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이현상
레스토랑. 여자친구 너머 앉은 한 여자가 보인다. 새 하얀 블라우스에 블랙 실크 스커트를 입었다. 게다가 찌를 듯한 스틸레토를 신고 다리까지 꼬았다. 최고 중의 최고다. 그녀가 새빨간 체리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체모가 곤두선다. 그리고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항상 ‘자신을 위로’할 때마다 등장하던 꿈속의 여신을 닮았다. 그렇다. 나는 발가벗은 여자보다는 잘 차려입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치마는 옆트임이 있어 허벅지가 드러나야 한다. 향수보다는 샴푸 향이 좋다.
이런 나의 성적 취향을 줄글로 풀자니 음란한 에디터로 전락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상은 자유 아닌가. 문득 나의 친구들, 나의 앞자리에 앉은 선배 기자는 어떤 취향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이상형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자위할 때 상상하는 일종의 ‘자위 매개체’로서의 여자가 궁금해진 거다. 메신저나 혹은 술자리에서 상상 속의 그녀를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나를 ‘미친 변태’로 취급했다. 에잇, 이건 아닌데. 혹시 나만 상상하는 건가? 그래서 나는 질문의 내용을 바꿔봤다. “자위할 때 어떤 도움을 받으세요?” 그랬더니 백이면 백 모두 포르노를 본단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와 일어로 연신 이야기를 해대고, 신음 소리를 내는 일개 비디오 따위에 자신의 정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에디터는 자신의 성적 취향도 잘 알지 못한 채, 수억 마리의 정자를 휴지에 닦아내는 나의 친구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들의 성적 취향을 찾아주리라는 굳은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며칠 밤의 고심(이상하게도 항상 밤에 생각이 난다) 끝에 작성한 설문 조사 시트로 그들의 취향을 찾아주기로 한 것. 문항은 스무 가지. 피부색부터, 머리 모양, 직업, 가슴의 크기, 신음 소리, 자세까지 하나하나 일목요연하게 문항을 만들었다. 설문 대상은 스물한 살의 동생 친구부터 서른네 살의 선배 기자까지. 정확히 82명의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려주었다. 그들도 미처 자신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지 몰랐던 눈치였다. 통계치를 내봤다. 20,30대의 건강한 남성들이 그리는 공통된 꿈의 자위녀가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했기 때문. 결과를 공개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 결과는 상대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설문 조사에 응한 몇몇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위녀의 모습이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항의하기도 했으며, 5지선다 옆에 조그맣게 자신이 원하는 그녀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에겐 역시 고추장과 된장이 입에 맞는가보다. 자위녀의 국적을 묻자 한국인이 과반수를 넘었다. 그다음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종, 일본 등의 황인종 순이었다. 예상대로 흑인을 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혹자는 혐오한다고까지 덧붙였다. 자연스레 자위녀의 머리카락 색은 검은색이었고, 남자의 로망인 긴 생머리가 자위녀의 원하는 머리 모양이었다(컬이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근소한 차이로 긴 생머리가 이겼다). 자위녀의 얼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보였는데, 아오이 유우같이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스타일에 입술이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를 제일로 꼽았고, 뒤를 이어 안젤리나 졸리처럼 도발적이고 섹시한 외모를 다음으로 꼽았다. 아나운서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은 의외로 인기가 없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가슴 크기는 한마디로 ‘과유불급’. 파멜라 앤더슨처럼 너무 풍만해서 파묻히는 가슴보다는 적당하게 손에 잡히는 봉긋한 가슴을 좋아했던 것. 혹자는 핑크색 유두를 좋아한다고 추가로 기재해 설문지를 보는 순간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자위녀의 신체 검사 시간. 키 165cm에서 170cm 사이에 몸무게 50kg의 여자를 자위녀의 베스트로 뽑았다. 나이는 20세와 25세 사이로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는데, 그 뒤를 이어 15세에서 19세 사이를 꼽은 사람도 많아 원조 교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자위녀의 옷차림. 에디터처럼 완벽한 성장을 한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가장 많이 답한 것은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 상의나 하의 둘 중에 하나를 벗은 자위녀가 그 뒤를 이었다. 그나마 우리 남자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한 문항이 있었다. 바로 ‘자위녀가 입에 물고 있어야 할 것’과 ‘자위녀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질문. 에디터는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외로 대답은 ‘입에 아무것도 물지 않을 것’과 ‘침대 위’였다. 아무래도 포르노에서 본 기상천외한 모습들이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사무실 책상 위와 공공장소, 화장실이 그 뒤. 자위녀가 당신을 향해 취해야 하는 포즈 1위는 단연 스포츠 신문에 자주 등장하던 그 모습, 탐스러운 엉덩이를 들이밀고 고개를 뒤로 돌려 쳐다보는 모습. 그다음은 손가락을 자신의 은밀한 부위에 넣고 있는 모습이었고, 누워서 다리를 벌린 모습을 그다음으로 꼽았다. 그리고 자위녀는 개미만 한 목소리로 흐느끼는 소리를 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자위녀의 직업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간호사를 제치고 오피스 걸이 1위를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오목조목 따져 만든 퍼펙트한 자위녀는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허나 꿈꾸는 자에게 희망이 있다고 했던가?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그건 남자의 특권이자 행복이다. 나는 오늘 밤 그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엉큼한 몽상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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