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말이야, 어른이 얘길 해도 듣질 않아. 말대꾸하고, 꼰대라고 비난하질 않나. 내 나이 42세, 한탄할 법하다. 여기서 ‘애들’은 어린 아이들과 이십대 젊은 친구들을 다 포함하는데, 아무튼 요즘 애들은 저런 면이 있다는 거 같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어릴 때도 어른들이 저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뭐 그냥 그런 거다. 요즘 애들이 나이가 들어도 같은 말을 하겠지.
그런데 지금의 요즘 애들은 내가 어렸을 때와 조금 다른 거 같기도…. 뭔 말이냐면, 어른들 혹은 선배들의 잔소리가 무조건 싫은 게 아니라, 도무지 쓸데없는 소리여서 싫어한달까. 뭔 뜬구름 잡는 소릴 하고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느낌.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1초도 들어줄 여유가 없지만, 정확한 해결책이라면 길게도 들어줄 수 있다, 뭐 이런 느낌. 백종원에게 열광하는 이유, 강형욱에게 열광하는 이유, 뭐겠어? 이 양반들은 명확하다. ‘이때는 이렇게 해, 그러면 해결할 수 있어. 대신 대충은 안 돼. 노력을 해야 해.’ 해결책은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요즘 애들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정확한 해결책을 말하는 어른이 돼야 한다.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저 아래서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정확한 해결책을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돼야 하는 것, 그런 현실이 어른을 외롭게 한다. 어른이라고 완벽한 건 아니잖아! 어른이 부족한 거 이해해주는 요즘 애들은 없냐? 없는 거 같아.
그래서 오은영을 존중한다. 무슨 말이냐면, 음… 포털을 보다가 음식은 백종원, 강아지는 강형욱, 아이는 오은영이 전문가라는 문장을 읽었다. 아이를 ‘요즘 애들’로 바꿔도 될 거 같다. 며칠 동안 오은영이 나온 TV 프로그램, 유튜브 등을 시청하며 관찰했다. 오은영은 왜 존중받을까?
인상적인 게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압도적인 건 표정이다. 오은영은 진지했다. 나는 이 부분이 그녀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위대함’씩이나? 응! 옆자리에 앉은 진행자와 패널이 웃거나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은영은 유심히 보며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거 하려고 방송 출연한 거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할 말 있다. 오은영은 압도적으로 진지하다. 이건 공감의 차원을 넘어선다. 오은영에게 저 아이는 남의 아이가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오은영은 저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다. 그렇게 진심이기가 쉬운가?
진지하게 본다는 거, 이게 중요하고 놀라운 건 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조언인 양 헛소리를 해대면서, 그러니까 문제의 본질을 다 알고 있는 양 늘어놓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보지 않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서 내뱉는다. 스스로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자랑하기 위해 떠벌리는 사람도 있다. 우선 보고, 오래 보고, 또 보고, 듣고, 오래 듣고, 또 듣고, 그 후에 무엇인가 말할 수 있는 건데. 진지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면, 허투루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오은영은, 이 부분이 어른인 내가 놀랍게 생각하는 지점인데, ‘뭐뭐인 거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건 이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이건 옳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추정하지 않고 추측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한다는 게 오은영의 최대 장점이고, 이건 방금 적었듯 오랜 시간 유심히 보고 들은 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태도다. 태도? 태도! 오은영보다 지식이 많은 전문가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은영을 존중하는 건 태도, 즉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때문이다. 음, 적고 나서 생각해보니 말하기 전에 듣는 거, 간단한 예의인데 이 간단한 예의를 안 지키고 살았구나.
사실… 모두, 그러니까 어른들도, 선배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의지… 어른이? 그렇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닐 거 같은데, 오은영이 아이들에 대해 조언하고 해결책을 말해줄 때, 위안을 얻는 건 어른들이다. 아이의 부모뿐 아니라, 그저 TV를 보고 있을 뿐인, 그들과 별 상관 없는 어른들마저. 사실은 힘들었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든 아니든, 어른들 역시 커다란 외로움의 주머니를 안고 있다. 그 주머니 안에 매일 외로움을 채워 넣는다. 아이만 괴로워하고 있는 게 아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어른도 속은 곪고 병들어 있다. 아이는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어른은… 뭐 그렇게 하는 어른도 있지만, 대체로 괜찮은 표정을 짓는다. 태연한 척하는 자의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오은영이 치료하고 있는 건 어쩌면 어른, 대부분의 어른, 이라고 적는 게 과장일까? 방송에 나온 아이의 부모들은 대부분 약간 문제가 있다. 그게 이상한가? 그 부모들을 보면서 ‘아 사실은 나도 저런 면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차고 넘친다. 왜냐하면 누구나 약간 문제가 있다. 당연한 거고, 이상하게 볼 게 아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우리 모두이지, 문제 있는 이상한 누군가가 아니다. 오은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아이도 어른도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약간의 조언이 필요한 존재일 뿐.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오은영 덕분에 우리는 알게 되었다. 해결책은 언제나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은영이 보여주는 현명한 모습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말이 먼저가 아니라, 진지하게 보고 듣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어른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 어른이니까 멀쩡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픔이다. 꼰대라고 놀림받고, 해야 할 말을 할 때도 눈치 봐야 하고, 제대로 말했는지 자신을 의심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 혼자 외롭게 앉아 있어야 하는 어른들. 오은영이 그들을 토닥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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