가지고 있는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 산업을 위협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니, 거기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디즈니가 구축해 놓은 제국은 넓고 강력하다.
디즈니의 공격적인 행보는 마블에서 멈추지 않았다. 디즈니는 2012년 루카스 필름을 인수하면서 <스타워즈>의 은하계도 손에 쥐게 되었다. 디즈니가 마블의 히어로들뿐 아니라 <스타워즈>의 우주 영웅들에 대한 권리도 갖게 된 것이다. 2019년 폭스와의 합병까지 마치면서 디즈니가 콘텐츠 시장에서 갖는 힘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디즈니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바로 플랫폼을 가지고 소비자와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DTCI(Direct to Consumer & International) 전략이다. 플랫폼을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자와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 디즈니의 원대한 포부였고,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그 목표는 실현되었다.
디즈니는 2009년 훌루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스트리밍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기술 기업 밤테크(BAMTech)를 인수한다. 밤테크는 메이저리그 스트리밍 전송 기술을 제공한 경험이 있는 사업자다. 2018년 ESPN 플러스를 론칭한 디즈니는 2019년 드디어 스트리밍 시장 진출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한다.

경쟁우위를 확보한 디즈니와 이용자

기술의 진보와 사회 구조적 변화로 인해 이제 미디어 생태계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구획을 정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유통사업자로 출발한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OTT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와 같이 국내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영역 간 횡단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사업자가 구축해놓은 포트폴리오는 경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한 사업자 입장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포트폴리오 혹은 패키징 전략의 기반이 되지만, 전체 산업 생태계 속에서 보면 생태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새로운 생태계를 창출해내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램 차란과 게리 윌리건은 공저 에서 기업 간 경쟁뿐 아니라 생태계 간의 경쟁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얘기한 디즈니와 스칼릿 조핸슨의 갈등은 디지털로 범주를 확장해나가고자 하는 새로운 영상 산업 생태계 간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 국내 출시를 앞두고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자신들의 콘텐츠를 수거해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디즈니가 막대한 콘텐츠뿐 아니라 디즈니 플러스라는 경쟁력 있는 자사 OTT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라도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양한 OTT 플랫폼에 가입해 있는 이용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책 <디커플링>에서 탈레스 S. 테이셰이라는 선택지가 넓은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돈, 시간, 노력이라는 화폐를 들여 상품을 선택한다고 얘기한다. 선택지가 무한할수록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OTT를 즐겨 시청하는 이용자들은 디즈니 플러스 국내 진출을 계기로 선호에 최적화된 OTT 소비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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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노창희(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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