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The new K9
전장 5,140mm 전폭 1,915mm 전고 1,490mm 축거 3,105mm 엔진 3.3 터보 가솔린 배기량 3,342cc 최고출력 370hp 최대토크 52.0kg·m 구동 방식 사륜구동 복합연비 8.7km/L 가격 6천3백42만원
장진택 <미디어오토> 기자
어렵고 깊은 건 잘 몰라서, 쉽고 단순하게 사는 20년 차 자동차 기자.
① 아픈 손가락
누구에게나 ‘잘 안 풀리는 것’이 있다. 잘하려고 해도 좀처럼 되지 않는 것. 이것저것 잘 풀리는 기아에게는 K9이 ‘아픈 손가락’이다. 2012년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BMW 베꼈다” “K9 자주포냐”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는 등 비난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8년 2세대 모델로 거듭나면서 ‘정통’ 느낌을 짙게 품었다. G80과 G90 사이에서 G90 쪽을 겨냥한 ‘고급화’ 전략이었는데, 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기아는 이번에 ‘부분변경’을 통해 자세를 낮추고 있다. G80 쪽으로 방향을 틀어 젊은 부자들이 좋아하는 디테일을 집어넣었다. 그물형 그릴을 큼직하게 전면 배치해 유럽 GT카 느낌을 냈고, 헤드램프엔 ‘스르륵, 스르륵’ 흐르는 방향지시등도 넣었다. 테일램프는 좌·우를 직선으로 연결해 최신 차 느낌을 듬뿍 넣었다. 기본기 좋은 원작에 최신 디테일을 섞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초반 악성 루머가 뒤통수를 간지럽힌다. “테일램프가 생선뼈 닮았네!” 처음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는데, 자꾸 들으니까 테일램프에 생선이 자꾸 떠오르긴 한다. ★★★
②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시동부터 부드럽다. 잘 만들었다. 분명 ‘고급스런’ 세단이다. 고른 공회전에 진동도 적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면 부드럽게 분쇄된 엔진음이 바닥에 고루 퍼진다. 참 잘 만들었다. 좋은 차다. 누가 뭐라 해도 ‘신차’ 때는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다(내구성까진 잘 모르겠다는 얘기다). 미국 차보다 치밀하고, 일본 차보다 과감하며, 유럽 차보다 정숙하다.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5.0 8기통 라인업은 사라졌다. 6기통 모델 둘만 남겼는데, 3.3 터보보다는 3.8 자연흡기 엔진이 좋아 보인다. ‘힘’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K9의 이미지에 잘 맞아떨어져서다. 속도를 높여도 여전히 조용하고, 울퉁불퉁한 길도 부드럽게 누르며 달리는 게 ‘고급 세단’답다. 실내 내장제도 고급스럽고, 뒷좌석도 넓직하며, 트렁크도 넉넉하다. 오디오 음질까지 풍성해서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 참 좋은데 어디 가서 ‘좋다’ 말하기 좀 그렇다. 참 좋은데 기업 이미지, 브랜드 가치 같은 것들이 아쉽다. 고급 세단은 명예롭게 타야 하는데, K9엔 그런 게 아직 부족하다. 센터페시아 가운데 스위스 시계를 넣었다고 해서 ‘명품’으로 올라서는 건 아니다. 명품은 이름만 들어도 묵직하고 잔잔한 울림이 있어야 한다. 기아에겐 아직 이런 게 없다. ★★★★
③ K9, 이름부터 바꿔라
기아의 플래그십답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집어넣었다. 14.5인치 와이드 화면이나 지문인식 장치 등 제네시스에 썼던 고급 장치를 다 넣었고, 세계 최초로 전방 예측 변속기를 넣기도 했다. 레이더 센서와 전방 카메라, 내비게이션 등에서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먼저 변속을 해준다는 개념이다. 언덕길에 들어서기 전에 한 단을 낮춰 힘차게 언덕을 넘도록 하고, 내리막 길 전에 한 단을 높여 연료 소모를 줄이는 식이다. 다 좋다. 좋은 것 빼놓지 않고 다 집어넣어 세심하게 잘 만들었다. 적어도 차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안 팔릴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참 좋은데, 왜 길에는 안 보일까? K9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름이 걸림돌이었다. ‘케이나인’이 ‘개’를 뜻한다는 것에서부터, ‘K9 자주포’ 얘기도 나왔고, 최근 K9의 동생 K7이 K8으로 이름을 바꾸며 한 등급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K9,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자꾸 나오는 이유다. 기아에서도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K 뒤에 숫자를 붙인 이름에서 탈피해 별도 브랜드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고, 엔터프라이즈나 오피러스 등의 과거 기아 플래그십 이름을 소환하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
+FOR 참 좋은 차다.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
+AGAINST 좋은 차인데, 선뜻 마음이 가진 않는다. 그래서 길에 잘 안 보이나?
김종훈 자동차 칼럼니스트
악차는 없다는 마음으로 각 자동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자동차 칼럼니스트.
① 과거는 묻지 마세요
성형수술을 과감하게 감행했다. 부분변경 모델인데 예전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전면 인상이 딴판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널찍하게 키우고, 헤드라이트를 날렵하게 깎았다. 하단 공기 흡입구도 좀 더 커졌다. 헤드라이트와 그릴을 이어 하나의 그래픽으로도 만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자동차 전면 디자인이다. 인상이 대담해져 차량이 더 커 보이는 장점이 있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좋은데, 예전 모습을 아예 지운 점은 아쉽다. 부드럽고 중후한 느낌이 사라졌다. K9을 상징하던 원반 두 개 쌓아놓은 듯한 남다른 주간주행등도 사라졌다. 보통 기함이 디자인을 선도한다. K9은 동생인 K8과 닮아지는 쪽을 택했다. 순서는 이상해도 통일성은 있어 보이니 다행일까. 실내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분변경이니까. 대신 밝은 베이지 실내 색상을 추가했다. 탁월한 선택이다. 실내를 화사하면서 고풍스럽게 보이게 한다. 덕분에 실내 마감이 더 좋아진 기분까지 든다. 사실 안팎 변화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엠블럼이다. 차량 디자인에서 엠블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최근 바뀐 기아 엠블럼은 따로 볼 때보다 차량에 붙은 채 봐야 진가를 발휘한다. 보닛의, 스티어링 휠의 엠블럼이 전체 분위기를 쇄신한다. 미래지향적 차로 보일 만큼. 이렇게 효과가 클지 몰랐다. ★★☆
② 이런 기능 처음이야
V6 3.3 트윈 터보 사륜구동 모델을 시승했다. K9 트림에서 꼭짓점. 최고출력 370마력과 최대토크 52.0kg·m이 아쉬울 리 없다. 2톤이 넘는 대형 세단인데도 굼뜬 기색 없이 차체를 움직인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사운드와 가속감이 제법 짜릿하기까지 하다. 늠름한 덩치와 넉넉한 출력에서 기아의 기함다운 풍모를 내비친다. 부분변경이지만 주행 면에서 신무기도 장착했다. 전방 상황을 파악해 알맞게 변속해주거나 도로를 파악해 서스펜션을 조절하는 기능이다. 내비게이션 GPS, 카메라, 레이더 센서 등을 활용해 주행을 좀 더 쾌적하게 만들어준다. 심지어 전방 예측 변속 시스템(PGS)은 세계 최초 기술이다. 그래서인지 신형 K9은 다분히 안락하고 느긋한 대형 세단 특유의 거동으로 바뀌었다. 예전 K9의 탄탄한 하체 감각과는 사뭇 다르다. 외모는 젊어졌는데 주행 감각은 완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뒷좌석 승객을 배려하는 승차감을 지향한다. 대형 세단의 중후한 맛을 강조하는 움직임이다. 그쪽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데 더 유리하긴 하다. 외모와 승차감이 다소 상충하는 면이 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
③ 있는 그대로 본다면
K9은 시장에서 위치가 어중간하다. 긍정적으로 보면 G90과 G80 사이를 채우고, 부정적으로 보면 둘 사이에서 도드라지지 못한다. 국산 대형 세단의 정점으로 군림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K9이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할 단초가 되기도 한다. 비교하지 않고 보면 이점이 꽤 많다. 가격 대비 가치가 높달까. G90에 비해 위축되긴 해도 대형 세단이다. 실내 소재와 만듦새는 대형 세단의 고급스러움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부분변경으로 주행 관련 신무기도 장착했다. 승차감 또한 이젠 전통적 대형 세단다운 중후함까지 품었다. 브랜드의 기함으로서 활약한 역사가 부족할 뿐 능력은 출중하다는 뜻이다.
이 모든 요소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가격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예전부터 K9은 이 위치에서 고군분투하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 부분변경으로 가치를 한층 높였으니 간극을 좁힐 여지가 있다. K9 그 자체로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광채가 더욱 선명할 거다. ★★★☆
+FOR 외모는 젊게, 거동은 중후하게. K9의 새로운 승부수.
+AGAINST 기함으로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지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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